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울 옥외대피소 방문 실태조사
상가 건물ㆍ어린이공원ㆍ교회…
공사 중인 마을 쉼터도 등록
행안부 관리 1400여곳 중
최소 10%는 주소 등 엉망
대피소 안내판도 찾기 힘들어
서울 중구 지진 옥외대피소로 지정된 순화문화공원. 주변이 낙하 위험이 있는 20층 이상 고층 건물로 둘러싸야 있다. 강진구 기자 realine@hankookilbo.com/2017-11-21(한국일보)

“저 좁은 시장 골목에 있는 사우나가 옥외대피소라고요? 옥외면 야외 말하는 거 아니에요? 너무 황당하네요.”

21일 서울 구로구에서 만난 윤모(59ㆍ자영업)씨는 건너편 건물 5층을 바라보며 ‘어처구니 없다’는 표정을 지었다. 거기 있는 사우나가 정부가 관리하는 ‘국민재난안전포털’에 등록된 지진 옥외대피소라는 말에 실소를 터뜨렸다. 원래 그곳은 50명 이상 수용이 가능해 구청으로부터 ‘재난 직후 이재민이 지낼 수 있는 대피소’로 지정이 됐다. 그런데 난데없이 재난포털에 지진이 왔을 때 긴급하게 몸을 피하는 옥외대피소로 등록된 것이다. 윤씨는 “정부가 일 처리를 어설프게 해서 국민들만 위험해지는 거다”고 혀를 찼다.

지난해 경북 경주와 올해 포항에서 연이어 발생한 지진에 실질적으로 대비해야 한다는 지적이 나오고 있지만, 정작 정부가 지난해 12월부터 제공해온 지진대피소 정보체계는 엉망인 것으로 나타났다.

본보가 20~21일 행정안전부가 관리하는 국민재난안전포털 사이트에 등록된 서울 소재 지진 옥외대피소 1,400여곳을 검토하고 일부 지역을 직접 방문한 결과, 최소 10% 정도가 실내구호소가 옥외대피소로 등록되거나 실제와 다른 엉뚱한 주소가 기재돼 있는 등 잘못된 정보를 시민들에게 제공하고 있었다. 공사 중인 쉼터가 버젓이 대피소로 등록됐는가 하면, 낙하 위험이 있는 고층건물로 둘러싸여 대피 낙제점을 받아야 할 곳도 여러 군데였다. 대부분 대피소에는 안내판이 설치돼 있지도 않았고, 일부 지방자치단체는 본보 취재가 시작되자 문제가 있는 대피소를 황급히 인터넷에서 삭제하기도 했다.

지진대피소로 등록된 서울 구로구 구로4동 상가 건물 5층의 사우나. 강유빈 기자/2017-11-21(한국일보)

21일 서울 중구 지진 옥외대피소인 저동어린이공원은 찾아가는 것 자체가 힘겨웠다. 사이트에 ‘저동공원’으로 등록된데다 안내 표지판도 없어 인근에서 30여분을 헤매야 했다. 대피소로서 제 역할을 할 수 있을지에 대한 의구심도 들었다. 남대문세무서가 있는 유리 외벽의 15층짜리 건물과 10층 규모 서울백병원이 인접해 있어 실제 지진이 나면 더 위험한 곳이 될 가능성이 농후했다. 공원에서 만난 직장인 A씨는 “외벽 유리가 쏟아지면 흉기가 될 텐데, 저리로 대피하라니 생각만 해도 아찔하다”고 했다. 옥외대피소는 기본적으로 주변에 고층건물이 있을 경우, 건물 높이 1.5배에 해당하는 거리만큼 떨어져야 하는데, 이곳은 남대문세무서 빌딩(높이 45m)으로부터 고작 3m 정도 벌어져 있었다.

서울 중구 지진 옥외대피소로 지정된 저동어린이공원. 주변이 고층건물로 둘러싸여 있다. 강진구 기자/2017-11-21(한국일보)

중랑구 소재 D교회는 구청이 올 상반기에 지정을 취소했지만 사이트에는 여전히 옥외대피소였다. 주변도 4, 5층짜리 주택과 상가건물로 둘러싸여 있어 대피소로서 적합하지 않았다. 중랑구청 관계자는 “사이트에 반영되기 전까지 시간이 걸리는 것 같다”고 해명했다.

공사 중인 건물과 마당이 옥외대피소로 지정된 곳도 있었다. 양천구에 위치한 ‘목2동 마을쉼터’는 완공이 이달 22일이지만 올 7월말부터 ‘옥외대피소’로 등록돼 있었다. 7월말에 마쳤어야 할 건물 공사가 민원 등으로 11월로 늦춰졌다는 게 구청 해명. 중구 옥외대피소인 묵정어린이공원은 사이트에 입력된 주소대로 택시를 타고 갔더니 엉뚱하게 지하철4호선 동대문역사문화공원역이 나왔다. 지하철역에서 공원까지는 걸어서 18분 거리였다.

21일 찾은 서울 양천구 목2동 마을쉼터 지진 옥외대피소. ‘22일’에 문을 여는데도 재난포털 사이트에는 7월부터 옥외대피소로 등록돼 있다. 강유빈 기자/2017-11-21(한국일보)

이영주 서울시립대 소방방재학과 교수는 “지난해 지진 이후 옥외대피소나 실내구호소를 2배 이상 확충하면서 부적합 장소라도 일단 지정해놓은 경우가 많았다”며 “지정 기준을 명확히 하고 사이트에 정확한 정보가 입력됐는지 확인해야 한다”고 지적했다. 행안부 관계자는 “옥외대피소는 지자체 공무원들이 입력한 대로 바로 올라가고, 행안부가 상하반기에 점검을 하는데 아직 이뤄지지 않은 것 같다”고 해명했다.

글ㆍ사진=강유빈 기자 yubin@hankookilbo.com 강진구 기자 realnine@hankookilbo.com 손영하 기자 frozen@hankookilbo.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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