전국 9곳 모두 전문의 정원 미달
특수성 고려 안 한 수가체계 고쳐야
사회 안전망 기능 제대로 할 것
아주대병원 본관 헬기장에서 외상환자 이송을 위해 출동하는 모습. 아주대병원 제공

전국 9개 권역외상센터 중 한 곳인 충남 천안시 단국대 외상센터의 장성욱 교수(흉부외과 전문의)는 역대 가장 길었던 올 추석 연휴 열흘 중 5일을 징검다리로 24시간 근무를 했다. 당연히 나머지 5일은 휴식을 취해야 했기 때문에 연휴 기간 중 본가나 처갓댁을 방문하는 것은 꿈도 꿀 수 없었다. 그는 “외상외과 전문의를 하면서 가장 힘든 것은 환자 진료가 아니라 가족과 함께 지내지 못하는 것”이라며 한숨을 쉬었다.

총상을 입은 북한 귀순 병사를 살려낸 이국종 아주대병원 교수의 호소로 권역외상센터의 열악한 현실을 개선해야 한다는 요구가 들끓고 있다. ‘감염 위험에 노출 된 채 격무에 시달리지만 병원으로부터 적자 책임을 추궁 당한다’는 것이 관련 종사자들의 한결 같은 목소리다. 이에 정부는 건강보험 급여체계 개편과 인력지원 확대 등 제도 정비에 나서겠다고 밝혔고, 국회도 이른바 ‘이국종 예산’ 증액에 여야 막론하고 적극적 행보를 보이고 있다.

하지만 의료계와 학계는 사회안전망의 기능을 하는 외상센터를 정상화하기 위해서는 땜질식 ‘찔끔 예산’ 지원만으로는 곤란하다고 입을 모은다. 지금까지도 여론의 관심을 받을 때는 예산을 일부 늘리고 대책도 내놨지만 관심이 수그러들면 다시 방치돼오길 반복했다는 것이다. 아주대병원 한 관계자는 “2011년 아덴만 여명작전 때처럼 반짝하다 관심이 사라질까 걱정된다”고 말했다.

외상센터 기피, 돈 만으로는 안 된다

27일 보건복지부에 따르면 정부는 현재 운영되고 있는 권역외상센터 활성화 차원에서 의사 인건비를 1인당 연간 1억2,000만원 지원하는데, 외상센터 한 곳당 이런 지원을 받을 수 있는 전문의 수는 최대 23명이다. 필수 인력인 외과, 흉부외과, 신경외과, 정형외과 4개 과목 전문의 20명과 응급의학, 영상의학, 마취과 교수 등 3명으로 구성된다. 지원할 수 있는 최대 인력 수라고는 하지만 3교대 근무와 각종 학회 참석, 휴가 일정 등을 고려하면 사실상 외상센터 운영을 위한 최소 인력이나 다름없다.

그러나 현재 운영 중인 외상센터 9곳 중 23명을 채운 곳은 단 한 곳도 없다. 가천대길병원, 목포한국병원, 부산대병원만 전문의가 각각 18명이고 아주대병원과 원주기독병원은 15명에 그친다. 나머지 병원은 이보다 적은 10명 안팎이다. 내년 상반기 개소를 준비중인 의정부성모병원 한 관계자는 “개소를 위한 가장 큰 걸림돌은 전문의 채용”이라며 “현재까지 확보한 인원은 고작 8명에 불과하다”고 말했다.

외상센터에 충분한 인력이 채워지지 않는 것은 일반외과, 흉부외과 등 나중에 개업을 하기 어려운 소위 ‘비인기과’에 대한 기피 현상이 주된 원인이다. 올해 전공의 모집에서 일반 외과는 전체 정원 191명 중 모집자 수가 172명으로 90.1%에 그쳤고, 특히 흉부외과는 46명 중 25명으로 54.3%에 머물렀다.

외과ㆍ흉부외과 전문의들도 대다수는 외상센터를 기피한다. 적은 인원으로 연중무휴 24시간 근무를 돌리자니 비정상적인 스케줄로 근무를 하는 경우가 속출할 수밖에 없다는 점을 잘 알기 때문이다. 이국종 교수 역시 격무 끝에 왼쪽 눈 시력이 실명에 가까울 정도로 나빠진 것으로 알려졌다. ‘근무 기피→격무→근무 기피’로 이어지는 악순환이다. 이런 노력에 비해 정부 지원 급여인 1억2,000만원은 턱 없이 부족할 수밖에 없다.

현재 정부가 1인당 지원액 증액 등을 논의하고 있지만, 의료계에선 돈 몇 푼을 더 준다고 당장 해결될 수 있는 문제는 아니라고 말한다. 장성욱 교수는 “당연히 처우 개선이 이뤄져야 하겠지만 그렇다고 해도 워낙 업무강도가 강해서 젊은 의사들의 기피현상은 쉽게 없어지지 않을 것”이라며 “외상전문의가 사회적으로 인정받을 수 있도록 정부의 지속적인 지원이 절실하다”고 말했다.

