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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해외 석학 칼럼] 트럼프가 놓친 대북 전략

입력
2017.12.03 10:00
29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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도널드 트럼프 미국 대통령이 어려운 북한 문제를 물려 받았다고 불만 터뜨리는 것을 이해 못할 바는 아니다. 김정은 북한 노동당위원장은 협상에 관심이 없다. 핵무기와 장거리 미사일의 무모한 개발을 두고 누가 무슨 말을 하든 들으려 하지 않는다. 그러나 트럼프가 물려 받은 문제라고 해서 그걸 해결할 책임이 없다고 할 수는 없다. 지금까지 그는 대북 전략 이행은 말할 것 없고 그것을 구체화하는 데도 실패했다. 재임 1년 동안 그의 유일한 업적은 유엔 추가 제재를 얻어낸 것뿐이었다. 더 나쁜 것은 그가 전임 대통령들을 심하게 불평해서 자신이 무엇을 해야 하는지 모른다는 걸 보여주고 있다는 점이다.

북한과 관련한 가장 최근 조치로 트럼프는 지난달 초 북한을 미 국무부 테러지원국 명단에 올린다고 떠들썩하게 발표했다. 김정은의 행위를 감안하면 그 결정은 정당하지만, 조지 W 부시 전 대통령이 2008년 북한을 그 명단에서 지우기로 한 결정과 마찬가지로 대단히 상징적인 것이다. 백악관은 북한의 테러지원국 재지정을 “중요한 단계”라고 주장한다. 하지만 그건 사실과 다르다. 미 재무부 추가 제재를 위해 그런 지정이 필요하지 않다. 테러지원국으로 지정되면 미군의 지원을 받을 수 없게 되지만, 북한에는 애초 그럴 가능성이 거의 없었다. 그리고 미국이 회원국으로 있는 국제금융기구가 테러지원국에 대출이나 다른 형태의 원조를 할 경우 법적으로 돕지 못하지만, 북한은 어떤 국제금융기구의 회원도 아니다.

여러 사람이 지적하듯 테러지원국 명단은 보안기관이 테러 집단들과 연관되었을 국가 전체의 목록도 전혀 아니다. 현재 이 목록에는 이란 북한 수단 시리아 4개국이 올라있다. 베네수엘라 독재자 우고 차베스가 콜롬비아혁명군(FARC)과 관계가 좋았다는 건 널리 알려진 사실이다. 미 국무부는 FARC를 테러 조직으로 지정했지만 베네수엘라는 테러지원국 명단에 포함하지 않았다. 마찬가지로 파키스탄의 보안 조직은 그 나라를 테러지원국 명단에 포함시키기에 충분한 집단들과 관계가 있다고 보는 사람들이 많다.

똑같이 상징적이라고는 해도 부시가 명단에서 북한을 삭제한 것과 트럼프가 복원한 것은 의사결정의 맥락이 완전히 다르다. 2008년에 북한은 일정한 조건을 충족했다. 첫째, 중국 일본 러시아 한국 미국은 6자회담에 합의했다. 한반도 비핵화라는 회담의 목표는 명확했다. 그 결과 북한 영변 핵시설을 폐쇄했다. 또한 당시 북한은 핵 활동 검증 시스템을 구축하기 위한 회담에 참가하고 있었다. 북한 정권은 국제 감시단을 영변으로 불러 핵시설 가동 기록들을 제공했다. 그 기록은 지금도 거기에서 실제로 생산된 플루토늄량을 측정하는 가장 정확한 자료들 중 하나다. 확실히 부분적인 거래이긴 했지만 당시 북한은 영변 원자로 냉각탑을 폭파해 미국의 상징적인 행동에 상응하는 행동을 했다.

그 후 협정은 고농축우라늄(HEU)으로 핵분열 물질을 개발하려는 계획이 있었다는 것을 북한이 완강하게 부인하면서 무산되기 시작했다. 북한은 그런 계획에 사용되는 장비와 미국 외교관들이 한층 더 의구심을 갖진 특수물질 표본을 해외에서 사들인 이유를 설명하지 못했다. 그러고 수년 간 멈췄던 영변 원자로가 다시 가동되었다. 특히 2006년 이후 북한이 실시한 6차례의 지하 핵실험은 모두 6자회담 전 원자로에서 확보한 플루토늄과 일치하는 것이다. 북한이 터널 내 어딘가에서 HEU 시설을 운영할 가능성은 심각하게 우려할 만한 것이다. 그러나 영변은 쓸모 없어졌다는 주장과는 반대로 명확하고 현존하는 위험이었다.

트럼프가 정부 내에서 시비가 일지 않고 사실 국제적인 반향도 없는 테러지원국 명단에 북한을 올린 것은 이 명단이 미국이 마음대로 할 수 있는 유용한 제재이기 때문이다. 지난 6개월 동안 테러 또는 테러리스트 단체와 협력이 없다는 지정 해제 기준은 매우 유연한 것이어서 언제든 외교 협상용으로 사용하기 좋다. 마찬가지로 지정 해제는 김정은이 말레이시아에서 이복 형 암살을 지휘했을 때처럼 조건이 맞으면 쉽게 뒤집을 수 있다.

북한 문제를 해결하려면 트럼프가 아직 보여준 적이 없는 신중한 목적과 일련의 원칙이 있어야 한다. 그런 효과적인 정책에는 중국과 협력이 포함될 것이다. 중국 지도자들에게 아첨하란 소리가 아니다. 협력은 한 차례 거래가 아닌 장기간에 걸친 개입을 토대로 해야 한다. 아마도 그보다 더 중요한 것은 중국뿐만 아니라 이 지역의 다른 이해관계자들과 매일 관여하는 것이다.

그런 정책을 위해서는 경험 많은 외교 전문가들로 구성된 팀을 운용하는 미 국무장관에게서 도움 받을 부분이 많을 것이다. 또 트럼프와 그의 보좌진은 전임자들이 애쓴 결과물이 일을 더 어렵게 만들었다고 탓하기보다 그게 효과적이었다고 인정하는 것이 이로울 수 있다. 불행하게도 트럼프 정부는 아직도 이 마지막 교훈을 모르고 있다. ⓒProject Syndicate

크리스토퍼 힐 미국 덴버대 조지프 코벨 국제대학장ㆍ전 국무부 차관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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