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37> 리들리 스콧의 '에이리언'

#1
외계 생명체 강렬하게 형상화
실재처럼 믿게 해 공포감 배가
B급 영화 A급 제작으로 대성공
#2
유례없이 강인한 여전사 주인공
남성의 출산 비유한 괴물탄생 등
기존 성역할 파멸적으로 해체
#3
미래 풍경 생생한 ‘블레이드 러너’
NASA와 철저히 고증한 ‘마션’ 등
현실적인 SF의 시금석으로 통해
에일리언이 공포스러운 괴생명체라는 의미로 통용되기 시작한 것은 분명 영화 '에이리언'(1979) 이후다. 익숙함을 전복시킨 영상화의 성공은 B급 영화로 머물 뻔했던 ‘에이리언’에 장르적 생명력을 불어넣었다. 이십세기폭스 제공

과학기사를 보다 보면 간혹 ‘에일리언을 닮은 생물체가 발견되었다’는 기사가 뜰 때가 있다. 아직 인류에게 미지의 영역인 심해에서 특이한 생물이 발견될 때, 혹은 고대 생물의 화석이 소개될 때 이런 기사가 눈에 띈다. 2013년 캘리포니아 해안에서 해골새우가 발견되었을 때도, 같은 해 스위스 공룡박물관에서 도난사건을 계기로 크리노이드라는 고생물 화석이 소개되었을 때도 그랬다. 간혹 슈퍼에서 사온 생선의 입 안에서 학명 ‘키모토아 엑시구아’인 기생충을 발견한 사람들은 에일리언을 보았다며 호들갑을 떨기도 한다.

‘에일리언’이라는 단어는 ‘외계인’, ‘이방인’을 뜻하는 일반명사지만 이미 세계인에게는 리들리 스콧의 영화 ‘에이리언’에 등장하는 외계의 괴생물체의 이름으로 더 강렬하게 각인되어 있다. 이 생물은 엄연히 상상의 산물이건만 사람들은 현실에서 그 흔적을 찾으려 한다. 강렬한 창작물이 현실에 발을 뻗는 하나의 풍경이 아닌가 한다.

‘스타워즈’가 바꾼 영화계의 지형

1977년 극장에서 ‘스타워즈’를 보고 나온 리들리 스콧은 비참해졌다. 스콧은 광고감독으로는 꽤 성공가도를 달리고 있었지만, 영화감독으로는 이제 겨우 첫 영화를 만들던 참인 햇병아리 신인이었다. 그는 일주일간 비참한 기분에 빠져 지냈다. 스콧은 다짐했다. “난 저런 걸 만들 거야.”

한편 작가 댄 오배넌은 1975년 프랭크 허버트의 SF 대하소설 ‘듄’의 각본 작업에 참여했다가 영화화 프로젝트가 취소되어 우울해하고 있었다. 오배넌의 다른 각본인 ‘스타 비스트’도 영화사를 표류하고 있었다. 누가 이런 기괴한 우주괴물 이야기를 만들어 줄 것 같지도 않았다. 하지만 ‘스타워즈’가 나오자 상황은 천지개벽으로 변했다. 영화제작사 이십세기폭스는 SF 각본을 찾아 회사를 다 뒤졌지만 우주선이 나오는 각본이라고는 오배넌의 그 기괴한 우주 괴물 이야기뿐이었다. 이 각본은 즉시 제작허가가 났다.

하지만 우주괴물이 사람들을 죽이고 다닌다는 영화를 ‘쪽팔림을 무릅쓰고’ 만들려는 감독을 찾기가 쉽지 않았다. 하지만 제안을 받자마자 스콧은 생각했다. ‘아, 그래, 난 그런 걸 만들 거야.’ 그가 생각한 그림은 ‘죠스’처럼 ‘A급으로 만드는 B급 영화’였다.

미지의 악몽을 형상화하다

스위스의 초현실주의 작가 한스 루돌프 기거는 어릴 때에도 해골을 갖고 놀고 지하실과 어둠을 좋아하는 특이한 소년이었다. 1970년대에 그는 스위스의 작은 갤러리에서 겨우 전시회나 하던 무명화가였고, 하도 기괴한 화풍 탓에 그의 작품을 전시한 갤러리 주인은 관객이 유리창에 뱉는 침을 닦는 것이 일과였다고 고백할 정도였다. 기거도 오배넌과 ‘듄’ 작업을 했지만 프로젝트가 좌초된 참이었다.

오배넌이 스콧에게 기거를 추천했고, 스콧은 기거의 76년 작품집 ‘네크로노미콘Ⅳ’를 보자마자 그 그림이 자신이 찾던 괴물임을 알아보았다. ‘네크로노미콘’은 작가 하워드 필립스 러브크래프트가 창조한 크툴루 신화에 등장하는 가상의 성전(聖典)에서 따온 이름으로, 러브크래프트가 창조한 미지의 절대 악신을 모티브로 한 생물이었다. 스콧이 혀에 이빨을 달자고 제안했고, 기거는 눈을 없애자고 제안했다. ‘어디를 볼지 모르는 괴물이 훨씬 더 무서울 것’이라고 생각했기 때문이었다. 눈도 없이 미끈하고 긴 괴물의 머리를 보자마자 배우 시고니 위버는 ‘거대한 남근이잖아’하고 생각했고 기거는 부정하지 않았다.

