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옛 선비도 못 찾은…청학동에서 미궁에 빠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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옛 선비도 못 찾은…청학동에서 미궁에 빠지다

입력
2017.11.21 18:00
19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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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동 악양면에서 청학동으로 넘어가는 회남재에서 바라본 모습. 지리산을 왜 어머니 품에 비유하는지 저절로 알게 되는 풍경이다. 하동=최흥수기자
하동 악양면에서 청학동으로 넘어가는 회남재에서 바라본 모습. 지리산을 왜 어머니 품에 비유하는지 저절로 알게 되는 풍경이다. 하동=최흥수기자

박경리 소설 ‘토지’의 무대인 ‘최참판댁’이 위치한 하동 악양면은 중국 후난성 웨양(岳陽)의 이름을 그대로 따랐다. 등악양루(登岳陽樓)를 지은 두보를 비롯해 예부터 뛰어난 경치로 중국의 시인묵객들이 칭송한 곳이다. 평사리 들판 부부송 인근에 만든 작은 호수도 웨양의 둥팅호(洞庭湖)와 이름이 같은 동정호다. 슬로시티로 지정된 악양면엔 섬진강변의 평사리 공원과 최참판댁, 동정호와 부부송을 비롯해 들녘 좌우에 자리한 고소성, 문암송, 취간림 등을 연결하는 걷기코스만 6개다. 들판과 강기슭 어디를 걸어도 여유가 넘친다.

벚나무 단풍이 떨어져가는 평사리 앞 국도.
벚나무 단풍이 떨어져가는 평사리 앞 국도.
가을걷이 끝난 들판 너머로 대숲이 눈부시다.
가을걷이 끝난 들판 너머로 대숲이 눈부시다.
평사리 앞 섬진강. 습기가 빠져 물빛이 가장 고울 때다.
평사리 앞 섬진강. 습기가 빠져 물빛이 가장 고울 때다.

옛 선비 발길 돌린 회남재를 넘다

습기가 빠진 요즈음은 섬진강 모래와 강물이 일년 중 가장 고울 때다. 얼마 남지 않은 빨간 벚나무 단풍 사이로 반짝이는 푸른 강물이 눈부시다. 주변이 모두 색을 잃어 가지만 군데군데 형성된 대숲은 늦가을 햇살에 더욱 찬란하다. 마을어귀와 길모퉁이마다 발갛게 익어가는 굵은 대봉 감과 대조를 이룬다. 추수 끝난 들판에는 까마귀 떼가 날고 있다. 그 날개 짓을 따라가면 병풍처럼 둘러진 지리산 능선을 넘는다. 끝물에 이른 단풍이 아직은 볼 만하다.

자동차를 가지고 갔다면, 악양 골짜기 끝까지 천천히 드라이브를 즐겨도 괜찮다. 악양면사무소 인근부터는 너른 들이 끝나고, 오른편의 구재봉, 왼편의 형제봉에서 완만하게 미끄러지는 구릉을 파고들면서 마을이 형성돼 있다. 1,000m를 넘나드는 고봉은 웅장하지만 위압적이지 않고, 산마을은 깊지만 옹색하지 않다. 산줄기 끝자락에 자리잡은 살림집이 작은 점처럼 보여 폭과 깊이를 가늠하기 쉽지 않다.

평사리 들판의 지리산 둘레길 표지판
평사리 들판의 지리산 둘레길 표지판
평사리 들판 전깃줄에 까마귀가 떼지어 앉아 있다.
평사리 들판 전깃줄에 까마귀가 떼지어 앉아 있다.
가운데 잘록한 부분이 회남재 정상이다.
가운데 잘록한 부분이 회남재 정상이다.

도로는 색이 바래가는 늦가을 정취를 돌고 돌아 회남재(回南재, 740m)까지 이어진다. 회남재는 하동 악양면과 청암면의 경계로, 조선시대 성리학자이자 영남학파의 거두인 남명 조식(1501~1572)이 발길을 돌렸다는 고개다. 회남재 안내문은 ‘조식 선생이 산청 덕산에서 후학을 양성하던 중 악양이 명승지란 말을 듣고 1560년경 찾아왔다가 이곳에서 되돌아갔다’고 적고 있지만, 평사리 최영욱 시인의 설명은 좀 다르다. 안내문과는 반대로 남명이 악양을 거쳐 청학동을 찾아가다가 끝내 이르지 못하고 발길을 돌렸다는 해석이다. ‘남으로’ 되돌아왔다 하니 아무래도 후자가 더 논리적이다. 경사가 만만치 않은 산길에 지금은 포장이 다 돼 있어 차로 쉽게 오를 수 있지만, 양반들 지리산 유람을 위해 술과 안주에 거문고까지 지고 올랐을 ‘아랫것들’의 고초는 어땠을까 싶다.

회남재로 가는 도로에서 본 풍경. 깊은 골짜기까지 마을이 형성돼 있다.
회남재로 가는 도로에서 본 풍경. 깊은 골짜기까지 마을이 형성돼 있다.
회남재 정상에 서면 악양 들과 섬진강, 멀리 광양의 백운산까지 아련하게 보인다.
회남재 정상에 서면 악양 들과 섬진강, 멀리 광양의 백운산까지 아련하게 보인다.

