청산 못한 과거 우리 미래 지배
법리-현실 거리감 극복이 과제
수사논리-국민정서 빨리 판단해야
군 사이버사의 정치개입 온라인 여론조작 활동을 지시하고 관여한 혐의로 구속된 김관진 전 국방부 장관이 13일 호송차에서 내려 서울 서초동 서울중앙지검 조사실로 향하고 있다. 연합뉴스

김관진 전 국가안보실장이 국방부 장관 시절 비위로 구속됐다. 박근혜 정부에서 국가정보원장을 지낸 3인도 영어의 몸이 될 처지다. 모두 북한 위협에 맞서 안보를 책임졌던 수장들이다. 이들은 북한을 겨냥해야 할 안보자산을 국내 정치공작에 동원한 혐의를 받고 있다. 자리보전을 위해 ‘안보’를 팔았다면 어떤 이유로든 비판 받아 마땅하다. 야권은 정치보복의 프레임에 넣어 검찰수사에 분노하고 있으나, 이는 논리적 모순처럼 보인다. 오히려 안보수장들의 이중성을 비판할 때 홍종학 중소벤처기업부 장관의 이중성을 지적하는 것과 일관성을 유지할 수 있다. 말과 처신이 다른 홍 후보자 보다는 입신을 위해 안보자산을 이용한 안보수장들의 행태가 더 비난 받을 일이기 때문이다.

1년 전 오늘 문재인 대통령은 첫 100만 촛불 민심의 함성을 본 뒤에 “대통령의 퇴진을 넘어 시대를 교체하고 나라의 근본을 확 바꾸라는 준엄한 명령”이라고 소명을 받은 듯 말했다. “이게 나라냐”는 국민의 통탄은 대통령 하야만으로는 치유될 수 없는 절망의 표현인 때문이다. 그 연장선에서, 쌓이고 쌓인 폐단과 비리를 뿌리뽑는 적폐청산은 문재인 정부의 정체성에 닿아 있는 일이다.

청산되지 않은 과거는 미래를 지배한다고 어느 시인은 적었다. 청산되지 않은 과거는 또 반드시 돌아온다고 어느 학자는 경고했다. 과거 청산은 우리 사회가 풀지 못한 숙제 중 하나다. 식민지 시절과 권위주의 정권에서 반민족, 반인권 가해자에 대한 진상규명과 단죄의 문제다. 그 과정은 더는 늦춰지지 않고, 부정되지 않아야 할 진실과 정의의 길이기도 하다. 아직은 진상을 파헤치고, 위법자를 단죄해 정의를 세우는 일이 먼저인 셈이다. 그런 뒤에야 화해를 꺼낼 수 있다.

박수를 받아야 할 적폐청산에 대해 논란과 공방이 떠나질 않는 것은 사실이다. 5년마다 정권이 교체되면 되풀이되던 과거 정권 지우기와 장면이 겹치는 탓이 크다. 단죄의 주체가 검찰이고, 그 대상은 과거 정치권력이며, 밉보인 기관이나 인물들이 처벌받는 유사성도 있다. 정의 세우기나 사회 진보를 위한 진통이 아니라 또 한번의 반복을 향한 변주가 되지 않을까 하는 의심이 그래서 나온다.

가까운 역사의 궤적만 뒤적여도 이런 우려는 가볍지 않다. 현 정부 인사들로선 박근혜 정부보다 이명박(MB) 정부가 더 미울 수밖에 없다. 진보정권 청산에 나선 게 MB였고, 그때를 계좌추적을 당하지 않은 이들이 드물 정도였다. 진저리를 치던 이들로선 정권을 되찾은 지금 MB쪽을 손 봐야 한다는 정서가 강하다. 반 MB 정서 속에 그를 겨냥한 수사가 동시 진행되는 걸 보면 정치보복이란 주장이 100% 틀린다고 할 수도 없다.

법리와 현실의 거리감이 큰 것도 적폐청산과 정치보복 공방이 반복되는 배경이다. 단지 정의를 세우는 일이라면 앞만 보고 가면 된다. 그 길에 MB만 놓여 있는 것도 아니다. 정파에 관계없이 누구든 정의의 저울에 올려지면 칼 바람을 피하기 어렵게 된다. 하지만 현실 정치에서 적폐청산은 곧 정치보복의 다른 면일 수 있다. MB를 싫어하는 이에겐 과거 청산이지만, 문재인 정부를 싫어하는 이에겐 정치보복으로 비친다. 그래서 과거 정부들의 과거 청산은 처벌을 너무 쉽게 포기, 진상마저 제대로 드러내지 못하곤 했다. 노무현 정부만 해도 대북송금 특검 때 김대중 전 대통령을 조사하지 않았다. 대선자금 수사 때는 이회창 전 한나라당 총재를 부르지 않았다. 수사 논리가 아닌 정무적 판단이 개입되고, 국정운영을 위해선 국민 정서를 감안할 필요가 있었던 까닭이다.

수사가 MB를 향해 조여가는 지금 서울중앙지검의 수사팀과, 검찰 수뇌부, 청와대의 고민은 MB를 어느 수위로 처리할지에 모아질 것이다. 그 기준은 과거 청산, 새로운 시대를 열어가려는 의지, 그리고 국민과의 공감이어야 한다. 그리고 어느 경우가 되든 그 결정은 빠를수록 좋다. 늦어질수록 여론이 더 갈라지고 후유증은 커진 게 과거 경험이다.

이태규 뉴스1부문장 tglee@hankookilbo.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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