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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유식 칼럼] '철새 통합'이 보수집권플랜인가

입력
2017.11.16 15:11
30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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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3년전 궤멸 한나라당 '사상전'으로 부활

'진지전' 집권 진보서 한국당 교훈 얻어야

혁신 없는 통합은 모래성, 새 피 수혈 시급

자유한국당 홍준표 대표가 16일 오전 포항시 홍해 실내체육관에 마련된 지진 피해 대피소를 찾아 주민들을 위로하고 있다. 연합뉴스
자유한국당 홍준표 대표가 16일 오전 포항시 홍해 실내체육관에 마련된 지진 피해 대피소를 찾아 주민들을 위로하고 있다. 연합뉴스

"좌편향의 진보는 시장경제 체제의 결과에 대한 과도한 국가개입과 일상적 국가간섭을 주장, 결국 과도한 정부규제와 정부세금을 양산해 성장 둔화, 일자리 감소, 투자의 해외이전, 정부부패의 증가 등을 초래해 경제적 약자를 더 어렵게 만든다...기회 평등이 아닌 결과 평등주의, 상향평준화가 아닌 하향 평준화, 국익을 무시하는 극단적 집단이기주의, 반기업주의, 반전문가주의, 일방적인 근대사 매도와 부정, 감성적 인기영합주의 등과의 싸움이 불가피하다. "

문재인 정부의 적폐청산 드라이브를 '망나니 칼춤'이라고 비난하며 보수대통합을 주장한 자유한국당 홍준표 대표의 말이 아니다. 13년 전인 2004년 노무현 전 대통령 탄핵 역풍 속에 치러진 4ㆍ15 17대 총선에서 121석을 얻어 궤멸 위기를 모면한 한나라당의 박세일 전 의원이 당선자 연찬회에서 창당에 버금가는 보수개혁을 주장하며 내놓은 진단이다. 김영삼 정부 때부터 '보수의 경세가'로 자리매김한 그는 특히 진보정권에 맞서는 정치투쟁으로 '사상전(思想戰)'의 중요성을 역설했다. 재집권 전망을 가지려면 모든 당원이 자유민주주의와 시장경제, 공동체주의와 실용개혁 등 보수의 4대 핵심가치를 이념으로 철저히 무장해야 한다는 것이다.

이 일화가 떠오른 것은 최근 보수진영에서 무차별로 보내오는 카카오톡 문자 중 '문재인 집권은 진지전의 승리!'라는 글을 보고 나서다. 요지는 "우파는 진보좌파 세력의 집권을 국정농단 프레임 또는 음모의 결과로만 생각하는데, 사실은 좌파가 오랜 전부터 꾸준히 준비해온 '진지전(陣地戰)'의 승리로 봐야 한다"는 것이다. 진지전은 이탈리아 공산당 창설자인 안토니오 그람시가 제시한 전략으로, 영화ㆍ예술ㆍ문학ㆍ역사ㆍ교육ㆍ법조ㆍ노동ㆍ법조ㆍ정치 등 각 분야에서 진지(참호)를 구축해 주도권을 장악하면 혁명에 성공한다는 이론이다. 이 모델에 따라 국내 좌파 진영이 정치ㆍ교육ㆍ노동ㆍ언론ㆍ법조ㆍ문화ㆍ환경 등의 분야에 진지를 선점한 것이 문 정부 출범의 결정적 힘이었다는 것이다. 긴 글의 결론은 "우파도 이제 길게 보고 각 분야에 참호를 구축해 진지전에 돌입해야 한다"였다.

사상전과 진지전 가운데 집권플랜으로 어느 쪽이 더 매력적일까. 결과론이지만 전자는 보수정권의, 후자는 진보정권의 동력이 됐으니 우열을 가리기 쉽지 않다. 또 사상전을 확장하면 진지전이 되고 진지전의 바탕은 사상전이니, 전략으로서 두 주장은 동전의 양면과 같다.최근 적폐청산과 정치보복 프레임으로 정면 충돌하는 여야로서도 사상전으로 내부결집을 공고히 하고 진지전으로 여론을 선점하는 양수겸장의 전략을 취하는 게 최선일 것이다.

문제는 이런 단순 계산도 하지 못하고 보수 카톡방의 절박한 훈수를 받는 보수진영 즉 자유한국당이다. 한국당의 지금 처지는 13년 전보다 훨씬 곤궁하다. 보수가 분열된 데다 리더십은 빈곤하고 소속의원들은 이익을 좇아 지리멸렬이다. 그런데도 개혁과 쇄신을 위해 사상전이 필요하다든지, 진지전을 펴자든지, 내부부터 확 갈아엎자든지 등의 결기가 보이지 않는다. 홍 대표는 툭하면 '사내' 운운하지만 정작 본인에게는 폭력적 언어나 자기합리화 외에는 사내다운 면모나 책임 있는 자세가 없다.

13년 전 보수당은 차떼기 등의 오명을 벗기 위해 천막당사 이전, 연수원 매각 등 나름 감동 이벤트와 이념ㆍ가치 재무장으로 떠나는 민심을 잡았다. 그러나 홍 대표가 혁신보다 앞세운 통합에는 감흥이 없다. 세월호 선장이나 선원처럼 제 한 몸 살겠다고 배와 지지자, 명분과 약속을 팽개친 정치철새들에 대한 냉소와 조롱만 넘쳐날 뿐이다. 전략 없이 몸집만 부풀린 한국당은 두뇌는 없고 완력만 뽐내는 정치적 기형아에 다름 아니다. 홍 대표가 보수통합 운운하며 큰 소리 쳤지만 당 지지율은 여전히 10%대에 갇혀 있다.

혁신과 자기희생 없는 통합으로 한국당이 얻을 것은 아무것도 없다. 사상전이든 진지전이든 감동 코스프레를 펼쳐 전망을 만들어야 새 피가 모이고 새 살이 돋는다. 그게 집권플랜이다.

이유식 논설고문 jtino57@hankookilbo.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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