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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종훈의 자동차 현대사]부도 위기 속 탄생한 스포츠형 세단 '슈마' 4년 만에 단종

입력
2017.12.05 15:27
20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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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아차가 유럽 전략 차종으로 개발한 슈마를 발표한 건 1997년 11월이었다. 시점에 주목할 필요가 있다. 한국 자동차 산업에서 최악의 해였다. 그해 7월 기아차 부도가 결정되면서 한국사회는 한치 앞을 내다볼 수 없는 혼란 속으로 빨려 들어간다. 기아차가 부도나던 1997년 7월, 한국은 자동차 보유 대수 1,000만대를 돌파한다. 참으로 묘한 대비다. 1988년 서울올림픽을 계기로 시작된 자동차 대중화의 시기가 정점을 찍는 순간 거품이 꺼지며 최악의 시기가 시작된 것이다.

최악의 시기에 태어난 비운의 자동차라 할만하다. 가장 힘들었던 시기, 가장 강한 최고의 차이고 싶었을까. 슈마(SHUMA)는 최고의 뜻을 지닌 라틴어 ‘수마(SUMMA)’와 야생동물 퓨마의 합성어다.

7월에 부도난 기아차가 8월에 세피아2를 내놨고 11월에 슈마를 출시했으니, 비록 가난했으나 왕성한 생산력은 남부럽지 않은 흥부네 집이 따로 없었다.

슈마는 세피아2의 해치백 스타일로 등장했지만, 디자인을 다르게 가져가고 모델명도 따로 정해 완전히 다른 차로 자리매김했다. 곡선이 강조된 디자인에 두 개의 원형 헤드램프를 배치해 개성 강한 모습을 완성했다. 보닛의 굴곡과 둥근 헤드램프 등이 당시 WRC에서 명성을 날리던 토요타 셀리카와 닮았다는 의견이 많았다.

슈마는 나름 수출전략형 모델이었다. 부도로 재정 압박이 큰 상황에서도 TV 광고를 유럽에서 찍은 이유다. 슈마는 신세대를 겨냥한 유럽 스타일의 준중형 스포츠형 세단으로 소개됐다. 스포츠세단이 아니라 ‘스포츠형’ 세단이라고 표현한 데서 알 수 있듯이 고성능이라기보다 스포티한 디자인이 강조된 모델이었다.

1.5 SOHC, 1.5 DOHC, 1.8 DOHC 세 종류의 가솔린 엔진을 적용해 779만~910만원에 판매했다. 정통 스포츠카 엘란의 엔진을 이식해 출력과 순간 가속이 뛰어나다는 게 기아차의 자랑이었다. 1.8 엔진의 최고출력이 130마력이었다.

슈마가 시판되면서 기아차는 총력 판매에 나선다. 당시 박제혁 기아차 사장은 MBC 미니시리즈 드라마에 카메오로 출연해 기아차 알리기에 나섰다. 신차발표회에서 축사하고, 디자이너들을 격려하는 장면에 직접 박 사장이 출연한 것. 드라마 속 신차발표회에선 고 최진실씨가 슈마를 타고 등장했다.

기아차의 법정관리인으로 정부가 파견한 진념 기아그룹 회장도 슈마에 정성을 들였다. 그는 업무용차로 타던 엔터프라이즈 대신 슈마를 한동안 타고 다녔다. “디자인이 뛰어나고 생각보다 승차감도 좋다”는 게 그의 평가였다.

기아차는 전 직원이 ‘차 한 대 더 팔기 운동’을 펼치며 총력 판매체제에 나섰다. 구호는 뜨거웠지만 시장은 차가웠다. 거의 모든 회사가 구조조정에 나서고, 회사에서 내몰린 직장인들이 갈 곳을 못 찾아 떠돌던 시기, 차가 팔릴 리가 없었다. 슈마는 불과 4년 남짓 수명을 이어가다 2001년 7월 단종되고 역사 속으로 사라진다. 불과 4년 남짓, 포연 자욱한 전장에 홀연히 피었다 아무도 모르게 사라진 꽃처럼 슈마는 짧은 생을 마치고 역사 속으로 사라졌다.

오토다이어리 편집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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