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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SF, 미래에서 온 이야기] 탐험가이자 예술가 제임스 카메론 ‘21세기의 다빈치’

입력
2017.11.18 04:40
15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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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아바타’ ‘타이타닉’ 제작 감독

영화마다 특수효과 새장 열고

세계 최고의 흥행수익 기록

원하는 장면 위해 신기술 개발

#2

지구서 3명뿐인 1만m 심해 탐사

우주비행 꿈꾸며 탐사선 디자인

NASA 화성탐사 자문위원도

열정적인 모험가의 인생 살아

호화 여객선 타이타닉호의 침몰을 영화화한 블록버스터 ‘타이타닉’은 개봉된 지 20년이 지나도록 세계 흥행 수익 2위의 자리를 지키고 있다. 당시 심해 탐사에 관심을 갖게 된 제임스 카메론 감독은 이후 지구에서 가장 깊은 해구인 챌린저 딥을 직접 탐사하는 등 탐험가로서의 삶을 살았다. 이십세기폭스코리아 제공
호화 여객선 타이타닉호의 침몰을 영화화한 블록버스터 ‘타이타닉’은 개봉된 지 20년이 지나도록 세계 흥행 수익 2위의 자리를 지키고 있다. 당시 심해 탐사에 관심을 갖게 된 제임스 카메론 감독은 이후 지구에서 가장 깊은 해구인 챌린저 딥을 직접 탐사하는 등 탐험가로서의 삶을 살았다. 이십세기폭스코리아 제공

2012년 3월 26일, 바다에서 가장 깊은 곳인 ‘챌린저 딥’ 바닥에 잠수정이 도달했다. 태평양의 마리아나해구에 위치한 그곳은 깊이가 1만900m가 넘어 에베레스트산을 집어넣어도 2,000m 아래에 잠길 만큼 지구상에서 가장 깊고 어두운 곳이다. 잠수정은 미기록종 생물들을 발견하는 등 세 시간 가까이 주변을 탐색하다가 기기에 이상이 생겨 예정보다 일찍 물 위로 올라왔는데, 탑승자는 단 한 사람이었다. 사상 처음으로 챌린지 딥을 단독으로 탐사한 사람, 바로 영화감독 제임스 카메론이다. 인류 역사상 달 표면을 걸었던 사람은 이제까지 모두 12명이지만, 챌린지 딥까지 내려갔다 온 사람은 단 셋뿐이다.

영화산업의 제왕에서 과학탐험가로

세계 영화사상 가장 많은 수익을 올린 영화 리스트에서 1위와 2위의 기록은 제임스 카메론이 갖고 있다. ‘타이타닉’(1997)과 ‘아바타’(2009)가 바로 그 작품들이다. 특히 ‘타이타닉’의 경우는 발표된 지 20년이 지났음에도 불구하고 총 수익 21억 달러로 ‘아바타’의 27억 달러에 이은 2위의 자리를 아직도 지키고 있다. 2017년 기준으로 세계 흥행 수익 20위까지의 영화에서 20세기에 나온 작품은 ‘타이타닉’뿐이다. 이 영화의 기록적인 흥행에 고무된 제작사가 카메론 감독에게 보너스로 1억 달러를 지급할 정도였다.

‘타이타닉’으로 영화계에서 더 이상 오를 곳이 없는 성취를 이룬 카메론은 그 뒤 여느 영화인들과는 다른 행보를 보여주었다. ‘타이타닉’을 제작하면서 수중 촬영과 바다 속 세계에 깊은 관심을 갖게 된 그는 위험을 무릅쓰고 직접 심해 탐험을 하고 해저 다큐멘터리를 만들고 새로운 수중촬영 기술을 개발하여 특허를 얻으면서 10년 가까이 할리우드를 떠나 과학탐험가의 삶을 살았다. 또한 이 기간에 미국 항공우주국(NASA)에서 낸 화성탐사기획서를 꼼꼼하게 읽은 뒤 문제점을 포착해내고는 직접 새로운 탐사선을 디자인하기도 했다. 카메론의 아이디어를 긍정적으로 받아들인 NASA의 과학자들이 그를 자문위원회에 초빙할 정도였다. 실제로 그는 로켓을 타고 우주정거장에 직접 올라가려는 계획을 세우기도 했으나 사전 적응 훈련을 위해 긴 시간을 낼 수 없어 포기하기도 했다.

