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8>전주 일가족 살인 사건

연탄가스에 중독돼 일가족 3명이 사망하고, 1명이 부상 당한 전주 송천동 아파트 입구. 전주 덕진경찰서 제공
가족 동반자살? 뭔가 수상했다
작은 아들 “숨막혀요” 119에 전화
부부 죽고 몇 시간 뒤 장남 사망
일반 동반자살과 달리 시점 차이
범인은 두 아들 중 하나로 좁혀져
“형이 따라준 우유 먹고 쓰러져”
동생 “형 장사 안돼 죽고 싶어해”
형 차량서 번개탄 등 증거 발견
친구들에겐 “잘 살아라” 메시지
점퍼 주머니선 번개탄 가루까지
하지만… 끝내 꼬리 잡힌 동생
장례 절차 와중에 깨끗이 세차
뒷좌석 바닥서 연탄가루 발견
한달 전부터 수면제 등 준비하고
당일 형 신발ㆍ옷 입고 증거 조작

“숨을 쉬기가 어려워요. 살려주세요!”

119로 구조 요청이 들어왔다. 2013년 1월 30일 오전 11시40분. 콩나물공장을 운영하던 퇴역 군인 박모(51)씨와 부인 황모(54)씨, 큰아들(26)과 작은아들(24) 일가족이 일산화탄소(CO) 중독으로 쓰러졌다. 가까스로 깨어난 작은아들이 힘겹게 전화기를 들었다. 유일한 생존자였다.

아파트 3층 현관문을 연 소방대원들을 맞이한 건 매캐한 냄새였다. 59.5㎡ 남짓 집 안에선 연기가 조금 눈에 띄었다. 작은아들은 거실 바닥에 누워, 떨고 있었다. 작은방 서랍 옷장 위에서는 아직 타고 있는 연탄 화덕이 발견됐다. 그 옆으로 박씨 부부가 이불을 덮고는 침대와 바닥에 각각 누워 있었다. 숨은 끊어져 있었다.

큰아들은 큰방에서 발견됐다. 엎드린 채 머리는 창문 쪽을 향하고 있었다. 어느 순간 ‘고통에 꿈틀거린 듯한 모습’이었다. 그 옆으로 작은방에서 나온 것과 같은 연탄 화덕이 옷걸이 뒤편 구석에 있었다. 주방에서는 마시다 만 우유가 든 컵, 정체불명 흰색 가루가 든 약통이 보였다. 가스레인지 위 번개탄 빈 봉지와 타고 남은 가루가 흩어져 있었다. “뻔하네. 뻔해. 일가족 동반자살(가족 살해 후 자살)이네.“ 누군가 중얼거렸고, 누구도 이견을 달지 않았다.

현장에 충돌한 김재구 덕진경찰서(전북 전주시) 강력2팀장이 화덕을 골똘히 쳐다보고 있었다. 소방대원들이 안방과 작은방에 있던 화덕을 현관문 밖으로 빼놓았다. 작은방에 있던 것보다 큰방에 있던 화덕 연탄은 검은 부분이 훨씬 많이 남아 있었다. 탈 것이 많이 남아 있으니, 불도 더 뜨겁게 타고 있었다.

“이상하네. 이상해.” 김 팀장 고개가 갸웃갸웃거렸다. 동반자살이라면, 두 화덕 연탄 연소 시간이 그렇게 차이가 날 이유가 없었다. “누군가 화덕에 연탄을 태우고 난 뒤에 또 다른 쪽 화덕에 불을 붙였다는 건데…” 큰방 화덕이 ‘굳이 숨겨놓은 듯’ 옷걸이 뒤편에 있다는 것도 마음에 걸렸다. 더구나 동반자살이라면 굳이 각자 방에서 화덕 두 개로 나눠 불을 지필 필요도 없었다. 동반자살이 아닐 가능성이 높아 보였다.

전주 일가족 살인 사건

그렇다면 누가 연탄을 태웠던 걸까. ‘혹시나 연탄가루가 몸에 묻은 사람이 있다면, 그 사람 아닐까?’ 김 팀장이 팀원들과 병원 영안실에 있던 사망자들을 살펴봤다. 검시 결과도 다시 한 번 꼼꼼히 확인해봤다.

박씨 부부 몸에는 연탄가루가 묻어 있지 않았다. 저항을 한 흔적이 나온 것도 아니었다. 몸 뒤편에서는 피가 뭉친 선홍색 ‘시반(시체얼룩)’이 선명했고 위장에 소화가 덜 된 밥 알갱이가 검출됐다. 현철호 전북경찰청 과학수사계 검시팀장은 “선홍빛 시반은 일산화탄소 중독으로 사망한 경우에 흔히 나타난다”며 “음식물 소화가 덜 된 것으로 봐서는 식사를 마친 후 오래지 않아 사망한 것으로 보인다”고 했다.

