가볍게 스치듯 첫눈이 내렸다. 은은한 가을정취에 사유를 빙자한 몽상의 바다에 빠져서는 그만 계절 바뀌는 줄도 몰랐다. 아직은 가을을 붙들어 두고 싶은데 첫눈 한방에 옷깃을 올리며 손을 들고 말았다. 이맘때가 되면 뭔가 늘 아쉽다. 아직 12월 한 달이 넉넉히 남아있지만 한 해의 거의 끝에 이를 즈음 아닌가.

최근 못내 섭섭한 일이 불쑥 생겼다. 지난 2008년 1월에 직접 글과 사진을 엮어 ‘김광석 그가 그리운 오후에’라는 이름으로 내 인생의 첫 책을 냈다. 이미 고인이 된 가수 김광석씨와는 생전에 잠시 연이 닿은 적이 있었다. 여러 해에 걸쳐 몇 차례 공연장 안과 밖에서 그의 모습을 사진으로 담았고, 그 사진들과 개인적 소회를 엮어 낸 책이었다. 얼마 전 해당 출판사와의 협의 끝에 세상의 빛을 본 지 딱 10년 된 이 책의 절판을 최종 결정하게 되었다. 대중도서로서의 명이 다했음을 알리는 출판사의 입장은 정중하지만 간결하고 명확했다. 출판사의 의지를 확인하고 난 뒤 무의미한 계약관계 또한 정리가 필요하다는 생각에 절판처리 및 해지합의까지 청산 절차도 마무리했다. 출판사에 남아있다는 마지막 보관본 열한 권을 모두 구매했는데, 공식적으로 4쇄를 찍어 약 5,000부 정도 발행되었다는 것도 뒤늦게 알았다. 수 없이 담당 편집자를 만나며 기대감 가득히 출판절차를 진행한 10년 전에 비해 전화와 이메일로 짧고 간결하게 처리된 절판절차는 아쉽고 섭섭했다. 사실 일반 서점에서는 이미 사라진 지 오래이긴 했다. 내 첫 책의 운명이 여기까지임을 인정하며 결국 스스로 마음을 다독이는 시간으로 삼았다.

이 책을 내던 해 캄보디아를 찾아가 한 국제구호기관의 자원활동가로 머문 나는 인세의 대부분을 도시빈민촌 주민을 위한 사진액자 구입 등에 썼다. 책 어디쯤에도 썼던 얘기지만 김광석의 노래가 많은 이들의 마음을 살피는 위로와 공감의 역할로 남아있듯, 나의 사진들도 그리 쓰이길 바라는 마음이 컸고, 실제 그렇게 되는 순간들을 특히 그 나라의 가장 가난한 이들과 함께하는 자리에서 여러 차례 경험하기도 했다.

무엇보다 고 김광석씨와의 작지만 깊었던 인연 자체가 참 소중했다. 1992년부터 95년까지 나는 그의 공연장을 여러 차례 다녔다. 그의 목소리와 노래를 참 좋아했다. 직접 그와 마주하는 순간마다 연정 품은 여인네처럼 가슴이 떨리곤 했다. 나보다 작은 그와 키를 맞추며 함께 기념사진을 찍을 적엔 어찌나 떨렸던지, 지금 생각하면 웃음이 나기도 한다. 그 시절 내 필름에 담긴 것은 아마 한 가수의 형상만이 아니라 그를 향한 내 감정이었으리라. 청춘의 흔들림으로 방황하던 내게 그의 음악이 건네준 위안의 기쁨은 작지 않았다. 그가 삶을 놓은 1996년 1월 이후 필름을 통째로 다락방에 밀어 넣은 것도, 10년 만에 꺼내어 세상에 다시 내놓은 것도 다 같은 이유였다. 그 사람을 무척 좋아한다는 것. 단지 이 이유 하나로 혹여 비슷한 감정을 품은 이들과 교감하기 위해 책으로 묶어낸 것이었다.

노래나 사진 모두 각각의 특성을 기반으로 한 영원성이 있다. 최근 고인에 대한 논란의 여지와는 별개로 늘 그의 노래는 많은 이들에게 위안의 울림으로 남을 것이라 믿는다.

임종진 공감 아이 대표

인기 기사

web_cdn 저작권자 © 한국일보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

오피니언 최신기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