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북 군사대응 시나리오 유행
외교 라커룸 쇼크에서 벗어나
주변국 게임서 길 잃지 않아야
니키 헤일리 유엔주재 미국 대사가 6일(현시시간) 폭스뉴스 인터뷰에서 미국의 동계 평창올림픽 참가가 결정되지 않았다고 말해 파문을 낳았다. 사진은 5일 유엔 안보리 긴급회의에서 북한의 대륙간 탄도미사일 발사를 비난하는 모습. 연합=AFP

한국과 미국이 싸우면 누가 이길까. 당연히 미국이 승리하고 그래서 양국 간에 명운을 건 전쟁이 일어날 가능성은 없다. 군사력 차이뿐 아니라 인구가 한국의 7배이고 1인당 국내총생산(GDP)은 2배이니 국력 차가 14 대 1로 벌어진 때문이다. 하물며 국력이 40 대 1인 한국과 북한은 어떠할까. 우리 기업인들이 코리아 리스크를 걱정하는 외국 투자자들을 안심시킬 때 자주 쓰는 논리 중 하나다.

보수 성향의 외교안보 전문가들조차 경제계의 이런 논리에 동의하고 있다. 전문가들은 대북 군사옵션이 정책적으로만 가능하고 기술적으론 거의 불가능하다고 보고 있다. 제재 수단도 많이 남아 있어, 미국이 중국과의 불편함만 감수한다면 굳이 군사조치까지 갈 이유도 없다는 것이다.

북한의 화성-15형 미사일 발사 이후 한반도 주변이 다시 숨가쁘게 움직이고 있다. 가능성을 떠나 대동강변에 전시된 푸에블로호 공격을 비롯한 20여가지 북폭설이 외교가에 흘러 다닌다. 공포감에 불을 댕기듯 미국은 개막 2개월을 앞둔 동계 평창올림픽 출전에 대해 확답을 피하고 있다. 백악관과 국무부가 “공식 결정이 내려지지 않았다” “올림픽 참가를 고대하고 있다”는 식으로 뉘앙스가 묘한 발언을 반복하고, 유엔대사는 “안전을 걱정하고 있다”며 기정사실로 여겨지던 올림픽 참가에 의문을 던졌다. 프랑스도 한반도 긴장 완화가 필요하다는 입장을 내보였다. 제프리 펠트먼 유엔 정무담당 사무차장에 이어 토마스 바흐 국제올림픽위원회(IOC) 위원장이 평양 방문을 추진하는 것도 같은 이유일 것이다.

위기에 단련되고 적응된 한국과 달리 북한 미사일 사정권에 처음 놓인 서방의 위기감은 높을 수밖에 없다. 군사옵션을 이론적 방안으로만 거론하던 미국 역시 직접적 위협이 가해지자 진지해지고 있다. 한반도 남쪽에서 사상 최대의 한미 전투기 전폭기들이 참여한 훈련이 진행됐고, 미국 하와이에서는 핵 공격 대피 훈련 경보가 30년 만에 울렸다. 선제공격을 공개 거론하는 정치인과 평론가들이 늘어나는 미국 내 상황은 ‘터치앤고’(아슬아슬한 상태)에 비유될 정도다.

물론 문재인 대통령은 군사공격 시 한국의 사전 동의가 있어야 한다는 점을 기회가 있을 때마다 강조하고 있다. 하지만 미국 정부는 이를 수용하지 않았다고 뉴욕타임스(NYT)는 수 차례 보도하고 있다. 외견상 1968년 푸에블로호가 나포되자 미국이 동해에 항모와 함정 30여척을 한달 이상 배치, 전운을 고조시킨 것 같은 긴장감이 한반도를 휘감고 있다.

그런 반면 북한 미사일이 발사된 지난 달 29일(한국시간) 미 국무부는 정치군사 사무국을 담당하는 티나 카이다노 부차관보가 한국을 방문한다고 발표했다. 미사일 발사 사실을 미리 알고 있던 국무부의 미디어노트에는 공교롭게도 그가 해외 무기판매를 총괄하고 있다고 적혀 있다. 아직도 트럼프 정부의 본 모습이 ‘미국 우선주의’와 ‘힘에 의한 평화’ 사이 어딘가에 놓여 있다고 볼 수밖에 없는 연유다.

라커룸 쇼크란 게 있다. 지금은 다르지만 1990년대 미국 메이저 리그 진출 초창기 동양 선수들이 큰 활약을 하지 못한 이유 중 하나로 등장하는 얘기다. 라커룸에서 백인 흑인 선수들의 벗은 몸매를 보고 그만 근육을 키우려다 몸에 무리를 해 부상을 입고 제 활약을 못한다는 것이다. 서양선수들의 힘과 속도를 따라잡기 위해 근육을 붙이는 몸을 만들다 선수생명을 단축시키고 쓸쓸히 귀국하는 이가 많았던 데서 나온 말이다. 쓸데 없는 근육을 붙이는 운동이 야구에만 있는 건 아니다. 독자적인 스타일로 외교의 메이저 리그에서 뛰지 않으면 한반도의 질서 변화를 주도하려는 주변국 게임에서 길을 잃고 있을 수 있다. 과거 미국과 북한은 대화와 대립을 오가며 외교적 섀도 복싱에 치중했다. 극단적 경향을 가진 절름발이 인식이 가져온 정책의 실패는 앞선 정권들에서 경험했다. 정치엘리트들의 왜곡된 의도, 대중의 극단적 정서가 외부의 충돌을 야기하는 경우도 많았다. 의연하게 대처하고 대중인기가 아니라 냉정하게 국익을 챙겨야 한다.

이태규 뉴스1부문장 tglee@hankookilbo.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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