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한제국 황태손 이구 前 부인
종친회서 세자빈 인정 못 받아
결혼 24년 만에 이혼 후 미국행
숨 거둘 때까지 남편 그리워해
이구와 줄리아 멀록.

대한제국 황태손 이구(1931~2005)의 부인인 ‘마지막 세자빈’ 줄리아 리(본명 줄리아 멀록)가 지난달 26일 미국 하와이에서 노환으로 별세했다는 소식이 뒤늦게 전해졌다.

6일 이남주 전 성신여대 음악과 교수에 따르면 줄리아 리가 하와이 할레나니 요양병원에서 별세했다. 향년 94세.

줄리아는 고종의 손자이자 영친왕 이은(1897~1970)과 이방자 여사의 외아들인 이구의 전 부인이다. 마지막 황태손인 이구는 19세였던 1950년 미국으로 건너가 매사추세츠공대를 졸업하고 뉴욕에서 건축가로 활동했다. 뉴욕에서 만나 사랑에 빠진 이구와 줄리아는 1958년 결혼했다. 독일계 미국인인 줄리아는 이구보다 8살이 많았다.

2005년 타계한 이구의 영정. 한국일보 자료사진

이들은 5년 뒤 일본에 있던 영친왕과 이방자 여사의 요청으로 귀국해 서울 창덕궁 낙선재에 머물렀다. 하지만 이 귀국이 시련의 시작이었다. 종친회는 외국인인 줄리아를 세자빈으로 인정하지 않았고 후사를 잇지 못한다는 이유로 이혼을 종용하기도 했다. 두 사람은 1977년 별거에 들어갔고 이구는 경영하던 사업체가 부도나자 1979년 일본으로 건너갔다. 결국 두 사람은 결혼 생활 24년 만인 1982년 이혼했다.

줄리아는 이혼 뒤에도 한국에 머물렀다. ‘줄리아 숍’이라는 의상실을 운영하고 장애인 복지사업에도 관심을 기울였다. 하지만 경제상황이 빠듯했고 1995년에는 하와이의 가족에게로 돌아갔다.

줄리아와 이구는 그 후로 다시는 만나지 못했다. 일본으로 건너갔던 이구는 2005년 도쿄의 옛 아카사카 프린스 호텔에서 숨진 채 발견됐다. 슬하에 자식이 없어 임종을 지킨 사람도 없었지만 그의 영결식은 같은 해 7월 24일 서울에서 성대하게 치러졌다. 당시 한국에 잠시 머무르고 있던 줄리아는 장례식에 초대 받지 못했다. 모자를 푹 눌러 쓴 채 휠체어에 앉아 노제를 바라보는 모습이 방송사 카메라에 잡혔을 뿐이다.

줄리아는 거동이 불편해 누워만 있다가 쓸쓸히 눈을 감은 것으로 전해졌다. 임종은 그녀가 낙선재 시절 입양한 이은숙씨가 지켰다. 이구는 고종과 순종이 묻힌 경기 남양주시의 홍유릉 영역에 묻혔으나, 전 부인인 줄리아의 유해는 바다에 뿌려졌다. 이구의 삼종질(9촌 조카)인 이남주 전 교수에 따르면 줄리아는 남편을 항상 그리워했으며, 죽은 뒤 유해의 일부라도 한국에 보내지길 원했다고 한다.

양진하 기자 realha@hankookilbo.com

일본에서 타계한 대한제국 마지막 세손 이구(전주이씨 대종동약원 명예총재)의 씨의 유해가 2005년 7월 20일 오후 인천공항에 도착하자 유가족들이 유해를 운구차로 옮기고 있다. 줄리아 리는 먼발치에서 전 남편 이구의 운구를 바라봤을 뿐 문상을 하지 못했다. 한국일보 자료사진

web_cdn 저작권자 © 한국일보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

문화 최신기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