군부, 탱크 등 동원… 부인에 권력 이양 위해 부통령 숙청이 발단

군부 쿠데타가 발생한 짐바브웨 수도 하라레에서 15일 무장군인과 탱크가 로버트 무가베 대통령 집무실로 이어지는 인근 도로를 지키고 있다. 하라레=AP 연합뉴스

아프리카 짐바브웨에서 쿠데타가 발생, 40년 가까이 이어져 온 로버트 무가베(93)의 독재 정권이 막을 내릴 전망이다.

15일(현지시간) AP통신 등에 따르면 짐바브웨 군부는 이날 오전 방송국, 국회 등 수도 하라레에 있는 주요 거점을 하나씩 장악하고는 “무가베 대통령과 부인 그레이스 무가베(52)를 구금했다”고 밝혔다. 그레이스 무가베의 측근인 이그나티우스 춈보 재무장관도 군에 의해 구금된 것으로 전해지고 있다.

국영 방송국인 ZBC를 장악한 군부는 이날 오전 TV 성명을 통해 “무가베와 그의 가족들은 안전하다”며 쿠데타가 아니라고 주장했지만 정황상 쿠데타로 보는 시각이 많다. 군부는 “그(무가베)의 주변에서 국가에 경제적ㆍ사회적 고통을 부르는 범죄를 저지르는 이들이 타깃”이라며 “우리의 행동은 퇴보하는 정치ㆍ사회ㆍ경제 상황을 진정시키기 위한 것”이라고 배경을 설명했다.

쿠데타는 하라레 외곽에서 탱크가 목격되는 등 전날 저녁부터 조짐을 보였다. 15일 새벽에는 무가베 대통령이 거주하는 지역에서 수십발의 총성이 들리기도 했다. 무가베 대통령이 사는 하라레의 부촌 보로데일의 한 지역 주민은 AFP통신과의 인터뷰에서 “새벽 2시쯤 (무가베의) 집 쪽에서 3~4분 간 30~40발 정도의 총성이 들렸다”고 전했다. 짐바브웨 주재 미 대사관은 트위터를 통해 이날 거주 자국민들에게 안전한 곳으로 대피하라고 권고했다. 이후 도심 곳곳에 무장 군인과 장갑차가 배치됐고, 오전까지 도심에서 최소 3건의 거대한 폭음이 들리기도 했다. 하라레는 현재 군 통제 하에 놓인 상태다.

이같은 상황은 13일 군 수장인 콘스탄티노 치웬가 장군이 기자회견을 열고 “해방전쟁 참전용사 출신 당원을 겨냥한 숙청을 중단하라”고 경고하며 군부 개입 가능성을 시사한 직후에 벌어졌다. 군부는 지난 6일 무가베 대통령이 41살 연하인 그레이스 여사에게 대통령직을 물려주려는 의도로 자신들이 지지하는 에머슨 음난가그와 부통령을 전격 경질하자 그에게서 완전히 등을 돌렸다. AP통신은 “군부와의 균열은 1980년 무가베 집권 이후 처음 있는 일”이라고 설명했다.

군부 지지 세력들은 쿠데타를 환영하는 분위기다. 크리스 무츠방와 짐바브웨 해방전쟁 참전용사협회 회장은 “피를 흘리지 않고 권력의 남용을 바로 잡았다”며 지지의 뜻을 피력했다. 반면 제이콥 주마 남아프리카공화국 대통령은 짐바브웨 군부에 “헌법을 존중하지 않은 정권교체로 혼란이 확산되지 않길 빈다”고 밝혔다. 그는 무가베 대통령과 직접 통화했다며 무가베 스스로가 “억류됐지만 괜찮다”고 했다고 공개했다.

독립 영웅에서 악명 높은 독재자로 변모했던 무가베 대통령의 시대는 사실상 저문 것으로 보인다. 무가베는 1980년 초대 총리에 이어 1987년 대통령직에 올라 지금까지 38년째(37년 7개월) 짐바브웨를 통치해왔다. 식량난 등으로 나라가 경제 위기 상황에 처해 있음에도 가족들과 호화 생활을 즐겨 구설에 오르내렸다. 비서 출신의 그레이스 무가베와는 1996년 결혼했다.

채지선 기자 letmeknow@hankookilbo.com

로버트 무가베 짐바브웨 대통령(가운데)이 지난 8일 수도 하라레에서 개최된 한 집회에 참석한 모습. AP 연합뉴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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