故 변증남 UNIST 명예교수

지난 1월 유럽연합 의회가 인공지능(AI)을 가진 로봇에 ‘전자인간’이라는 법적 지위를 인정하는 결의문을 채택했다. 이 획기적 선언은 과학 저술가 아이작 아시모프가 제시한 로봇 3원칙을 그대로 차용하고 있다. 로봇 3원칙의 딜레마를 담고 있는 영화 '아이, 로봇'. 20세기 폭스 제공

지난 1월 유럽연합(EU) 의회에선 인공지능(AI) 로봇에 ‘전자인간’이란 법적 지위를 부여한다는 내용의 ‘로봇시민법’ 결의안이 통과됐다. 얼핏 들으면 로봇을 인간과 동등하게 대우하겠다는 취지 같지만 사실은 그 반대였다. 법안은 로봇의 발전이 인류를 위협하는 것을 방지하고, 로봇이 인류에 도움을 주는 존재임을 명확히 하기 위한 법적 기반으로 마련됐다. 주요 원칙에 ‘로봇은 인간의 명령에 복종해야 한다’가 포함된 이유였다.

이로부터 한달 뒤인 2월 림프종암으로 투병 중 별세한 고 변증남 울산과학기술원(UNIST) 명예교수도 ‘로봇이 인간을 위한 존재’란 원칙을 누구보다 강조했던 연구자였다. 그가 평생 ‘인간친화 복지로봇’ 연구에 헌신했던 이유다. 그랬던 그가 지난 6일 대한민국 로봇대상 대통령 표창을 받았다. 이날 수상은 그의 아들인 변영재 UNIST 교수가 대리 수상했다. ‘대한민국 로봇의 아버지’로 불렸던 그의 인생을 되짚어봤다.

‘소설작법’ 읽던 청년, 공학도 되다

사실 그가 처음부터 로봇공학자의 꿈을 꾼 건 아니었다. 소년 시절엔 철학과 종교, 문학 서적을 주로 읽었고 스스로 문과 성향이 강하다고 생각했다. 어머니는 그에게 ‘검사가 되어 가문의 명예를 높여라’라고 했고, 그 역시도 7남매의 장남으로서 그 길을 가려 했다.

고등학교 1학년 시절, 그는 당시 교회에서 장교 신분으로 영어를 가르쳤던 안병화 전 포스코 사장으로부터 “앞으로 반도체와 컴퓨터가 유망하다”며 전자과를 가라는 조언을 듣는다. 당시 “집안 형편도 어려운데 공대에 가면 생활은 안정될 것”이라고 생각했던 그에게도 나쁠 게 없는 선택으로 보였다.

그렇게 서울대 공대 전자과에 입학한 그는 자연스럽게 공학의 매력에 빠졌다. 명쾌하고 논리적인 수학과 공학이 그의 마음을 사로 잡은 것. 소설가 정비석의 ‘소설작법’을 읽으며 문학을 가까이했던 그가 급기야 ‘소설이나 시, 철학은 쓸모 없다’는 생각까지 하게 됐다. 이후 진로도 빠르게 진행됐다. 그는 미국에서 시스템 자동운전에 필요한 제어방법을 다뤘던 제어공학을 전공했고 1977년 한국과학원(현 한국과학기술원ㆍKAIST의 전신) 교수로 부임했다.

울산과학기술원(UNIST) 재직시절 변증남 교수. UNIST 제공.
우연히 다가온 로봇

‘로봇’이라는 단어 자체가 거의 알려지지 않았던 1978년 말. 그는 우연히 과학재단(현 한국연구재단의 전신)에서 제안한 ‘산업용 로봇 제어시스템 개발 연구’를 시작하게 됐다. 과학재단에서 원래 연구를 맡겼던 책임자에게 사정이 생기자, 그에게 연락을 한 것이었다. 사실 당시만해도 로봇은 생소한 분야였지만 산업자동화 분야에 대한 열정을 가졌던 그는 ‘산업용’과 ‘제어시스템’이란 두 단어에 끌리면서 과학재단의 제안을 수용했다. 그 후 1년간의 연구를 통해 만든 것이 우리나라 최초의 머니퓰레이터, 즉 로봇 집게 팔인 ‘카이젬(KAISEM)’이었다.

첫 성공으로 로봇 분야에 더욱 관심을 갖게 된 변 교수는 1989년 여름 4각 보행로봇 발명도 완성했다. 그리스 신화 속 반인반마(半人半馬)의 이름을 따 ‘센토(Centaur)’라 불리던 이 로봇은 자체 판단능력에, 스스로 이동도 가능했다. 보행로봇 자체는 이미 미국이 70년대, 일본이 80년대 초에 개발한 것이었다. 하지만 시각과 촉각 센서 등을 이용해 불확실성을 감지하는 보행 로봇은 센토가 처음이었다.

