내일 수색 현장서 합동 영결식
선조위는 사고 원인 조사 계속
세월호 미수습자 가족들이 16일 오후 목포신항에서 기자회견을 열어 오는 18일 목포신항을 떠나겠다고 발표했다. 목포신항 북문 앞에 미수습자인 남현철군, 박영인군, 양승진 교사, 권혁규군, 권재근씨 사진이 걸려 있다. 연합뉴스

“희망의 끈을 놓은 것은 아닙니다. 선체조사 과정에서라도 찾아 가족의 품으로 꼭 돌려보내 주시길 바랍니다.”

세월호 미수습자 가족들이 18일 목포신항을 떠나기로 했다. 세월호가 뭍으로 올라온 지 221일, 세월호 참사 1,311일만이다.

미수습자 가족들은 16일 오후 세월호 선체 수색이 진행 중인 목포신항 철재부두에서 기자회견을 열고 “세월호 선체 수색이 마무리 되어가고 있는 지금 비통하고 힘들지만 이제 가족을 가슴에 묻기로 결정했다”며 “수많은 갈등 속에서 더 이상의 수색은 무리한 요구이자 국민들을 더 이상 아프지 않게 해야 한다는 결론을 내렸다”고 말했다.

이들은 “세월호가 침몰한지 3년 7개월이 지난 오늘까지도 가족을 찾지 못하고 있다”며 “세월호가 인양되고 내 아들, 남편, 동생과 조카를 찾기 바라는 간절한 마음으로 7개월여를 보냈지만 끝내 5명이 가족의 품으로 돌아오지 못했다”고 설명했다.

기자회견 내내 고개를 푹 숙이며 눈물을 참던 미수습자 가족은 “다섯 사람을 영원히 잊지 말고 기억해달라”며 끝내 울음을 터뜨렸다. 이들은 단원고 2학년 학생이었던 박영인ㆍ남현철군, 단원고 양승진(사고 당시 59세) 교사, 부자지간인 권재근(사고 당시 51세)씨와 권혁규(사고 당시 7세)군 등 미수습자 5명의 이름을 부른 뒤 오열했다.

2남 중 막내인 박영인 군은 주말마다 부모님 여행에 따라나서는 살가운 아들이었다. 영인군과 같은 반이었던 남현철 군은 5반 고(故) 이다운 군의 자작곡 ‘사랑하는 그대여’를 작사하는 등 음악적 재능이 뛰어났고 기타실력도 상당했다.

양승진 교사는 학생들에게 듬직한 선생님이었다. 사고 당일 선체가 기울자 자신이 입고 있던 구명조끼를 제자에게 벗어주고 학생들이 있는 배 안으로 들어갔다가 아직까지 돌아오지 못하고 있다. 권재근씨와 아들 혁규군은 온 가족과 제주도로 이사를 하던 길에 슬픈 이별을 했다.

미수습자 가족들은 18일 오전 목포신항 수색 현장에서 간소하게 영결식을 치른 뒤 각각 안산 제일장례식장과 서울아산병원 장례식장에서 3일장으로 장례를 치를 예정이다. 5명의 유품을 태운 유골함은 평택 서호공원과 인천가족공원 세월호 일반인 희생자 추모관에 안치된다. 앞서 조은화양, 허다윤양, 이영숙씨, 고창석 교사의 유해는 평택 서호공원과 인천가족공원 추모관, 국립현충원에 안장됐다.

가족들은 떠나지만 세월호 선체 조사와 사고 원인 규명은 목포신항에서 계속된다. 세월호 선체조사위원회는 지난달 선체 왼쪽을 바닥으로 누워있는 세월호 선체를 바로 세우기로 의결하고 예산 확보를 위해 기획재정부와 협의하고 있다.

선조위는 12월까지 업체를 선정해 내년 1월부터 세월호를 바로 세우는 작업에 들어간다. 직립 작업은 목포신항만 옆 바다에서 크레인으로 선체를 세운 뒤 다시 육지로 옮기는 방법 등이 거론되고 있다.

선조위는 3월 안에 모든 조사를 마친 뒤 선조위 활동 마지막 날인 5월 6일 조사 결과를 발표할 계획이다.

미수습자 가족들은 그 동안 지지해준 국민과 잠수사들, 자원봉사자, 진도군민, 목포시민 등에게도 감사의 말을 잊지 않았다. 가족들은 “국민들께 모두 감사 드린다. 앞으로 다시는 세월호 참사와 같은 아픔이 반복되지 않도록 대응 시스템을 구축하고 한 점 의혹 없는 진상규명이 꼭 이뤄지길 바란다”고 말했다.

목포=박경우 기자 gwpark@hankookilbo.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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