큰아들은 부모와 조금 달랐다. 시반은 동일했다. 다만 시신을 옆으로 돌릴 때 머리와 다리가 뻣뻣하게 들릴 정도로 사후경직이 심했던 부모와 달리 큰아들은 사후경직이 거의 진행되지 않았다. 등 부분은 손으로 누르자 시반 위로 손 모양이 선명하게 나타나는 ‘퇴색’ 현상이 강하게 나타난 것도 특이했다. 현 팀장은 “아직 피가 거의 굳지 않았다는 뜻”이라며 “사후경직과 시반 퇴색 정도로 판단해볼 때 부모가 큰아들보다 적어도 몇 시간 전에는 사망했던 걸로 보인다“고 설명했다. 결국 부모가 연탄에 불을 피웠을 가능성이 낮다는 얘기였다. 큰아들 아니면 작은아들이었다.

느닷없이 작은아들이 형을 지목했다. 병원 응급실을 찾은 경찰에게 형이 범인 같다는 진술을 하기 시작했다. “형이 불러 밖으로 나가 둘이 맥주 한 잔 하고 새벽 4시30분쯤 집에 들어왔습니다. 그리고 오전 5시쯤 형이 컵에 우유를 따라줬는데, 그걸 마시고 곧바로 쓰러져 잠들었어요.” 그리곤 의미심장한 한마디 말을 덧붙였다. “최근에 형이 음식점을 열었는데, 장사가 안 돼서 죽고 싶어 했습니다.” 가족 속사정을 누구보다 잘 아는, 사건 전후를 겪고 목격한 유일한 생존자 입에서 나온 진술이었다. 수사팀이 술렁였다.

진술을 뒷받침하는 단서도 연달아 발견됐다. 집 근처에 주차된 큰아들 소유 그랜저 차량 뒷좌석에서 귤 박스가 발견됐는데, 그 안에 연탄과 번개탄이 하나씩 들어 있었다. 뒷좌석 아래에서는 연탄 집게가, 박스 옆에서는 뜨거운 화덕을 안에 넣고 옮겼는지 안쪽 여기저기가 타고 녹은 검은 가방이 발견됐다. “작은아들 말이 맞나 본데?”

뿐만 아니었다. 큰아들은 사건 당일 새벽 6시30분쯤 친구들에게 ‘자살하니 잘 살아라’는 문자메시지를 보냈다. 여자친구에게 보낸 ‘행복하고 사랑해요’라는 카카오톡 메시지도 확인됐다. 큰방 옷걸이에 걸려 있던 녹색 점퍼 주머니 안에서는 번개탄가루가 나왔다. 오른쪽 손목 부분에서는 연탄을 옮기다가 묻었으리라 짐작되는 연탄가루도 검출됐다. ‘장남이 사업 실패를 비관해 부모와 동생을 살해하고 자살했다’는 추정에 점차 힘이 실리고 있었다.

하지만 수사팀은 쉽게 큰아들을 범인이라고 단정짓지 않았다. 큰아들을 범인이라고 할 때, 좀처럼 풀리지 않는 의문이 있었다. 먼저 범행 추정 시점. 작은아들 말대로라면 전날 오전 집에서 나간 큰아들이 집에 들어온 건 새벽 4시30분. 물리적으로 그 이후에나 범행을 저질렀을 텐데, “식사를 마친 뒤 오래지 않아 사망했다”는 검시 결과와는 앞뒤가 맞지 않았다. 아버지 박씨가 오전 2시11분 콩나물공장 직원에게 ‘오늘 안 나와도 된다’고 문자메시지를 보낸 것으로 확인됐는데, 그 새벽시간에 문자를 보냈다는 것 자체가 영 자연스럽지 않았다. 무엇보다 큰아들은 여자친구와 결혼을 한창 준비하고 있었다는 주변인 진술이 있었다. 결혼을 준비하다가 갑자기 가족을 죽이고 스스로 목숨을 끊겠다고? “혹시 작은아들이 형에게 누명을 씌우는 것 아냐?” 수사팀에서는 강하게 의문이 제기됐다.

증거는 큰아들을, 심증은 작은아들을 지목하고 있었다. 심증이지만, 결국 확인이 필요했다. 경찰은 장례식 상주로 있던 작은아들에게 발인을 마치는 대로 차량을 가져오라고 요청했다. 2월 2일 오후, 작은아들이 몰고 온 산타페 차량을 보는 순간 심증은 확신으로 바뀌었다. “차가 지나치게 깨끗하더라고요. 세차를 한 지 얼마 안 돼 보였어요. 장례 때문에 정신도 없었을 텐데, 세차를 하다니. 증거인멸 때문이라는 생각밖에 안 들더군요.”

