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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여의도가 궁금해?] 표 먹고 사는 의원들에 “지역구 챙기기만” 비판은 훈장으로

입력
2017.12.09 04:40
12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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쪽지예산 시나리오 F안까지 준비

통과 후엔 지역구서 홍보 열 올려

주민들은 “유능하다” 평가한다고

5일 밤 국회 본회의장에서 2018 예산안이 상정된 후 찬반 토론을 마치고 자정을 넘어 차수변경된 6일 새벽 예산안이 표결 처리되는 동안 자유한국당 의원들이 투표하지 않고 반대피켓을 들고 있다. 오대근기자
5일 밤 국회 본회의장에서 2018 예산안이 상정된 후 찬반 토론을 마치고 자정을 넘어 차수변경된 6일 새벽 예산안이 표결 처리되는 동안 자유한국당 의원들이 투표하지 않고 반대피켓을 들고 있다. 오대근기자

국회가 2018년 예산안을 지각 처리한 뒤 여의도에 후폭풍이 일고 있다. 법정 처리 시한을 지키지 못하자 비판이 이어졌고, 실세 의원들의 지역구 예산 챙기기엔 눈총이 쏟아졌다. 명분과 실리를 모두 얻은 더불어민주당, 알짜예산을 건진 국민의당은 환호했지만 자유한국당은 “협상전략 실패였다”며 원내 지도부가 성토 당했다. 예산국회 전후 사정을 알아보기 위해 국회팀 기자들이 카톡방에 모였다.

달빛 사냥꾼(달빛)= 내년 예산안 법정 처리 시한은 2일 토요일 자정이었는데 지키지 못했죠.

5년 만에 여당기자(여기자)= 지난주 협상 때 여야가 이미 뭘 주고 받을지 계산기는 다 두드려놨는데 ‘결단’을 하지 못했기 때문이죠. 서로 공을 넘기고 뜸을 들이면서 좀 더 얻어낼 방법이 없나 노렸던 거죠. 그러나 법정 처리 시한을 넘기며 주말 사이 여론이 악화한 게 여야의 결심을 앞당겼죠. 3일 오전 여야 원내대표실을 취재해 보니 숫자 등 미세조정은 남았지만 잠정합의문 초안은 대략적으로 나와 있는 상태였습니다.

달빛= 합의의 마지막 물꼬를 튼 것은 우원식 민주당, 김동철 국민의당 원내대표의 4일 조찬회동이었죠.

여의도 탐구생활(탐구생활)= 협상이 지지부진하자 지난 추경예산정국과 마찬가지로 국민의당을 우선적으로 끌어들인 건데요. 예산 협상과 이후 법안, 선거제도 개편 논의 등 모든 카드를 꺼내놓고 패키지 협상이 이뤄졌다고 합니다.

호밀밭의 세탁기(이하 세탁기)= 사실 국민의당 입장에선 예산 챙기기만큼 선거구제 개편도 중요합니다. 현행 소선거구제보다는 중대선거구제 개편이 당에겐 필요하기 때문이죠. 이에 김 원내대표가 조찬을 마칠 때쯤 선거구제 개편 확답을 받고 싶어 운을 띄웠고 우 원내대표가 기다렸다는 듯이 화답했다고 합니다.

달빛= 여야 3당은 4일 오후 잠정합의문을 발표했죠. 마라톤협상 6시간 만이었습니다.

야인시대(야인)= 정우택 한국당 원내대표의 설명은, 공무원 증원과 법인세 인상은 여당이 사활을 건 사안이기 때문에 어떻게 해도 협상이 안되겠다는 판단이 들었다고 합니다. 그런데 두 사안은 한국당에서도 받을 수 없는 내용이었죠. 협상 와중에 우원식, 김동철 원내대표가 ‘그럼 합의문에 두 안을 넣긴 하되 한국당은 동의하지 않는다는 걸 명시하면 어떻겠느냐’고 제안했고 그걸 받은 거라는 거죠.

세탁기= 야당 출입기자들이 볼 때도 잠정합의문 내용이 이상하긴 했습니다. ‘유보 조항을 넣을 거면 합의문을 왜 작성했나’ 하는 궁금증이 곧바로 들었죠. 그러니 의원들은 얼마나 분통이 터졌을지도 일면 이해가 됩니다.

달빛= 4일 오후 합의가 이뤄지고도 6일 새벽에야 예산안이 국회를 통과했는데요.

탐구생활= 본회의 상정에 필요한 시트 정리 등 실무작업이 늦어졌기 때문인데 실은 전날부터 이어진 예결위 소(小)소위 논의가 지연됐기 때문입니다. 최종 증액 부분을 조정하면서 야당 간사들이 지역구 예산을 요구하고 정부와 조정하면서 고성도 오가고 상당한 진통을 겪었다는 후문입니다.

여기자= 국민의당 예결위 간사였던 황주홍 의원의 유별난 지역구 사랑에 기획재정부 공무원들도 혀를 내둘렀다고 하네요. 보통 의원들의 쪽지예산 민원에 대비해 A안, B안, C안 정도까지 대응 시나리오를 준비하는데 황 의원의 경우 D안, E안, F안까지 나갔다고 합니다. 결국 소소위가 예정보다 늦은 5일 오전 10시가 다 돼서야 끝났고 후속 작업에 시간이 더 소요되면서 결국 본회의는 오후 8시로 미뤄졌습니다.

