일본 시민단체 '강제동원진상규명네트워크'가 한국 민족문제연구소와 공동으로 출간한 '일본 메이지 산업혁명 유산과 강제노동' 책자에서 군함도의 실상을 설명한 부분. 도쿄=연합뉴스

“도주하다 붙잡히면 고무 튜브로 피부가 벗겨질 만큼 맞고 고문당했다. 감옥에 갇힌 것이나 다름없었다. (1945년) 원폭 투하 후 8월 18일 청소를 하러 나가사키(長崎) 시내에 갔을 때 ‘인간 지옥이 여기구나’라고 생각했다” (14세 때인 1943년 전북 익산에서 강제동원된 최장섭 할아버지 증언)

일본 정부가 2015년 유네스코 세계유산으로 등재시킨 나가사키현 하시마(端島ㆍ일명 군함도)의 강제동원 역사를 은폐하는 상황에서 일본 시민단체가 진상 알리기에 발벗고 나섰다. ‘강제동원진상규명네트워크’가 그 주인공으로 이들은 우리나라 민족문제연구소와 공동으로 ‘메이지(明治) 산업혁명 유산과 강제동원’이란 책자를 내고 최창섭 할아버지의 증언 등을 담아 일본의 만행을 속속들이 고발했다. 부제도 ‘한일 시민이 함께 만든 세계유산 가이드북’이다.

책자에선 군함도를 “전체가 탄광으로, 바다 곳곳으로 갱도가 펼쳐져 있다”면서 1939년부터 하시마와 바로 옆 섬에 있는 다카시마 탄광에 4,000명 정도의 조선인이 강제동원됐다고 설명한다. 이어 “조선인들에겐 쇠창살 없는 감옥이자 공포의 노동 현장이었다”며 “탈출은 어려웠고 끌려간 이들에게 지옥섬이었다”고 실태를 전했다.

이들 조사에 따르면 군함도엔 1939년부터 1945년에 걸쳐 1,000명이 넘는 조선인이 동원된 것으로 추정된다. 화장(火葬) 관련 문서로 확인된 사망자는 50명 가량이다. 절반 이상은 사고로 변을 당했다. 탄광매몰에 의한 질식사, 압사, 외상에 따른 사망, 여기에 탈출 과정에서 숨진 것으로 보이는 익사도 있었다. “너무 힘들어 섬을 나가려고 신체 절단까지 생각했다”는 증언도 수록됐다.

실제 1943년 전북 김제에서 끌려온 윤춘기 할아버지는 “임금의 3분의 1은 강제 저금되었고, 3분의 1은 고향에 송금한다고 했지만, 귀국해 보니 송금이 전혀 안 됐다”고 일본측을 고발했다. 그는 “식사는 외국 쌀로 지은 밥과 국뿐이었다”라며 “밥그릇에 주먹 정도 크기의 감자가 들어있었기 때문에 실제 쌀밥은 세 숟가락 분량도 되지 않았다”고 증언했다.

강제동원네트워크 측은 “일본의 메이지산업유산 설명속에, 불편하지만 외면해선 안 되는 어두운 역사도 담겨야 한다”며 “2차 대전이 끝난 지 70여년이 지났어도 아직 강제동원ㆍ강제노동의 상처가 치유되지 않았기 때문”이라고 밝혔다.

도쿄=박석원 특파원 spark@hankookilbo.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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