과학수사대 요원들이 차량을 샅샅이 확인하길 한 시간. 차량 내 비치된 슬리퍼 아래와 뒷좌석 바닥에서 연탄가루가 발견됐다. 여기에 “형이 우유를 따라줬다”는 진술도 거짓으로 드러났다. 싱크대 위에 놓여있던 우유팩에서 큰아들이 아니라 작은아들 지문이 나왔다. 또 “작은아들이 스스로 부모를 죽였다고 말했다”는 주변인 진술도 나왔다. 3일 오전 2시5분 콩나물공장 2층에서 자고 있다 긴급체포된 작은아들은 경찰에서 범행 전모를 털어놨다.

작은아들은 평소 가정 불화와 군인 출신 아버지 폭력, 차별에 증오심을 품었다고 했다. 연탄가스 중독에 의한 동반자살로 위장해 가족 모두를 살해할 것을 마음 먹고 한달 전부터 연탄화덕, 번개탄, 연탄 등 범행도구를 하나씩 준비했다. 친구 명의로 3차례에 걸쳐 수면제도 처방 받아 음료수나 우유에 타 가족에게 먹인다거나, 투룸을 임시로 빌려 옥상에서 연탄을 태우며 예행연습도 거쳤다. 새를 사 놓고 연탄가스 유독성을 실험하거나, 연탄 구입 방법과 화덕 사용법을 인터넷을 통해 철저히 공부하기도 했다.

증거 조작과 은폐, 연기 또한 그럴싸했다. 형 그랜저 차량에 연탄과 번개탄, 검은 배낭, 연탄 집게 등을 옮긴 것도 그였다. 형 점퍼와 바지, 운동화까지 챙겨 입고 나가 연탄을 묻히는 식으로 증거를 조작해나갔다. 죽다 살아난 것처럼 119 신고를 하고, 상주가 돼 자신이 살해한 부모 삼일장을 치르며 조문객들을 맞이한 것 또한 웬만한 사람은 하기 어려운 일이었다.

경찰이 경악한 건, 범행에 앞서 두 차례 살인 시도가 더 있었다는 점이었다. 20여일 앞서 공구상가에서 빌린 전동드릴로 부모가 자고 있는 작은방 벽을 뚫어 가스를 분출시키려 했다가 실패했고, 하루 뒤 밤에는 가스보일러 연통을 부모가 자고 있는 작은방에 연결해 가스를 주입했는데 머리가 아프다며 잠에서 깬 부모가 119에 신고하는 바람에 허탕을 쳤다.

사건은 풀렸지만, 작은아들은 ‘왜 그랬는지’에 대한 질문에는 답하지 않았다. 10억원 상당 부동산 자산과 수십억대 보험금을 수령할 수 있었다는 사실이 드러나면서 ‘금전적 동기’ 아니냐는 분석이 나왔지만, 경찰 조사에 따르면 작은아들은 수령 가능한 보험금을 조회한 적 자체가 없었다. 패륜적이고 잔혹한 면모 때문에 ‘사이코패스’가 아니냐는 의문도 제기됐지만, 정신병질자체크리스트(PCLR) 결과 40점 만점에 12점에 불과했다. 보통 24점 이상인 경우에만 사이코패스로 판정한다.

성장 과정에서 쌓인 경험에 기반한 심리적 문제가 그나마 꼽힌 그럴 듯한 이유였다. 박주호 전북경찰청 프로파일러는 “보통 원한에 의한 증오범죄가 즉흥적으로 일어나는데 반해, 이 사건은 긴 시간 치밀하게 완전범죄를 노린 특이한 사례”라며 “범인의 내향적인 성향과 군인 출신인 엄격한 아버지에 대한 강박적 사고가 영향을 미쳤다”고 분석했다.

경찰은 작은아들을 존속살해와 살해미수, 살해, 증거인멸교사 혐의로 구속해 재판에 넘겼다. 그 해 12월 법원은 “거액의 보험금 수익을 노린 정황이 보인다” “증거인멸 시도가 동반자살이 실패해 살아남은 사람의 행동으로는 보기 어렵다”고 무기징역 선고를 확정했다.

전주=정반석 기자 banseok@hankookilbo.com

작은 아들이 범행에 사용한 연탄화덕. 위의 화덕이 형을 죽일 때 사용한 것으로, 아래에 비해 훨씬 뜨거운 불길이 남아 있었다. 연탄 위에 놓인 것은 가스레인지에서 발화한 것으로 추정되는 번개탄 가루다. 전주 덕진경찰서
큰 아들의 승용차 뒷좌석에서 발견된 연탄 및 번개탄. 작은 아들이 조작한 증거였다. 전주 덕진경찰서 제공
큰 아들의 상의 손목 부분에 묻은 연탄 검정. 큰 아들이 연탄화덕을 운반해 범행에 나선 증거로 쓰였으나 이 또한 작은 아들이 대신 입고 나가 조작한 증거였다. 전주 덕진경찰서 제공
작은 아들이 연탄가스의 유독성을 실험하기 위해 범행에 앞서 구입한 새. 정작 일가족 3명이 살해되는 와중에도 살아 남았다. 전주 덕진경찰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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