3D SF 영화의 신기원을 연 ‘아바타’는 카메론 감독이 90년대부터 구상했으나 컴퓨터그래픽 기술이 발전되기를 기다렸다가 2009년에야 개봉한 것으로 알려져 있다. 이십세기폭스코리아 제공
3D SF 영화의 신기원을 연 ‘아바타’는 카메론 감독이 90년대부터 구상했으나 컴퓨터그래픽 기술이 발전되기를 기다렸다가 2009년에야 개봉한 것으로 알려져 있다. 이십세기폭스코리아 제공

카메론은 직접 우주비행을 하지 못한 아쉬움을 다시 영화계에 복귀하는 것으로 달랬다. 외계와 외계인에 대한 드라마틱한 대작 영화를, 마치 직접 겪는 듯한 생생한 3D 영상으로 제작한 것이다. 그 결과로 나온 ‘아바타’는 절대 깨지지 않을 것 같았던 ‘타이타닉’의 놀라운 흥행 성적을 가뿐히 뛰어넘어 세계 최고의 자리에 새롭게 우뚝 섰다. 카메론을 넘어 설 수 있는 라이벌은 카메론 자신뿐이었다.

컴퓨터의 발전과 함께 한 카메론

카메론이 영화감독으로서 승승장구할 수 있었던 비결 중 하나는 자신이 원하는 장면이 나올 때까지 결코 포기하지 않고 연구에 연구를 거듭하여 매번 신기술을 개발해 냈다는 점이다. 1994년에 내놓은 ‘트루 라이즈’에는 수직이착륙 전투기가 도심 한복판에서 아찔한 액션을 선보이는 장면이 있는데, 당시 조종사를 연기한 배우 아널드 슈워제네거가 남긴 말이 인상적이다. ‘앞으로는 배우가 필요 없겠군요. 컴퓨터가 다 하니까.’

영화 '트루 라이즈'의 전투기 액션 장면. 이 장면의 컴퓨터그래픽 기술에 놀란 아널드 슈워제네거는 "배우가 필요 없겠다"고 말했다. UIP코리아 제공
영화 '트루 라이즈'의 전투기 액션 장면. 이 장면의 컴퓨터그래픽 기술에 놀란 아널드 슈워제네거는 "배우가 필요 없겠다"고 말했다. UIP코리아 제공

카메론은 당시에 동료들과 함께 특수효과 회사를 별도로 설립했다. 이 회사가 ‘트랜스포머’, ‘엑스맨’, ‘스타 트렉’ 등등 100편이 넘는 영화의 특수효과를 전담하며 오늘날 할리우드를 대표하는 컴퓨터그래픽 전문 집단 중 하나로 자리 잡은 디지털 도메인이다. 아이러니하게도 이 회사의 CEO였던 카메론은 나중에 자신의 지분을 모두 정리하고 결별하고 말았는데, 이유는 그의 영화 작업을 맡으면서 회사의 수익성이 낮아진다고 지적한 이사회와 대립했기 때문이다. 완벽주의를 고집하는 카메론은 제작 예산을 초과하기 일쑤였다.

사실 그의 영향력은 영화산업을 넘어 우리의 일상에도 깊이 들어와 있다. 바로 오늘날 세계적으로 가장 널리 쓰이는 컴퓨터그래픽 프로그램인 포토샵에 얽힌 이야기다. 어도비 사에서 생산하는 이 소프트웨어는 강력한 성능으로 사실상 독과점이나 다름없는 압도적인 세계시장 점유율을 누리고 있는데, 이렇게 포토샵이 성장한 과정이 SF영화의 역사와 직접적으로 연결되어 있다. 70년대 중반 ‘스타워즈’를 연출하던 조지 루카스 감독은 특수효과를 전담하기 위해 ILM이란 회사를 만든다. 포토샵의 원형이 되는 소프트웨어는 바로 이 회사에서 일하던 사람이 개발한 것이다. 그러나 포토샵이 크게 주목받은 계기는 1989년에 카메론이 감독한 ‘어비스’에서 환상적인 컴퓨터그래픽을 구현시킨 일이다. 바닷물이 허공에 둥둥 떠서 여러 가지 얼굴 표정을 짓는 장면이 마치 현실처럼 생생하게 스크린에 펼쳐졌다. 전 세계의 영화 팬들이 전혀 새로운 차원의 시각적 경험을 하는 하나의 문화사적 사건이었다.

영화 ‘어비스’에서 바닷물이 허공에서 사람 얼굴의 모양을 하는 환상적인 장면. 포토샵이 이 장면을 구현하면서 주목을 받았다. 이십세기폭스코리아 제공
영화 ‘어비스’에서 바닷물이 허공에서 사람 얼굴의 모양을 하는 환상적인 장면. 포토샵이 이 장면을 구현하면서 주목을 받았다. 이십세기폭스코리아 제공

‘어비스’는 카메론 감독의 연출작 중에서는 예외적으로 흥행에 성공하지 못했지만, 비평적으로는 좋은 평가를 받았고 영화 제작 과정에서 특수효과를 포함한 많은 실험적 시도가 이루어진 기념비적인 작품이었다. 예를 들어 영화 내용 중에 실험쥐가 액체에 잠긴 채 익사하지 않고 호흡을 하는 장면이 나오는데, 이는 트릭 촬영이 아니라 실제로 존재하는 특수 용액을 쓴 것이다. 다만 주인공이 수압이 매우 높은 심해 잠수를 하면서 이 액체로 호흡하는 장면은 특수효과로 연출한 것이다.

