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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해외석학 칼럼] 사우디의 포퓰리즘 유혹

입력
2017.11.26 13:51
29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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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우디아라비아의 정치적 지각변동을 이해하려는 노력은 모하메드 빈 살만 왕세자의 심리적 측면에 집중돼 왔다. 그러나 그가 포퓰리즘이란 브랜드를 얻은 데는 구조적 이유도 있다. 이런 요인을 이해하는 게 미래의 발전상을 찾는 열쇠다.

과거 사우디아라비아의 정치적 안정은 각각 세 가지 합의에 의해 유지됐다. 왕족간, 왕족과 전통적 엘리트 집단 간, 그리고 국가와 국민 간 합의다. 알 사우드 왕족 내의 합의는 ‘아사비야(아랍 공동체의 연대의식)’에 뿌리를 둔다. 주체는 국가를 독점하기 위해 서로 밀착하려는 야심 찬 종족들이다. 그러나 왕족은 너무 비대해 지고, 또 통합을 유지할 비용을 정당화하기에 너무 분열돼 있다. 대략 5,000명이 넘는 3세대 왕자들과 그들의 수행원은 매년 300억~500억 달러를 소비한다.

전통적 엘리트 사이의 합의도 왕국의 기원과 맥이 닿아 있다. 명망가들은 경제권력을 축적해 왔다. 정부계약과 보조금, 자본에 대한 특권적 접근, 경쟁으로부터의 보호, 노동력을 자유롭게 수입할 수 있는 권한 등으로 인해 그들의 기업은 국가경제에 더욱 깊게 각인됐다.

이렇게 보호 받은 민간 엘리트 부문은 국내총생산(GDP)의 50%가 넘게 성장했다. 그러나 이는 대부분 외국인 노동자들에 의한 것이기 때문에 외국인에 대한 부정적 인식만 가져왔을 뿐 지역 국민으로의 낙수효과라는 혜택은 전혀 일으키지 못했다. 반면 국민은 충성의 대가로 경제적 안정을 보장 받았다. 정실주의 네트워크를 통한 공공부문의 고임금과 관대한 복지혜택, 소비 보조금 등이다. 그 결과 사우디 국민의 75% 이상이 국가 공무원으로 일하고, 공공예산의 상당부분은 ‘요람에서 무덤까지’의 사회부조에 쓰인다.

그러나 2,000만 사우디 국민의 연간 1인당 소득이 이제는 5,000달러에 불과한 상황에서 이런 시스템은 너무 비용이 크다. 모하메드 왕세자에 닥친 도전은 저비용 정치질서로의 전환을 이끌면서 이에 필요한 변화가 불안정과 시민불안을 야기하지 않도록 경제효용의 이득을 충분히 제공하는 것이다.

베네수엘라 스타일의 접근법은 모하메드 왕세자의 관심을 끌만하다. 베네수엘라의 포퓰리즘적 집착이 모하메드의 엘리트 숙청, 위협적 야당의 중성화와 궤를 같이하게 때문이다. 외국기업이나 국영업체들은 민간서비스를 제공하는 데 있어서 명망가들을 배제할 수 있다. 국제수지는 더 적은 소비와 수입, 특히 왕족과 부유층의 소비를 낮춤으로써 안정될 수 있다.

그러나 이런 접근법은 노동생산상 향상이라는 필수적 도전을 잠시 늦추는 데 지나지 않는다. 레제프 타이이프 에르도한 터키 대통령이나 블라디미르 푸틴 러시아 대통령처럼 압박을 받고 있는 다른 독재자들이 정권의 생존을 위해 민간부문을 희생시키는 근시안적 길을 선택하고 있지만, 사우디 왕국은 가지고 있는 자산을 감안할 때 이보다 더 잘할 수 있다. 전통적 엘리트들과의 전제적 통치연합이 사우디의 현 지도자들에게는 덜 매력적일 수도 있다. 일반 국민에 더 낮은 수준의 소비를 유발하고 더 높은 수준의 압제를 수반하기 때문이다.

더 좋은 방향은 균형과 협력이다. 모든 그룹이 변화의 고통을 분담하고, 개혁은 경제 파이를 키우는 데 집중해야 한다. 사우디아라비아의 풍부한 자산을 생각하면 실행 가능한 전략이다. 사회 해방을 갈망하는 젊은층의 외침, 교육받은 여성의 사회참여에 대한 갈망, 그리고 사우디 국민에게 돌아갈 수 있는 수백만 개의 일자리가 그것이다.

이런 시나리오의 어두운 면은 엘리트 민간부문의 낮은 생산성이다. 중진국 함정에서 벗어나기 위해서는 사우디는 정치까지는 아니더라도 시장만은 법과 공정경쟁의 규칙을 살려 민주화해야 한다. 이런 점에서 모하메드 왕세자의 반부패 캠페인은 민간부문에 대한 보다 광범위한 규칙을 확립하는 노력으로 이어져야 한다.

사우디의 민간부문이 그렇게 작동한다면 경제적 도전은 완화될 것이다. 매년 약 20만 명의 젊은이들이 노동시장에 들어온다. 여성들이 이 대열에 참가하고 공공부문을 점진적으로 줄이기 위해 같은 수의 일자리가 필요로 한다면 향후 5년 동안 200만개의 새 일자리가 필요할 것이다.

하이테크 분야의 대규모 투자보다는 10년 전 시작한 사우디화(化)라는 어려운 길이 점진적으로는 효과를 볼 수 있다. 경쟁과 중소기업에 대한 더 많은 지원이 전제다. 하지만 공무원이 민간부문 노동자보다 3배 이상 더 번다는 점에서 시작이 어렵다. 노동시장을 통합하려면 중기적 목표로 사우디 노동자의 임금을 3분의 1 줄이고 생산성은 3분의 1 늘리는 한편 나머지는 국고에서 보조금을 주는 방식으로 해결해야 한다.

포퓰리즘 유혹은 기껏해야 전제정치와 중간 정도의 복지국가를 약속할 수 있을 뿐이다. 정치적 지지를 확대할 수 있는 경제ㆍ사회적 통합 전략을 세우는 게 낫다. 그러려면 왕국의 미래를 위해 단기적 손실을 감내할 수 있도록 영향력 있는 모든 그룹, 예를 들어 왕족, 명망가들, 서민들 모두를 설득하는 게 먼저다.

이스학 다이완 하버드대 벨퍼 연구센터 중동문제 연구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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