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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다시 읽는 유럽] EU ‘항구적 안보 체제’ 설립 합의… ‘군사 무지렁이’ 오명 벗을까

입력
2017.11.24 20: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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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3일 벨기에 브뤼셀 EU본부에 모인 유럽 외교ㆍ국방장관들이 기념사진을 촬영하고 있다. 이날 회원국 중 23개국은 항구적 안보ㆍ국방협력체제(PeSCo) 참여에 합의하는 문서에 서명했다. 유럽연합 뉴스룸 공개사진
13일 벨기에 브뤼셀 EU본부에 모인 유럽 외교ㆍ국방장관들이 기념사진을 촬영하고 있다. 이날 회원국 중 23개국은 항구적 안보ㆍ국방협력체제(PeSCo) 참여에 합의하는 문서에 서명했다. 유럽연합 뉴스룸 공개사진

‘군사 무지렁이’ 유럽연합(EU)이 변할 수 있을까?

보통 EU를 ‘경제 거인, 정치 난장이, 군사 무지렁이’로 표현한다. EU는 세계 최대의 단일시장이지만 국제무대에서 정치와 군사력은 한참 뒤진다.

영국을 포함한 EU 28개 회원국은 연간 국내총생산(GDP)의 1.4%, 약 2,000억달러(2016년 기준)를 국방비에 지출해 미국에 이어 2위다. 중국이나 러시아보다 훨씬 많은 돈을 국방에 쓴다. 문제는 회원국들이 여전히 자국을 우선하여 신무기를 개발하고 운용한다는 점이다. 이 때문에 군사지출의 효율성은 미국의 15%에 불과하다는 평가다. 회원국들이 공동으로 신무기를 개발하고 공동 작전역량을 강화하면 국방비 지출도 합리화할 수 있고 국제분쟁 시 EU의 기여도 높일 수 있다.

이런 현실인식에서 EU 외무장관들이 13일 항구적 안보ㆍ국방협력체제(Permanent Structured Cooperation on Security and Defence: PeSCo)를 합의했다. 회원국들이 신무기와 군사 장비 개발에 공동투자하고 군사작전 역량을 강화하는 게 골자다. PeSCo는 이를 촉진하는 큰 틀이다.

유럽방위청(European Defence Agency: EDA)은 회원국 국방예산과 조달 계획을 체계적으로 모니터링하여 중복 투자를 줄이고 시너지 효과를 낼 수 있는 무기 및 장비의 공동개발을 제안하고 있다. 연간 55억유로에 달하는 EU국방펀드(EDF)가 지난 7월에 도입되어 이런 공동투자를 지원한다. 이 펀드의 규모는 연간 55억유로다.

다음달 14일부터 이틀간 브뤼셀에서 열리는 EU 회원국 수반들의 모임인 유럽이사회에서 PeSCo가 승인되고 구체적인 규정이 제정될 예정이다. 이 규정은 회원국에서 별도의 입법 과정 없이 그대로 적용된다. 사실 PeSCo를 골자로 하는 안보국방협력 강화는 프랑스와 독일의 합작품이다. 지난해 6월 23일 영국 유권자들이 국민투표에서 EU탈퇴(브렉시트)를 결정한 후 양국은 통합을 강화할 매개체가 필요했다. 물론 EU 시민들도 회원국들이 안보와 국방문제에서 긴밀하게 협력하기를 원했다. 유럽에서 일상이 된 테러, 아울러 국제무대에서 리더십 역할을 스스로 포기하고 대유럽 안보공약조차 의구심을 갖게 하는 미국 도널드 트럼프 대통령의 외교 노선도 PeSCo 설립을 촉진했다.

브렉시트 결정은 EU의 독자적인 안보국방협력을 강화한 계기로 볼 수 있다. 영국은 유럽안보에서 미국이 주도하는 북대서양조약기구(NATO)의 역할을 무엇보다 우선해왔고 EU의 독자적인 안보역량 강화를 달가워하지 않았다. 그런 영국이 EU에서 이탈하면서 역설적으로 유럽 통합안보의 길이 열린 셈이다.

PeSCo는 갑자기 만들어진 체제가 아니라 EU가 통합과정에서 점진적으로 이루어낸 성과다. 1993년 유럽연합조약(마스트리히트조약)에 EU의 공동외교안보정책(CFSP)이 명시되었고 2000년 들어서 이의 일환으로 EU의 공동안보국방정책도 도입되었다. EU가 유엔제재보다 더 강력한 대북 제재를 시행하는 것도 공동외교안보정책의 틀에서다. EU 차원에서 합의가 되면 28개 회원국 모두 이 결정을 준수한다.

여기에 더해 EU 회원국들이 서로의 국방 예산과 무기 도입 계획을 손금 들여다보듯이 알 수 있고, 공동개발과 투자를 조정할 수 있다는 점은 분명 큰 진전이다. 이미 진행된 공동작전 경험을 바탕으로 구체적인 작전역량을 더욱 강화할 수도 있다. EU 회원국들은 2008년부터 현재까지 아프리카 북동부 소말리아 인근 해상과 인도양에서 해적 퇴치 작전에 공동으로 참여 중이다. ‘아탈란타’로 명명된 이 작전은 독일과 프랑스, 영국, 스페인, 벨기에 등 10여 개국이 참여하고 있으며 EU기를 달고 연합군 체제로 운영된다. 이 역시 공동외교안보정책의 하나다.

그럼에도 EU 안보 협력의 실현 가능성에는 여전히 의문이 남는다. 우선 PeSCo 설립을 주도한 독일과 프랑스의 당초 셈법이 상이했다. 독일은 되도록 많은 회원국들의 참여를 원했고 프랑스는 소수 정예의 회원국들이 국방 협력을 선도하여 성과를 내면 차후 다른 회원국들의 참여를 촉진할 수 있다는 입장이었다.

결과는 독일이 원하는 방향으로 결정됐다. 23개 회원국이 참여의사를 밝혔다. EU를 탈퇴할 영국, 그리고 국방협력에 참여하지 않음을 보장받은 덴마크는 여기에 불참한다. 아일랜드와 포르투갈, 몰타는 일단 참여를 보류했지만 상황에 따라 차후 참여할 가능성이 높다. 그러나 폴란드는 나토와 독립된 EU의 자율적인 군사역량 강화에 노골적으로 반대의사를 표명했다. 폴란드는 공개적으로 공동안보국방협력 강화를 늦추기 위해 PeSCo에 들어간다고 밝혔다.

안보 무임승차에 익숙한 유럽 일부 국가들에게 안보국방협력 강화 의지가 있는지도 의문이다. 아무리 국방 예산을 합리화하고 회원국들이 무기를 공동 개발한다 해도 일부 국방비 증액은 불가피하다. 하지만 현재 좌초된 독일의 연정협상에서조차 국방비 증액은 일언반구도 논의되지 않았다. 이런 사정으로, PeSCo가 군사 무지렁이 EU를 제 기능을 하는 새로운 안보 행위자로 환골탈태할 수 있을지는 당장 장담하기 어렵다.

안병억 대구대학교 국제관계학과 교수ㆍ팟캐스트 ‘안쌤의 유로톡’ 제작ㆍ진행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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