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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메아리] 그들이 차별에 찬성하는 이유

입력
2017.11.29 16:56
30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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공청회에서 나온 정규직화 반대 발언

비정규직의 땀과 노력 외면해선 안돼

공정ㆍ경쟁으로 차별을 합리화해서야

‘능력주의의 등장’은 영국의 사회학자이자 정치가였던 마이클 영의 풍자소설이다. 사람들에게 시험을 보게 하고 그 결과에 따라 해야 할 일을 할당하는 미래 사회가 소설에 등장한다. 가장 높은 점수를 받으면 가장 중요한 일을 담당하고 점수가 낮으면 그 반대가 되는 게 그 사회의 작동 원리다. 언뜻 공정해 보이는 그 사회는 그러나 높은 점수를 받아 엘리트로 분류된 사람들이 그렇지 못한 사람들을 억압하고 경멸하면서 승자독식과 약육강식이 지배하게 된다.

최근 인천공항 비정규직 문제 해결을 위한 공청회에서 나온 말들을 들으면 이 소설이 경고한 시험과 능력주의의 위험을 떠올리게 된다. “힘든 취준생 시절을 거치며 수백 대 일의 경쟁률을 뚫고 이 자리에 서 있다. 그런데 왜 이런 과정을 거치지 않은 비정규직이 너무 쉽게 정규직이 되려 하느냐.” “정규직 되고 싶으면 시험 치르고 들어오라.”

비슷한 일은 서울교통공사에서도 있었다. 무기계약직의 정규직 전환 계획에 정규직 직원들이 반발한 것이다. 자신들은 치열한 경쟁을 뚫고 시험을 거쳐 어렵게 정규직이 됐는데 입사가 쉬운 무기계약직들이 손쉽게 정규직으로 전환하면 자신들의 노력이 무시된다고 했다.

비정규직을 줄이자는 합의에 근본적 의문을 던진 이들 사건은 실은 사회학자 오찬호가 ‘우리는 차별에 찬성합니다 : 괴물이 된 이십 대의 자화상’이라는 책에서 이미 예견한 일이다. 이 책은 대학생들이 수능점수의 차이를 능력의 차이로 확장하고 그에 따른 차별을 거부감 없이 받아들인다고 주장한다. 그러면서도 자신보다 ‘높은’ 곳에 있는 학생들로부터 받는 멸시는 문제삼지 않으면서 자신보다 ‘낮은’ 곳에 있는 학생은 멸시하는 이중성을 보인다고 한다. 4년 전 발간된 이 책의 등장 인물들이 지금쯤 돈벌이를 하고 있을 테니 젊은 직장인 사이에 비슷한 생각이 스며있을 수 있다. 그렇게 보면 인천공항 공청회에서 나온 젊은 정규직들의 발언은 새삼스러운 것이 아니다.

이들 젊은 정규직이 앞세우는 가치는 공정과 경쟁이다. 정유라의 이화여대 부정 입학이나 최근 불거진 강원랜드, 금융감독원, 우리은행 등의 채용 비리는 우리 사회의 정실주의를 고발하면서 공정과 경쟁의 가치를 더욱 드높였다. 그러나 시험과 공개경쟁이라는 절차만 공정이고 나머지는 불공정이라 하는 것은 그 주장하는 이가 원하든 원치 않든 비정규직의 땀과 노력을 부정하는 결과를 낳는다. 그들은 고용 불안과 저임금에 시달리고 지저분하고 위험한 환경 속에서 이미 수 년 또는 수십 년 동안 버젓이 제 일을 했다. 그들이 정규직이 된들 청소나 경비, 시설관리처럼 하던 일을 계속할 테니 정규직 몫인 사무행정 일을 침해할 까닭이 없다. 임금 역시 그들만큼 받고자 하는 것이 아니니 실은 정규직에 아무런 해가 되지 않는다. 그런데도 정규직이 반발하는 것을 보면 공정과 경쟁이라는 구호 뒤에 숨은 본심에 의문이 생긴다. 사회학자 부르디외의 이론을 빌리자면 정규직 되기가 어려운 현실에서는 정규직 자체가 하나의 문화자본이 될 수 있을 것 같다. 경제자본은 많을수록 좋지만 문화자본은 희귀할수록 가치가 올라간다. 타인과의 구별을 통해 자신의 가치를 지키려는 본능이 정규직 지키기라는 껍데기 속에 숨어있을지 모른다.

지금 비정규직 문제는 대부분의 국가에서 심각한 사회 문제가 되고 있다. 그렇다고 해서 한국이 경제협력개발기구(OECD) 회원국 중 그 비율이 유난히 높고 정규직과의 임금격차 또한 갈수록 벌어져 비정규직 문제가 가장 심각한 나라로 꼽히는 것이 합리화되지는 않는다. 게다가 김비환 성균관대 국가전략대학원장이 한국일보 칼럼에서 밝혔듯 사회 구성원 모두가 잠재능력을 충분히 계발할 공정한 기회를 누리는 것도 어렵다. 이런 현실을 외면한 채 정규직이라는 지위를 배타적으로 누리고자 하면 누군가는 지속적으로 손해보고 희생하고 차별을 받아야 한다. 그것을 공정과 경쟁이라는 이름으로 치장할 수는 없다.

박광희 논설위원 khpark@hankookilbo.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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