이 생체기계공학적 디자인은 이후 세계 영화사에서 가장 유명하고 가장 위협적인 외계 괴물의 형상이 되었고, 기거의 화풍을 세계에 알리며 후에 ‘기거레스크’, ‘바이오 메카노이드’라는 신조어도 낳게 되었다.

외계 생명체가 남자 승무원의 배를 뚫고 태어나는 장면. 영화 ‘에이리언’의 가장 충격적인 장면으로, 남성의 출산과 사망이라는 파괴된 성역할이 공포를 배가시켰다고 일컬어진다. 이십세기폭스 제공
인간 질서가 뒤엎어지는 충격

영화 속의 에일리언이 단순히 강하기만 했다면 그만한 충격을 주지 않았을 것이다. 보다 강렬한 점은 절대적인 미지의 괴물 앞에서 인간끼리만 모여 살던 세상의 소소한 힘의 차이나 권력관계가 전부 의미를 잃는 것이다.

에일리언이 남성의 몸에 알을 낳고 유충이 그 몸 안에 기생했다가 배를 뚫고 태어나는 장면은 지금도 길이 회자되는 충격적인 순간이다. 2007년 미국 잡지 엠파이어는 영화사상 가장 중요한 순간 18위에 이 장면을 올렸다. 이 장면은 보통의 남성이 현실에서는 겪을 일 없는 임신과 출산, 더불어 기형적인 괴물을 낳고 비참하게 죽는다는 공포를 체험하게 했다. 미지의 괴물에 의해 성역할이 파멸적으로 해체되는 이 장면을 두고 당대 페미니스트들과 평론가들은 ‘여성주의 운동의 확장에 대한 보수주의자들의 공포’로 해석하기도 했다.

더해서 원래 각본에서는 승무원 전원이 남성이었지만, 후에 투입된 각본가 가이라와 힐이 두 명을 여성으로 만들고 한 명을 안드로이드로 바꾸었다. 이 사소한 변화가 또한 혁명적인 변화를 가져왔다.

에일리언을 물리치는 리플리(시고니 위버)는 지금도 찾아보기 힘든 가장 강인한 여전사 캐릭터다. 사진은 '에이리언2'(1986). 이십세기폭스 제공

그러면서 마지막까지 남자로 생각되었던 인물, 리플리가 제작 3주 전에 여자로 변경되었다. 캐스팅 디렉터는 메릴 스트립을 생각했지만, 그녀는 약혼자 존 카제일을 잃은 지 얼마 되지 않은 참이라 반려되었고, 대신 단역을 몇 번 했을 뿐인 무명신인인 시고니 위버가 오디션을 통과해 채택되었다. 위버는 183㎝의 장신에 여성다운 외모와도 거리가 먼 배우였다. 원래 남성으로 설정된 각본을 그대로 이어받은 위버의 리플리는 당시, 아니 현재에도 찾기 힘든, 능동적이고 강인하고 공격적인 여전사가 되었고, 포스트 페미니스트의 아이콘이 되었다.

마찬가지로 원래 인간으로 설정된 각본을 그대로 이어받은 안드로이드 애쉬도 지금까지 아무도 본 적이 없었던, ‘인간과 구분되지 않는’ 로봇을 세상에 보여주었다. ‘스타워즈’까지만 해도 기계와 인간의 구분과 계급관계는 분명했다. 인간이라 믿었던 안드로이드의 머리에서 하얀 피가 흐르는 것을 보며 관객들은 경악했고, 동시에 닫혀 있던 하나의 상상의 문을 열었다. 로봇과 인간의 구분이 모호해지는 풍경은 스콧의 다음 작품, 필립 K. 딕의 ‘안드로이드는 전기양의 꿈을 꾸는가’를 원작으로 한 영화 ‘블레이드 러너’에서 더욱 정교하게 펼쳐지며 이후의 SF 창작자들에게 무수한 영감을 남기게 되었다.

흰 피를 흘릴 때에야 비로소 안드로이드라는 사실이 드러나는 등장인물 애쉬. 인간과 구분되지 않는 로봇은 리들리 스콧의 차기작 '블레이드 러너'에서 한층 철학적 문제로 확장됐다. 이십세기폭스 제공

상식을 초월하는 미지의 생물은 여성과 남성의 구분을 무너뜨렸고 로봇과 인간의 구분을 무너뜨렸다. 인간사회의 이권다툼과 탐욕, 권력관계를 우스꽝스러운 것으로 만들었다. 이 테마는 속편에서도 중요한 원칙으로 이어지고 있다.