세탁기= 그것과는 별개로 한국당 상황도 만만치 않았기 때문이죠. 4일 잠정합의 직후 한국당에서는 정 원내대표 사퇴론 등 지도부 책임을 묻는 성토가 줄줄이 이어졌습니다. 결국 합의 무효냐, 아니면 본회의 불참이냐를 놓고 의원총회에서 다퉜지만 결론을 내지 못하는 사이 정세균 국회의장이 본회의를 개회했죠.

여기자= 한국당은 5일 하루 종일 지연 전술을 펴다 본회의가 열리고 법인세가 통과되자 뒤늦게 허둥지둥 들어와서 의장석 주변을 점거하고 항의 시위를 하는 등 소동을 벌였죠. 30분 정회 후 속개된 본회의에서 한국당 의원들은 반대토론에 나서며 지연전술을 또 한번 폅니다만, 욱하고 화만 냈지 지구력은 부족해 보였습니다. 여당에선 ‘반대토론에 필리버스터처럼 10명 이상이라도 나오는 줄 알았는데 5명 하고 끝내더라’라고 비웃는 얘기도 나오더군요.

달빛= 5일 밤 한국당 의원들이 뒤늦게 회의장에 들어왔지만 법인세법 인상 반대에 투표하지 않았습니다.

야인= 정우택 원내대표는 만약 수정안 투표에 한국당이 참여해 부결 됐더라도 그땐 여당과 국민의당이 의원들을 더 끌어 모아 더 센 인상안인 정부 원안을 통과시켰을 것이라고 항변합니다. 하지만 한국당이 표결에 참여했어도 수정안이 반드시 부결되지는 않았을 거예요. 수정안 표결에서 한국당이 없어 통과될 가능성이 높으니 마음 놓고 반대표나 기권표를 던진 소신파 의원들도 있었다고 하거든요. 결과가 뻔한 사안에는 의원들이 정치적인 소신을 표시하는 투표를 하기도 하니까요.

예산안 처리 지연전술 편 한국당

반대 토론 나섰지만 지구력 부족

與 “필리버스터 10명 예상했는데

5명만 하고 끝내더라…” 웃기도

달빛= 이 와중에 지역구 예산을 쌈짓돈처럼 챙긴 의원들은 비판에도 불구하고 홍보에 열을 올리기도 하던데요.

여기자= 사실 의원들한테는 그만한 의정활동 홍보물이 없죠. 과거에 모 중진 의원은 지역구 예산 쏠쏠히 챙겼다는 비판 기사를 쓰자 해당 기자에게 전화를 해 “이렇게 도와주니 고맙다. 안 그래도 우리 지역구에 신문 500부를 뿌렸다”고 감사인사를 전할 정도였다고 하니까요. 실제 이번에도 여당 지도부 의원실로부터 “이거 우리 도와주는 거냐, 아니면 디스냐”는 얘기까지 들었습니다. 야당에 비해 여당 지도부가 실속을 차리지 못했다는 기사에 대한 반응이었는데, 예산을 못 챙겼다는 게 의원 입장에선 달갑지 않은 것이죠. 물론 여당 지도부는 미리 정부와 협의해 지역 예산을 더 챙겼다는 얘기도 있어요. 대놓고 홍보하는 대신 티 나지 않게 챙기는 의원들이 더 고수라고 하더라고요.

탐구생활= 표를 먹고 사는 게 정치인이니 ‘지역구 챙기기에 급급했다’는 언론의 비판보다 좋은 훈장은 없다고 해요. 실제 전국지에서 이런 비판 보도가 나오면 지역지에서도 그대로 인용되고 지역주민들로부터는 오히려 유능하다는 평가를 받는다고 해요. 정부가 미처 챙기지 못한 지역 예산을 지역구 의원이 세세하게 챙긴다는 차원에서는 긍정적인 면도 있다고는 하지만 지나치게 지역 이기주의로 간다는 점이 문제겠죠.

세탁기= 예산 챙기기 비판기사에 이름이 올라간 한 의원실에서는 오히려 “확보한 예산 중 빠진 게 있는데 넣어 줄 수 없느냐”며 전화가 오기도 했습니다. 오죽하면 본회의 예산안 표결에 불참한 한국당 의원들조차도 보도자료와 페이스북을 통해선 ‘00억 예산 확보’ 자료를 배포하기도 했죠.

달빛= 이런 예산안 처리 시스템을 바꿔야 한다는 여론도 비등한데요.

탐구생활= 짬짜미 예산은 없애야죠. 짧은 기간 동안 예산 협상을 하다 보니 예산을 자세히 들여다보는 데 한계가 있고 여야 이견이 첨예한 부분은 소소위 회의까지 가게 되는데 소소위가 밀실에서 비공개로 진행되다 보니 여기서 각종 주고받기가 발생한다는 겁니다. 소소위를 공개회의로 바꾸고 예결위를 상설 위원회로 만들어 상시 감시 체계를 가동해야 한다는 주장이 이번에도 나왔는데 국회 차원의 결단이 필요해 보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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