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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평선] 홍종학의 '말빚'

입력
2017.11.13 16:05
30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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중소벤처기업부 장관 후보자로 지명되기 전까지 그는 학계ㆍ시민단체ㆍ정계를 넘나들며 누구보다 경력을 잘 쌓고 가정도 흠 없이 관리해 왔다고 자부했을 것이다. 그런 그가 하루아침에 내로남불의 끝판왕이 되고 후안무치ㆍ표리부동의 대명사가 됐으며 심지어 '지킬 앤 하이드'라는 오명을 뒤집어썼다. 문재인 정부 내각의 마지막 퍼즐로 선택된 이후 보름 동안 그에게 쏟아진 조롱과 야유는 60 가까이 살면서 감당한 그것의 합보다 훨씬 컸을 것이다. 가진 자의 특권과 대기업의 횡포를 비난하며 '을의 정의'를 독점해 온 '홍종학의 말빚' 탓이다.

▦ 말빚은 말 그대로 '말로써 남에게 진 빚'이다. 2010년 3월 법정 스님이 입적 직전에 "그 동안 풀어놓은 말빚을 다음 생으로 가져가지 않겠다"며 생전에 자신의 이름으로 출판한 모든 출판물을 더 이상 출간하지 말아 주기를 간곡히 부탁한 일화에서 친근해진 용어다. 지난 주말 인사청문회에서 홍 후보자는 7번이나 "겸허하게 반성하고 사과한다"며 몸을 굽혔다. 장모의 쪼개기 증여, 딸의 특목중 진학, 서울대 지상주의 저서, 모녀 간 채무계약서 등 불거진 의혹이 그가 호기롭게 내내 주장해 온 평등ㆍ공정ㆍ정의를 낯뜨겁게 만든 까닭이다.

▦ 청문회 하이라이트는 2015년 이완구ㆍ황교안 총리 청문회에서 홍 후보자가 '정의의 화신'처럼 두 사람을 몰아붙인 영상이었을 것이다. 부메랑처럼 되돌아온 그때의 말빚은 참으로 엄중하다. 문재인 대선 캠프에서 홍 후보자와 함께 일했던 모 인사가 '홍종학을 고발한다'는 반어적 제목으로 그의 일솜씨와 열정, 품성을 변호하는 글을 SNS에 올려 화제가 됐고 국민의당과 바른정당에서도 홍 후보자의 능력과 인품을 옹호하는 얘기가 나온다. 하지만 여덟 번째 낙마자를 만들겠다는 자유한국당의 독 오른 정치공세를 막기엔 역부족이다.

▦ 문제는 말빚을 가벼이 여기는 여권의 태도다. 청와대가 "국세청이 권유하는 절세" 운운하며 비상식적 잣대를 들이댄 것은 이미 알지만 청문회를 지켜본 민주당마저 "장관직 수행에 결함이 될 정도의 도덕성 문제나 불법행위가 없다"고 강변하니 말이다. 홍 후보자의 부적격 여부는 일찌감치 결론 난 사안이다. 그럼에도 그에게 미련을 두는 것은 나름 긍정적 평판이 있는 데다, 대안을 찾다가 '파출소 피하려다 경찰서 만나는' 우를 범할 수 있어서다. 여권이 홍 후보자를 지키려면 말빚의 엄중함을 성찰하겠다는 약속부터 해야 설득력이 있다.

이유식 고문 jtino57@hankookilbo.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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