미래를 현실로 그려낸 이미지

후에 스콧은 미 항공우주국(NASA)과 함께 앤디 위어의 SF소설 ‘마션’으로 동명의 영화를 찍으면서, “나는 영화를 상상으로 찍지 않는다”고 했다. “이것은 ‘에이리언’ 같은 영화를 찍을 때조차도 가장 중요한 원칙이다. 내가 에일리언을 제대로 묘사하지 않았다면 그런 영화가 나오지 못했을 것이다.” ‘마션’은 어찌나 고증이 정확하고 풍경이 현실적인지, 아직 인류가 발을 딛지 않은 화성에서 벌어지는 가상의 이야기인데도 마치 실화를 소재로 한 다큐 재난영화처럼 보인다.

영화 ‘에이리언’을 찍을 당시에는 특수효과 기술이 미비했지만, 스콧은 “중요한 것은 관객이 ‘보는’ 것이 아니라 ‘본다고 생각하는’ 것이다”며, 괴물을 거의 보여주지 않는 것으로 오히려 그 현실감을 극대화했다. 스콧은 영화 속의 승무원들이 지금 여기서 사는 실제 인물처럼 보이기를 원했고, ‘우주의 트럭 운전사들’로 요약한 이미지로 묘사했다. 이들은 그때까지의 SF 주인공들과는 달리, 나이가 많고 지저분한 작업복을 입고 다녔고, 일상을 사는 평범한 직업인들처럼 보였다. 스콧은 이 방식을 ‘스타워즈’에서 배웠다고 술회했지만, 그의 영상은 루카스보다 훨씬 더 현실적이었고, 이후의 SF 영화들이 현실성을 띠게 하는 데에 일조한다.

후속작인 ‘블레이드 러너’에서 스콧은 인간과 로봇의 구분에 대한 철학적인 질문을 던지는 동시에 미래세계의 풍경을 손에 잡힐 듯이 그려내었다. 별처럼 쏟아지는 네온사인과 광고판의 물결, 좁고 지저분한 골목과 이에 대비되는 드높은 빌딩의 숲, 무국적의 기업과 가게들. 마치 스콧이 21세기의 현대도시를 직접 보고 만든 듯한 현실적인 이 풍경은 다시금 사람들에게 미래를 현실처럼 체험하게 했고, 이후 오시이 마모루 감독의 ‘공각기동대’, 오토모 카즈히로의 ‘아키라’로 이어지며 후대의 SF 창작자들에게 또 하나의 시금석이 된다.

(위 사진부터) 리들리 스콧 감독의 다른 영화 ‘마션’(2015)과 ‘블레이드 러너'(1982). 두 작품 모두 화성과 21세기 미래의 풍경을 손에 잡힐 듯 생생하게 그려내 SF를 현실로 인식하게 했다. 이십세기폭스코리아ㆍ워너브러더스 제공
넓어지는 에일리언의 세계

‘에이리언’ 시리즈는 이후 제임스 카메론, 데이비드 핀처, 장 피에르 주네가 연이어 속편을 맡으면서, 시리즈 대부분이 스타일리스트 거장들의 초기작이라는 놀라운 타이틀을 갖게 된다. 이후 게임, 만화, 소설, 속편과 스핀오프 영화가 쏟아져 나오며 ‘스타워즈’와 마찬가지로 거대한 문화 생태계를 이루었고, 2002년에는 미 의회 도서관에서 ‘문화적, 역사적 또는 예술적으로 중요한’ 영화로 인정되어 국가적 보존 대상 영화로 선정되었다.

2012년, 스콧은 ‘에이리언’의 프리퀄인 영화 ‘프로메테우스’를 발표했고, 2016년에는 80세의 나이로 ‘에이리언: 커버넌트’를 발표하면서 이 세계관을 더욱 확장시키고 있다.

김보영ㆍSF 작가

리들리 스콧. 미 항공우주국 제공
리들리 스콧 경

1937년 11월 30일~ . 시각적인 영상미에서 타의 추종을 불허하는 영국 출신의 영화 감독. 광고감독으로 먼저 이름이 알려졌고, 조지 오웰의 소설 ‘1984’를 모티브로 한 애플의 매킨토시 컴퓨터 광고는 슈퍼볼 경기 때 단 한 번 상영한 것만으로 애플을 이름을 세상에 각인시키기도 했다. 1977년 ‘결투자들’로 영화 데뷔를 했고, 1979년 ‘에이리언’의 대성공으로 명성을 떨치기 시작했다. 후속작 ‘블레이드 러너’는 흥행에는 실패했지만 후의 SF 창작자들에게 지대한 영향을 끼쳤다. 무수한 명작을 남겨 ‘델마와 루이스’로 페미니즘 영화의 한 획을 긋기도 했고, ‘글래디에이터’, ‘킹덤 오브 헤븐’ 등의 탁월한 역사극을 찍기도 했다. 최근 영화 ‘마션’으로 NASA의 협력 아래 철저한 고증을 자랑하는 SF영화를 찍으며 SF의 거장임을 재확인했다. 2003년 기사 작위를 수여받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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