등산 즐기던 강태선 회장
장비 스스로 만들면서 창업
레저ㆍ관광 붐 타고 급성장
아웃도어 시장 내리막길에서
미 친환경브랜드 ‘나우’ 인수
북미 실적은 아직 기대 못미쳐
아들 강준석 상무가 전략 주도
블랙야크는 최근 미국 뉴욕의 스포츠 종합 매장인 ‘파라곤 스포츠’에 입점했다. 파라곤 매장에 진열된 블랙야크 컬렉션. 블랙야크 제공

아웃도어 브랜드들이 오랜만에 신났다. 오랜 아웃도어 불황 속에서 올겨울 이른 추위와 ‘벤치 파카’라 불리는 롱패딩의 인기 속에 연말 매출이 수직 상승하고 있기 때문이다. 아웃도어 브랜드에게 다운ㆍ패딩은 연간 매출의 상당 부분을 차지하는 핵심 상품군이다.

지난 시즌 ‘완판’에 힘입어 올겨울엔 5배 이상의 물량을 쏟아내는데도 일부 제품들은 품귀현상을 빚고 있다. 블랙야크도 ‘야크벤치다운재킷’ ‘롯지벤치패딩재킷’ 등이 초반 호조를 보이고 있어 기대가 크다. 지난 몇 년 매출과 영업익 모두 뒷걸음질을 쳤던 블랙야크로선 롱패딩이 가뭄에 단비인 셈이다.

종로5가 작은 등산전문점으로 시작

블랙야크 창업주는 제주 출신 강태선(68) 회장이다. 서귀포시 중문 인근에서 태어난 강 회장은 고등학교를 마치자마자 빈손으로 상경해 이모네 옷 도매상에서 장사하는 법을 배웠다고 한다. 어릴 적 한라산을 뒷동산 삼아 뛰놀던 강 회장은 산이 그리워 틈틈이 북한산을 올랐다. 당시 등산 장비가 부족해 미군 물자를 이용해야 했는데 성에 차지 않는 강 회장은 스스로 자신의 몸에 맞는 등산배낭과 침낭, 텐트 등을 만들기 시작했다. ‘강태선표’ 등산 장비에 주변 사람들의 좋은 반응이 이어지자 그는 1973년 종로5가에 ‘동진 산악(후에 동진레저로 개명)’이라는 등산 장비전문점을 냈다. 지금 블랙야크의 모태다.

국민 레저라곤 등산이 유일하던 1970, 80년대 작은 가게는 조금씩 기업의 모양을 갖춰나갔다. 90년대 후반 외환위기로 모든 기업이 힘들 때 금강산 관광이 열리며 아웃도어 회사들은 숨통이 트였다. 자식들이 부모님의 금강산 가는 길 등산복 등산화를 선물하는 게 유행이 됐다. 산악인이 아닌 일반인들로 아웃도어 시장이 확대된 것이다. 2000년대 들어 아웃도어는 더욱 크게 성장했고, 블랙야크도 코오롱, 노스페이스 등 강자들과 부대낌에서 밀리지 않고 사업을 키워갔다.

강 회장은 히말라야 등반길에 만난 고산 동물 야크에 영감을 얻어 1995년 블랙야크 브랜드를 만들었고, 이 이름은 2010년 동진레저를 기업분할하며 정식 회사명으로 사용되기 시작했다.

야크는 산소가 부족한 해발 3,000m 이상의 고산지대에 사는 동물로 길고 거친 털과 각진 뿔 등으로 강인한 인상을 준다. 에베레스트 등정에 나선 등반대들은 보통 해발 3,400m의 남체부터 이 야크 떼에 짐을 싣고 해발 5,600m의 베이스캠프까지 캐러밴 행렬을 이룬다. 하지만 산소가 부족하고 추운 고소에서 강인한 야크는 남체보다 온화한 저지대로 내려오면 맥을 못 춘다.

2013년 정점을 찍은 뒤 뒷걸음질

아웃도어는 산악문화에서 시작했으나 이제는 평상복화 과정을 거쳐 캐주얼 시장으로 진출했다. 2005년 국내 아웃도어 시장은 1조원을 돌파했고, 최고 절정기인 2014년과 2015년엔 7조원대까지 치솟았다. 이는 국내 패션 시장의 20%에 달하는 규모였다.

