트럼프 행정부가 북한을 9년 만에 테러지원국으로 다시 지정했다. 예고된 수순이었다. 올 4월 미 하원은 ‘북한 테러지원국 재지정 법안’을 압도적으로 통과시켰고, 10월에는 상원의원 12명이 북한을 테러지원국으로 재지정하라는 서한을 국무부에 보냈다. 한편 미국 재무부는 앞으로 2주에 걸쳐 테러지원국 지정을 뒷받침하는 추가 조치를 내놓을 예정이다. 사상 유례가 없는 강력한 제재가 김정은 정권을 옥죄는 모양새이고, 김정은 정권은 핵미사일 개발로 국제사회와 거의 완벽히 고립되는 혹독한 대가를 치르게 됐다.

미국은 말로는 외교적 해법은 아직 유효하다고 하지만 사실상 북한과의 대화는 끝장났다고 보는 것이 합리적 판단인 듯하다. 미국도 더는 대화를 시도할 가능성이 없을뿐더러 북한도 미국과의 대화를 통한 문제해결에 기대를 걸지는 않을 것이기 때문이다. 언제, 어떤 일이 벌어질지 가늠하기 어려운 ‘강대강’ 대결 국면만이 남은 셈이다. 자존심이 남다른 최고지도자 김정은이 받아들이는 테러지원국이라는 낙인은 받아들이기 고통스러운 불명예이다. 일각에서는 테러지원국 지정이 상징적 차원의 조치라고 평가하고 있지만 이는 사실과 다르다. 테러지원국으로 지정되면 교역, 투자, 금융거래는 말할 것도 없고 북한측 인사와의 접촉이나 방문 교류조차 더욱 어려워진다. 테러지원국으로 지정된 국가와는 인도적 지원조차도 하기를 꺼려하는 NGO도 적지 않다. 정치적 부담이 훨씬 커지기 때문이다. 현재 테러지원국 명단에는 조만간 삭제될 것으로 예상되는 수단을 비롯해 이란, 시리아만 남아 있다. 그래서 테러지원국이라는 오명은 미국의 의도대로 북한의 굴복을 초래하기 보다는 복수심을 더욱 자극할 가능성이 크다.

렉스 틸러슨 미 국무장관은 대북 압박 효과가 나타나고 있다면서 그 증거로서 평양의 휘발유 부족 현상이 심화하고 있다는 것을 언급했다. 아마 휘발유 가격 외에도 환율과 북한 시장내 쌀 가격 등의 상승도 나타날 것이다. 대중 수출길이 막히고, 주민들의 돈벌이 수단이 줄어들면서 가계, 시장, 기업 모두가 궁지에 몰릴 수도 있다. 중국측의 강력한 단속으로 밀거래도 조만간 거의 중단될 것으로 보인다. 김정은 집권 6년 만에 가장 혹독한 겨울을 맞이할 가능성이 높아졌다. 국정원은 국회 정보위 보고에서 북한 당국이 고강도 안보리 제재로 부정적 파장이 예상됨에 따라 민심 관리에도 총력을 기울이고 있다고 했다. 당 조직을 통한 주민 생활고 일일보고 체계를 마련하고, 음주가무와 사적 모임을 금지하고, 정보 유통 통제도 강화하고 있다고 보고했다. 제재 효과는 나타날지 모르지만 과연 북한이 핵무기를 내려놓는 제스처를 보일까.

거칠게 표현하면 그 가능성은 제로에 가깝다. 미국의 압력에 백기투항하는 것처럼 비치는 순간 김정은의 권위가 한 순간에 추락하고, 더는 정권을 유지하기가 힘든 상황이 펼쳐질 수 있다. 김정은에 대한 우상화는 그의 통치능력, 성과와 자질에 맞춰져 있고 이는 핵과 미사일 능력 고도화라는 업적에 의해 뒷받침되고 있기 때문이다. 핵과 미사일 능력 고도화는 할아버지와 아버지의 후광에 의지하지 않고 자신의 통치스타일을 밀고 나가는 자신감의 상징이기도 하다. 노동신문은 김정은을 ‘21세기의 위대한 태양’으로 지칭하고 있다. ‘태양’은 김정은이 할아버지, 아버지와 같은 반열에 올라와 있음을 의미한다. 이런 김정은이 미국의 제재압박에 굴복한다는 것은 상상하기 쉽지 않다. 더구나 그는 오히려 미국을 굴복시킨 지도자로 평가 받고 싶어 한다. 그래서 김정은 정권은 경제ㆍ핵개발 병진노선의 정당성을 고수하고 있고, 대북 제재 무용론을 입증하는 데 사활을 걸고 있는 것이다. 더 한참 동안 우리는 북미간의 아슬아슬한 대결을 지켜볼 수밖에 없을 것 같다. 그래서 불길하다.

임을출 경남대 극동문제연구소 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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