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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평선] 박정희 동상

입력
2017.11.15 15:31
30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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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난 6월 세계 최대 규모의 크리에이티브ㆍ광고 축제 칸라이언스(옛 칸국제광고제)에서 4개 부문 상을 휩쓸어 주목 받은 작품이 있다. 미국의 한 자산운용회사가 시행한 ‘두려움 없는 소녀’(Fearless Girl) 캠페인이다. 월스트리트의 상징처럼 된 높이 3.4m의 ‘돌진하는 황소’(Charging Bull)에 맞서듯 세워진 127㎝ 소녀상 이야기다. ‘세계 여성의 날’(3월 8일) 직전 세워진 소녀상 발치에는 ‘여성 리더십의 힘을 알라, 그녀가 차이를 만든다’는 글귀가 있다.

▦ 적은 여성 임원 비율, 남녀 임금 불평등 등 금융업계의 성차별을 환기시키려 한 이 소녀상 캠페인은 열렬한 호응으로 한 달 정도 설치 계획을 약 1년으로 연장했다. 하지만 좋은 취지에도 불구하고 비판하는 사람도 없지 않다. 그 중 하나가 ‘상업적 페미니즘‘이라는 지적이다. 이 회사는 여성 임원이 30% 이상인 기업에만 투자하는 펀드를 운영하고 있지만 자사 경영진 중 여성은 18%에 불과하다고 한다. 지난달에는 미 노동부의 남녀ㆍ인종 임금 차별 지적을 받고 합의금으로 500만달러를 내기로 했다는 보도도 있었다.

▦ 하루아침에 남녀 차별의 원흉으로 변해버린 ‘황소’의 조각가도 자신의 작품을 오도했다고 반발했다. 작가의 인터넷 홈페이지를 보면 1989년 설치 당시 이 조각은 “전세계에서 온 사람들이 출신이나 환경에 굴하지 않고 결단과 노력으로 장애를 극복해 성공하는 ‘불가능은 없다’는 미국, 특히 뉴욕의 정신을 보여주려는 것”이라고 설명되어 있다. 애초 작품 의도와 황소상을 월스트리트의 상징으로 여기는 현실 사이에 적잖은 괴리가 생긴 셈이다.

▦ 이런 동상이라면 해석 논란 정도이지만, 구체적인 인물 동상은 사회 분란을 피할 길이 없다. 그를 ‘위인’으로 칭송하기 위해 만들기 때문이다. 그러나 독립ㆍ혁명 영웅 정도가 아니라면 공만 있고 과는 없는, 만인에게서 사랑 받는 사람이 몇이나 되겠나. 게다가 독립ㆍ혁명 영웅 동상조차 시대가 바뀌면 철거되는 비운을 맞기도 한다. 전직 대통령 동상 건립을 두고 갈등이 극심하다. 찬반이 엇갈리는 정치인 동상을 분란을 감수하며 세워야 하는지 의문이다. ‘영웅’이 그립다면 광화문광장의 이순신ㆍ세종대왕상을 보며 그게 얼마나 낡은 감정인지 한 번 생각해볼 일이다.

김범수 논설위원 bskim@hankookilbo.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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