구불구불한 산길을 한 굽이 돌 때마다 두루마리 펼치듯 새로운 풍경이 나타나고, 고도가 높아질수록 시야도 점점 넓어진다. 고갯길 정상의 팔각정에 서면 지나온 길은 보이지 않고, 지리산의 넉넉한 풍모가 다시 한번 시원하게 펼쳐진다. 고개 양편의 높은 봉우리에 안긴 평사리 들녘은 큰 항아리를 눕혀 절반으로 잘라놓은 것처럼 깊고 부드럽다. 끝자락엔 섬진강이 어렴풋하게 보이고 그 너머로 광양 백운산 능선이 또 푸근하게 감싼다. 시끄러운 세상사도 모난 심사도 드넓은 산하에 맘 편히 안긴다. 지리산을 왜 어머니의 품에 비유하는지 새삼 깨닫는다.

별천지 청학동에서 미궁에 빠지다

회남재 정상을 앞두고 약 2km 구간은 낭떠러지에 좁은 시멘트 포장이어서 각별히 운전에 조심해야 한다. 회남재부터 비포장이지만 도로는 옛 선비가 끝내 찾지 못한 청학동까지 이어진다. ‘추락위험’이라는 경고 팻말이 수도 없이 세워진 길로 조심스럽게 차를 몰았다. 약 6km를 내려가니 ‘회남재숲길’이라는 안내문이 보인다. 산책로로 차를 몰았다는 사실을 뒤늦게 깨닫는다. 제대로 된 도로는 하동읍과 횡천면을 거쳐 50km를 돌아야 한다.

회남재 정상의 이정표.
회남재 정상의 이정표.
청학 한 마리가 들어앉은 듯한 삼성궁 입구.
청학 한 마리가 들어앉은 듯한 삼성궁 입구.

청학동의 공식 행정지명은 청암면 묵계리다. 그러니까 청학동은 신선들이 사는 별천지, 일종의 이상향을 의미한다. 전설 속의 푸른 학, 즉 청학이 울면 천하가 태평하다는 믿음을 담은 지명인 셈인데, 대표적인 시설이 삼성궁이다. 삼성궁은 삼한시대에 천신(天神)에게 제사를 지내던 성지인 소도(蘇塗)를 복원하고, 환인 환웅 단군을 모시는 배달겨레의 성전임을 내세우는 시설이다. 그 주장에는 선뜻 동의하기 어렵지만 계곡을 가득 메운 돌탑은 놀라울 정도다.

외부에서 보면 학 모양의 3층 건물이 전부여서 사실 입장료 7,000원은 과하다 싶었다. 그러나 ‘검달길’이라 쓴 통로를 조금만 이동하면 달리 보인다. 본래의 바위와 자연스럽게 연결한 온갖 모양의 돌탑과 돌담이 길을 만들고 문을 내며 이어진다. 곳곳에 의미를 알 수 없는 문양과 조각이 새겨져 있고, 쐐기 모양의 돌계단이며 맷돌과 다듬잇돌 형태로 다듬은 바위도 천연덕스럽게 담장을 장식하고 있다. 얼핏 떡 주무르듯 거대한 바위를 꿰고 맞춘 마야문명의 축소판을 보는 듯하다.

통로는 돌탑 사이에 미로처럼 이어져 있다.
통로는 돌탑 사이에 미로처럼 이어져 있다.
의미를 알 수 없는 삼성궁의 조각들.
의미를 알 수 없는 삼성궁의 조각들.
산중에 별천지 같은 호수도 나온다.
산중에 별천지 같은 호수도 나온다.
돌을 자유자재로 다룬 마야문명을 보는 듯하다.
돌을 자유자재로 다룬 마야문명을 보는 듯하다.
삼성궁의 하이라이트는 나선형 돌탑.
삼성궁의 하이라이트는 나선형 돌탑.
나올 때 보면 청학의 자태가 더 또렷하다.
나올 때 보면 청학의 자태가 더 또렷하다.

끝 모를(사실 안내판에 거리 표시가 없다) 길을 오르다 보면 동굴 모양의 바위도 통과하고, 난데없이 푸른 호수가 나타나는가 하면, 드라마 세트 같은 석성에도 오른다. 40여년 동안 수행으로 쌓았다는데 인위적인 느낌이 강하지 않다. 잠깐이면 둘러볼 수 있을 줄 알았는데 점점 미궁에 빠지는 기분이다. 언덕을 하나 넘고서야 ‘삼성궁’ 이정표와 함께 ‘주차장까지 15분’이라는 팻말이 나온다. 나선형 모양의 돌탑을 지나면 그제야 길은 숲 속 산책로에 가까워진다. 출구에 이르면 처음 봤던 건물의 지붕을 장식한 청학의 날개 모양이 또렷하다. 내려앉는 모습인지, 곧 날아갈 모습인지 알 수 없다.

하동=최흥수기자 choissoo@hankookilbo.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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