2009년에 나온 영화 ‘아바타’의 경우, 카메론은 이 영화의 기본 아이디어를 일찍이 90년대 중반부터 구상해왔으나 자신이 만족할 만큼 현실감 있는 영상을 구현해 낼 컴퓨터 기술이 발전할 때까지 기다렸다는 말로 유명하다. 이 영화에서 사용된 모션 캡처 기술은 기존의 신체 동작을 모사하는 차원을 넘어 얼굴 표정을 그대로 컴퓨터 가상 캐릭터에게 복사, 구현하는 ‘퍼포먼스 캡처’의 경지에 이르렀다.

‘아바타’의 생생한 3D 영상은 한층 진화한 모션 캡처 기술을 통해 만들어졌다. 이십세기폭스코리아 제공
‘아바타’의 생생한 3D 영상은 한층 진화한 모션 캡처 기술을 통해 만들어졌다. 이십세기폭스코리아 제공

카메론의 포효 ‘내가 세상의 왕이다!’

제임스 카메론은 ‘타이타닉’으로 최우수작품상을 포함해 아카데미상 11개 부문을 석권하는 기록을 세운 뒤 시상식장에서 수상 소감으로 ‘내가 세상의 왕이다!(I'm the king of the world!)’라고 두 손을 번쩍 들며 외쳐 화제가 되었다. 사실 ‘타이타닉’에 나오는 주인공의 대사를 그대로 따라한 것이지만 카메론 본인의 자부심이 노골적으로 드러나서 당시에는 유치하다는 느낌도 없잖아 있었다. 그러나 그 뒤로 그가 보인 행보, 즉 혼자 심해를 탐사한다거나 끊임없이 영화의 특수효과 신기술을 개발하거나 독보적인 스토리와 영상의 SF들을 연이어 선보이며 세계 영화사를 계속 다시 써내려 가는 것을 보면서 지금은 정말로 그가 세상의 왕이나 다름없다는 생각이 든다. 여러 직업을 전전하며 불안정한 생활을 이어가면서도 결코 자신의 꿈을 놓지 않았던 청년은 마침내 영상예술가이자 과학탐험가로 최고의 자리에 올랐다. 그의 삶을 살펴보면 희열과 열정을 추구하고 실현하는 과정이라는 점에서 과학과 예술은 한 가지임을 깨닫게 된다. 제임스 카메론은 21세기의 자아실현이란 바로 이런 스타일이 가장 이상적이라는 점을 온 몸으로 증명해 보인 인물인 것이다.

박상준ㆍ서울SF아카이브 대표

타이타닉 촬영 당시의 제임스 카메론 감독. 이십세기폭스코리아 제공
타이타닉 촬영 당시의 제임스 카메론 감독. 이십세기폭스코리아 제공

제임스 카메론

1954년 8월16일~ . 캐나다 온타리오에서 태어나 자라다 10대 후반에 가족을 따라 미국 캘리포니아로 이주했다. 지역의 전문대에 진학하여 물리학과 영문학을 공부했으나 도중에 그만둔 뒤 트럭운전사 등 여러 직업을 전전했다. 이 시기에는 한때 친구 집 소파에서 지낼 정도로 어려운 생활을 했지만 시간이 날 때마다 스토리를 습작하고 대학도서관에 가서 특수효과 등 영화산업에 대해 독학했다고 한다. 23세 때 ‘스타워즈’를 본 뒤 영화계에 투신하기로 결심했으며 과학과 영상예술의 결합 가능성에 대한 확신을 갖게 되었다. 이즈음 친구들과 함께 돈을 모아 10분짜리 단편 SF영화를 만들었는데, 촬영 첫날엔 카메라를 낱낱이 분해해서 작동 원리 등을 완벽하게 파악했다고 한다. 유명한 B급 영화 제작자인 로저 코먼의 회사에 들어간 뒤 여러 작품에서 특수효과와 디자인을 맡으며 경력을 쌓다가 ‘터미네이터’의 각본을 완성하면서 자신의 길을 걷기 시작했다. 그는 자신이 감독을 맡는 조건으로 단돈 1달러에 판권을 제작자에게 넘겼는데, 1984년에 개봉된 ‘터미네이터’는 제작비의 11배가 넘는 수익을 올리며 대성공을 거둔다. 이후 ‘에일리언2’ ‘터미네이터2’ ‘트루 라이즈’ 등 연출하는 작품마다 승승장구하면서 조지 루카스, 스티븐 스필버그와 함께 할리우드를 대표하는 대작 흥행감독으로 확고하게 자리를 잡았다. 현재 ‘아바타’의 후속편 두 편을 동시에 제작하고 있으며, 2025년까지 모두 네 편을 개봉하겠다고 밝힌 바 있다. ‘아바타2’의 개봉은 2020년으로 예정되어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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