하지만 거기까지였다. 한때 블루오션으로 주목받던 아웃도어 시장은 급격히 추락했고, 반등의 실마리를 쉽게 찾지 못하고 있다. 블랙야크도 그 혼돈의 시장에서 함께 헤매고 있다. 블랙야크의 정점은 종로5가 점포에서 출발해 40년이 된 2013년이다. 그해 블랙야크는 매출 5,805억원을 찍었고, 영업이익률은 20%에 육박했다. 당시 창립 40주년 행사에서 회사는 향후 목표로 2015년 매출 2조원(국내 1조4,000억원, 해외 6,000억원), 2020년엔 4조원(국내 2조원, 해외 2조원)의 부푼 야망을 발표했다.

하지만 이후 실적은 내리막길이었다. 금융감독원 전자공시시스템에 따르면 2014년 매출이 5,773억으로 떨어지더니 지난해엔 4,267억원까지 추락했다. 2013년 1,105억원을 찍었던 영업이익도 지난해 291억원으로 곤두박질했다.

블랙야크 계열사로 마운티아, 카라모어 등의 브랜드를 지닌 동진레저 또한 적자의 길로 들어섰고, 영업적자가 2014년 16억에서 지난해엔 55억으로 불어났다.

블랙야크가 한창 잘 나가던 2013년은 구설에 휘말린 한 해이기도 하다. 강 회장이 신문지 폭행 사건이란 물의를 일으켰다. 김포공항에서 여수로 출장을 떠나려던 강 회장이 너무 늦게 탑승구에 도착해 탑승을 거부당하자 항공사 용역 직원을 향해 욕을 하고 신문지로 얼굴을 때렸다는 것. 강 회장은 이후 오랫동안 갑질을 상징하는 ‘신문지 회장’의 오명을 뒤집어써야 했다. 또 같은 해 블랙야크는 제주 중문 일대에 수백억원을 투자해 숙박시설, 연수원 등 농촌관광휴양센터를 짓겠다고 밝혔다가 강 회장 개인의 부동산 투자에 회사를 동원하는 것 아니냐는 의심을 받기도 했다. 해당 사업은 아직 첫 삽을 뜨지 못했다.

해외 진출과 경영 승계, ‘나우’의 숙제

블랙야크는 창립 40주년에 밝힌 청사진처럼 해외시장 진출을 미래 수익원으로 삼을 계획이지만 아직 그 실적이 기대에 미치지 못하고 있다.

블랙야크는 2014년 미국의 친환경 아웃도어 브랜드 ‘나우’를 인수했다. 나이키, 파타고니아, 아디다스 등의 제품 개발자들이 직접 투자해 만든 브랜드다. 강 회장은 당시 “북미 진출 교두보 역할을 하고 블랙야크의 성장 밑거름이 될 것”이라고 기대감을 나타냈다.

회사는 2016년 서울 양재동 본사에 나우 1호점을 열고 국내 론칭을 시작할 때 2020년까지 매장 80개, 매출 400억원을 목표로 잡았다. 현재 나우는 10개점이 문을 열었고 아직 적자를 벗어나지 못하고 있다.

블랙야크 관계자는 “아직 속도가 붙진 않지만 차근차근 진척되고 있다”며 “최근 뉴욕의 파라곤 스포츠매장에 블랙야크가 입점하는 등 글로벌진출이 가시적 성과를 보이기 시작하고 있다”고 말했다.

나우의 인수와 국내 론칭 등은 강 회장의 아들인 강준석(36) 상무가 주도했다. 2009년부터 블랙야크에서 근무하기 시작한 강 상무는 나우뿐 아니라 유럽, 북미, 아시아 등 글로벌시장 진출 전략을 주관하고 있다. 강 회장의 1남 2녀 중 유일하게 경영에 참여하고 있어 향후 강 상무로의 경영 승계는 확실해 보인다.

나우 등을 통한 해외사업의 성과는 블랙야크의 미래 성장동력을 확보하는 것 못지않게 오너 2세로의 순탄한 경영 승계를 위해서도 매우 중요해졌다.

이성원 선임기자 sungwon@hankookilbo.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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