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홉 살 미지는 일 년 전 강아지 봉자를 잃었다. 봉자는 갓 태어나 집으로 온 아기 미지를 쓰다듬어 주었고 강물에 빠진 다섯 살 미지를 구해주었다. 학교 친구들에게 인기 없는 미지의 말동무였다. 봉자가 죽자 미지는 유일한 친구를 잃었다.

어느 날 미지는 발신인을 알 수 없는 택배를 받는다. 하얀색 끈 운동화 한 켤레다. 이 세상에 없는 이의 이름을 세 번 부르고 달리면 천국에서 30분 간 그를 만날 수 있는 마법 신발이다. ‘이상한 나라 오즈’의 도로시가 은구두 뒤꿈치를 세 번 맞부딪히면 캔자스 집으로 돌아갈 수 있던 것처럼.

망설일 것 없이 미지는 봉자의 이름을 부른다. 하늘나라 봉자마을에서 미지와 봉자는 반갑게 다시 만난다. 미지에게 운동화를 보낸 건 봉자였다. 미지가 혼자 울고 있을 게 걱정되어서였다.

봉자를 잃은 미지처럼 어린이 역시 죽음과 상실의 고통을 어른과 똑같이 겪기도 한다. 세상의 비극은 어린이를 비켜가지 않는다. 어린이 또한 고단한 삶의 무게를 자기 몫만큼 지고 살아간다.

‘동화 같다’고 하면 흔히 눈물 없는 세계를 떠올리지만 이 동화는 눈물에서 싹튼다. 봉자를 그리워하고 상실에 힘겨워하는 미지의 슬픔은 그리 만만하지 않다. 마법 운동화를 신고서라도 봉자에게 달려가고 싶을 만큼 절절하다.

미지와 봉자가 하늘나라 봉자마을에서 영원히 함께 사는 해피엔딩이라면 ‘동화 같다’고 말해도 좋다. 하지만 마법의 시간은 오직 30분만 허락되고 봉자를 영영 잃은 현실은 달라지지 않는다. 아홉 살 미지는 어떻게 슬픔을 헤쳐 나갈까.

동화가 건네는 열쇠는 마법에 있다. 마법 자체가 아니라 마법을 통해 비극에도 울지 않을 수 있는 방법을 발견하는 데 있다. 마법 운동화를 신고 봉자를 다시 만난 미지는 봉자가 세상 어딘가에 무언가로 다시 태어난다는 사실을 알게 된다. 이제 벚꽃도, 길고양이도, 빗방울도 봉자가 될 수 있다. 봉자를 사랑했던 마음을 주변 작은 존재를 사랑하는 마음으로 키워나가야 한다.

미지는 학교 가는 길에 만난 벚꽃을 보며 사랑한다고 말한다. 봉자와의 약속을 지킨다. 학교에도 사랑해야 할 게 많이 있다며 힘차게 뛰어가는 미지 곁에는 새 친구가 함께 할 것이다.

동화에도 비극은 있지만 절망으로 끝나지 않는다. 울 일이 없어 울지 않는 게 아니라 울음을 그치고 발견하는 희망, 그것이 동화고 어린이의 힘이다.

김유진 어린이문학평론가ㆍ동시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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