일회성에 그치는 센터 지원금

그나마 전문의는 인건비 지원이라도 된다. 하지만 못지 않게 중요한 간호 인력은 정부 지원이 전무해 병원에서 인력 투입을 꺼린다. 현재 간호사 인력에 드는 비용은 병원이 수가, 즉 외상 환자 진료비를 벌어 충당해야 한다.

전담간호사가 있어도 인력을 빠듯하게 배치하다 보니 간호 인력들이 격무에 시달릴 수밖에 없다. 아주대병원은 전담 간호사가 14명이 있는데, 12시간씩 2교대 근무를 한다. 6년째 아주대병원 권역외상센터에서 일하는 전은혜 외상전담간호사는 “외상 환자는 골절, 뇌, 장기 파열 등 다발성 질환자라 수술실과 응급실, 중환자실 등에서 환자를 치료한 경험이 있는 3년 이상 경력의 간호사들이 근무해야 치료가 수월하다”면서 “그럼에도 외상센터에만 경험 많은 간호사를 쓸 수도 없어 늘 간호 인력 부족을 실감한다”고 했다. 이러다 보니 아예 전담간호사를 두지 않고 중환자실이나 병동에서 일하는 간호사들을 불러 함께 수술을 하는 곳도 적지 않다.

외상센터에 대한 정부 지원이 의사 인건비를 제외하면 일회성에 그쳐 활성화하기 어렵다는 지적도 나온다. 의사 인건비를 제외하면 외상센터 선정 시 병원에 주는 80억원이 정부 지원의 전부다. 지방자치단체에서 지원금을 얹어 주는 경우도 있지만 이 역시 일회성이다. 조현민 부산대병원 권역외상센터 센터장(외상외과 교수)은 “센터를 유치할 때 정부 지원금 80억원이 달콤한 유혹이긴 하지만, 시설과 장비를 구비하면 남는 돈이 없다“며 “병원은 적자를 내는 외상센터에 추가로 투자할 마음이 없다”고 지적했다. 외상센터는 기기를 24시간 가동해 망가지기 쉽지만 교체ㆍ수리비에 대한 정부 지원이 되지 않아 어려움이 있다는 것이다.

흑자 구조 발목잡는 수가 체계

현재의 적자 구조를 해결하지 않으면 연간 400억원 안팎의 예산이 투입되는 외상센터 지원은 밑 빠진 독에 물 붓기가 될 수밖에 없다. 김윤 서울대 의료관리학교실 교수는 “외상센터를 흑자 구조로 전환해 병원 스스로 시설과 인력 투자를 늘릴 수 있게 해야 한다”고 지적한다.

외상센터가 흑자가 될 수 없는 데는 중증 외상 환자가 주 치료 대상인 외상센터의 특수성을 반영하지 않는 수가 체계와 심평원의 깐깐한 심사에 원인이 있다. 가령 외상센터의 수술 수가 산정 시 일반 환자 수술과 마찬가지로 주(主)된 수술 부위에 대해서만 수가를 100% 지급하고, 나머지 수술 부위에 대해선 수가의 50%(상급종합병원은 70%)만 지급한다. 한번에 여러 부위의 수술을 진행하면 인력, 재료 등 투입 비용이 줄어든다는 이유 때문인데, 이는 전신에 부상을 입은 환자가 대다수인 외상센터의 적자 발생의 주 원인이 된다. 또 자기공명영상(MRI) 또는 컴퓨터단층촬영(CT) 결과 문제가 없는 것으로 나타나면 건강보험심사평가원이 촬영 수가를 일부 삭감하는 관행도 문제로 지적된다. 일반 병원에서 과잉 촬영이 이뤄질 가능성을 우려해 생긴 제도인데, 어느 곳을 다쳤는지 MRI나 CT를 통해 전반적으로 확인해 보는 과정이 필수적인 외상센터에는 맞지 않다는 것이다. 그나마 건강보험 대상 환자는 비급여 항목이 있다 해도 환자 본인에게 전액 청구하면 되지만 국토교통부가 관리하는 자동차보험은 급여가 아닌 비급여 항목은 아예 보험사나 환자에게 청구할 수 없다. 간이 에이즈 검사와 같은 비급여는 하지 말거나, 해도 병원 돈으로 해야 한다는 의미다. 김윤 교수는 “저평가된 수가를 10% 포인트 높여주는 등의 개선이 필요하다”고 말했다.

무엇보다 인식 개선을 촉구하는 목소리도 높다. 조현민 센터장은 “의료계에서조차 ‘중증 외상 환자를 응급실에서 처리하면 되지 왜 외상센터를 따로 두냐’는 말이 나온다”면서 “환자 치료를 위해 24시간 준비하고 대기하는 것이 가치가 없는 비효율로 볼 것이 아니라 사회안전망 측면에서 봐야 한다”고 지적했다.

이성택 기자 highnoon@hankookilbo.com

김치중 의학전문기자 cjkim@hankookilbo.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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