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정곤 정치부장 jkkim@hankookilbo.com

[국무회의ss171121-16] 문재인 대통령이 21일 청와대에서 열린 국무회의에 참석, 모두발언을 하기에 앞서 이낙연 총리와 의견을 나누고 있다. 2017.11.21 /청와대사진기자단 /2017-11-21(한국일보)

포항 지진이 발생한 15일 저녁, 수능을 연기한다는 정부 발표에 ‘이건 아니다’ 싶었다. 시험을 12시간 가량 앞두고 느닷없이 연기한다면 미증유의 혼란을 정부가 감당하기 어려울 것이라는 우려 때문이었다. 16일 시험 스케줄에 맞춰 컨디션을 유지했던 60만 가까운 수험생이나 가족들이 받을 충격과 고통을 생각하면 정부가 무책임한 결정을 했다는 결론에까지 도달했다.

정부 결정 과정을 보면 이런 걱정이 혼자만의 기우는 아니었던 듯싶다. 지진 발생 당일 동남아 순방에서 돌아온 문재인 대통령은 청와대에 도착해 여장도 풀지 못한 채 4시30분부터 수석비서관ㆍ보좌관회의를 주재, 피해상황을 보고받은 뒤 수능관리를 포함해 차질 없는 대책을 주문했다. 회의에 참석했던 참모들에 따르면 이 자리에서도 최대 화두는 수능이었다고 한다. 예상 가능한 모든 시나리오를 테이블에 쏟아놓고 머리를 맞대던 참모들에게 문 대통령이 “수능 자체를 연기하는 방안도 고려해 보자”고 제안했다는 ‘용비어천가’식 후문도 들렸지만, 5시40분쯤 끝난 수보회의의 결론은 사정변경 없는 수능 실시였다. 수능을 연기할 경우 더 큰 혼란이 빚어질 수 있다는 의견이 우세한 탓이었다.

충분히 예상할 수 있는 회의 결론이었지만 거기서 끝났다면 어쩔 뻔했겠는가. 만약 15일 지진이 본진(本震)이 아니라 전진(前震)이었다면 무슨 일이 일어났겠는가. 16일 하루 동안 규모 3.8을 포함해 모두 16차례의 여진이 이어졌는데, 만약 이런 상황에서 수능 시험을 치렀다면 무슨 일이 벌어졌을까는 상상조차 하고 싶지 않다. 포항 지진 현장을 둘러본 뒤 수능을 치르기 어렵다고 판단한 김부겸 행정안전부 장관이 문 대통령에게 연기를 건의하고, 정부가 청와대 회의 2시간40분 만에 결정을 번복한 건 정말 잘 한 일이다.

포항 지진 처리 과정을 보면서 정부와 리더십 변화를 체감한다는 이들이 많다. 실제 지난해 추석 직전 발생했던 경주 지진 때와는 비교할 수 없을 정도로 신속하고 정확한 판단과 대응이 이어지고 있다. ‘청와대는 재난 컨트롤 타워가 아니다’고 강변했던 박근혜 정부이고 보면 비교 자체가 무의미한 일일 수도 있겠지만 적어도 문재인 정부에서는 공감과 소통을 무기 삼아 재난에 적극 개입하고 있다. 소수의 고통에 눈감지 않는 정부를 보면서 공동체 회복을 거론하는 이도 적지 않다.

무엇보다 이번 지진을 통해 우리는 재난 컨트롤 타워의 중요성을 다시 한번 실감했다. 리더십이 기능하지 않을 때 컨트롤 타워가 작동하지 않는다는 지난 정부의 반면교사와 함께 컨트롤 타워를 이끌어 가는 리더십도 무시할 수 없다. 재난 리더십은 2011년 일본 도호쿠 대지진 당시 후쿠시마 원전 사태의 백서나 다름없는 ‘관저의 100시간’에서 생생하게 엿볼 수 있다. “수소가 없어 원전 폭발 가능성이 없다”는 원자력안전위원장의 말이 끝나기 무섭게 TV뉴스에서 원전이 폭발하는 장면이 나오고 원자로 냉각계통을 재가동시킬 발전차도 제대로 확보하지 못하는 총체적 난국 속에서도 간 나오토 총리가 혼자 팔을 걷어붙이고 상황을 장악해 나가는 리더십으로 묘사되고 있다. 나오토 총리의 행적이 분 단위로 기록돼 있다는 사실조차도 세월호 사태 때는 부러움의 대상이었다.

정부가 재난 컨트롤 타워를 세우고 국민을 안심시키는 일은 기본 중의 기본에 불과하다. 전국의 건물이 내진 설계를 장착하기까지는 더 많은 시간이 걸릴 것이고, 온 국민이 지진 대응 요령을 숙지하는 데는 또 얼마의 세월이 필요할지 모를 일이다. 당장 23일 수능 당일 또다시 지진이 발생할 경우 대응 매뉴얼조차 없어 혼선이 우려된다는 소식이고 보면 문재인 정부도 아직은 갈 길이 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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