‘사람 내쫓는 로봇’ 아닌 ‘사람 대신하는 로봇’

자신감을 얻는 그는 또 다른 욕심이 생겼다. 바로 ‘로봇에 어떻게 지능을 집어넣을까’였다. 그는 센토를 개발할 때까지 로봇을 하나의 제어시스템으로만 생각하고 수학적으로 접근했다. 하지만 향후 사람과 소통이 가능한 진일보한 로봇을 만들려면 새로운 방법이 필요하다고 느꼈다. 그가 인간의 언어능력을 모사해 모호한 숫자나 정보를 컴퓨터가 처리하게 하는 ‘퍼지이론’에 주목한 이유였다.

성악이 취미였던 그는 음악과 퍼지이론을 접목, ‘지휘로봇’을 개발했다. 지휘자의 동작을 감지해 음악을 연주하는 시스템이었다. 이 결과를 1991년 미국 샌디에고에서 열린 퍼지학술대회에서 발표한 게 그의 인생 전환점이었다. 당시 이 발표를 들은 참가자가 그에게 다가와 이렇게 말했다고 한다. “그 시스템을 청각장애인을 위한 수화 시스템에 응용을 하는 게 좋지 않겠습니까?”

발표자료를 정리하느라 이야기에 집중하지 못하고 있던 그는 이 조언에 눈이 번쩍 뜨였다고 했다. 곧바로 구체적인 조언을 얻기 위해 고개를 돌렸지만 참가자는 이미 멀어진 상태였다. ‘박사학위를 받은 뒤 약 15년간 사람을 내쫓는 일에만 매달렸다’던 변 교수는 그날을 계기로 장애인의 생활을 돕는 ‘보조로봇’ 연구에 뛰어든다. 이후 인터뷰에서 변 교수는 종종 그날에 대해 “천사의 목소리를 들었다”고 표현했다.

이후 그와 연구팀은 1990년대 말까지 청각장애인을 위한 수화로봇, 지체장애인을 위한 휠체어 기반 로봇팔 ‘카레스’, 스스로 장애물을 피해가며 목적지를 찾아나가는 안내견 로봇 등을 잇따라 발명했다. 2003년 개발한 ‘카레스Ⅱ’는 장애인이나 노약자를 위해 식사보조, 물 마시기, 얼굴 닦기, 물건집기부터 컴퓨터 사용까지 약 12가지 일을 대신해주는 기능을 가진 재활로봇이었다. 그의 노력은 2003년 로봇공학 분야 노벨상이라 불리는 ‘조셉 엥겔버거 로보틱스상’ 수상으로 이어졌다.

변증남 교수와 한국과학기술원(KAIST) 전기전자공학전공 연구팀이 2003년 개발한 휠체어 기반의 재활로봇 '카레스Ⅱ' . 한국과학기술원 제공.
로봇과 사람은 소통해야 한다

그의 연구에는 ‘로봇은 인류의 복지와 행복을 위한 것’이라는 철학이 깔려있다. 그가 1999년 카이스트에 ‘인간 친화 복지로봇시스템연구센터’를 세운 것도 같은 맥락이다. 이곳에선 아직도 많은 제자들이 인간을 위한 로봇 발전을 위해 힘쓰고 있다.

그는 사람들이 로봇에 대해 가지는 막연한 두려움을 잘 알고 있었다. 그는 과거 직접 쓴 칼럼에서 “많은 공상과학소설과 영화는 인간성이 소멸된 암울한 미래의 상징으로 기계인간을 단골소재로 사용하고 있으며 이는 로봇이란 잠재적으로 매우 위험한 존재라는 잘못된 인식을 퍼뜨리는 결과를 낳았다”고 지적했다. 로봇 연구의 중심이 ‘인간을 닮은 로봇’에서 ‘인간과 원활히 소통하는 로봇’으로 무게중심이 옮겨가고 있다는 판단에서였다.

고 변증남 교수가 카이스트 재직시절 이끌던 인간친화 복지로봇시스템 연구센터에서 2009년 국립재활원 재활연구소에 기증한 장애인용 재활ㆍ보조로봇. 국립재활원 제공.

그는 로봇을 두려워하고 배척하는 대신 더 잘 이용하고 적극적으로 활용해야 한다고 진단했다. 고령화시대 독거노인들을 위한 ‘친구로봇’, 세월호 참사 같은 재난이 발생했을 때 투입될 구조용 로봇 등이 가능한 사례다. 다만 변 교수는 이런 로봇들을 개발하는 과정에서 반드시 ‘인간이 설계ㆍ운전의 중심이 돼야 한다’고 단호히 강조했다. 그의 연구팀이 개발한 장애인용 지능형 침대가 로봇팔 대신 이동형 쟁반을 갖고 있는 것도 사용자가 위험을 느끼지 않고 더욱 친숙하게 받아들일 수 있도록 배려했기 때문이다.

그의 통찰에는, 40대 이후 공학과 인문학의 융합 필요성을 느끼고 스스로 철학서를 읽으며 공부한 흔적이 남아있다. 세상을 떠나기 약 2년 전 까지도 그는 학제간 융합과 다양한 부서간 협업을 통해 새로운 로봇이 나온다고 강조했다. 후학은 물론 정책결정자들을 향한 열띤 조언이었다. 그가 다져놓은 토양에선 지금도 ‘사람을 위한 로봇’이 자라고 있다.

신혜정 기자 arete@hankookilbo.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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