최면과학의 아버지라 불리는 제임스 브레이드가 1841년 오늘 '메스머리즘'의 과학적 근거를 포착했다.

의학ㆍ백과사전은 최면(催眠)을 수면과 각성의 중간적 특징을 지니는 상태라고 얼버무린다. 최면상태에서는 외부의 암시자극에 민감한 특별한 의식성을 띠며, 운동 지각 기억 사고 상상 감정 등 여러 심리적 활동으로 뇌파와 근전도는 물론이고, 자율신경계의 생리적 변화도 야기된다고 한다.

고대인들은 최면 상태에 훨씬 친숙했을 것이다. 바쿠스의 축제에서 남녀가 알몸으로 광란의 춤을 춘 것도 주신(酒神)의 상징적 암시에서 비롯된 광의의 최면상태였을지 모른다. 기독교가 서구인들의 영혼을 전유하게 되면서 최면은 미혹의 악으로 점차 내쳐졌다.

17세기 오스트리아 출신으로 프랑스에서 개업한 의사 프란츠 안톤 메스머(Franz Anton Mesmer, 1734~1815)는 기괴한 방식으로 최면을 의료행위로 소환했다. 빈 대학에서 ‘동물 자기술(磁氣術)’로 학위를 받은 그는 인체 자력의 흐름이 흐트러지면서 통증과 질병을 유발한다고 여겨, 자석으로 환자를 치유할 수 있다고 주장했다. 실제로 그는 그 기법으로 여러 난치병 환자를 치유했고, 소문을 듣고 몰려든 환자들을 집단치료하기도 했다고 한다. 당연히 그는 종교계와 주류 의학계로부터 공격 받았고, 초기의 광적 열기가 식으면서 ‘메스머리즘’이라 불리게 된 그의 치료법도 점차 외면 당했다.

최면을 과학의 영역에 편입한 이는 스코틀랜드 의사 제임스 브레이드(James Braid, 1795~1860)였다. 그는 1841년 11월 13일 맨체스터의 한 거리에서 우연히 자석치료사라는 이의 공개 치료행위를 보게 된다. 긴 수염에 찌를 듯한 눈빛을 지닌 그 치료사는 대중이 보는 앞에서 환자의 통증을 없애 보였다. 에딘버러대에서 의학을 전공한 그는 직접 목격한 그 장면을 부정할 수도 수긍할 수도 없어 며칠 뒤 다시 현장을 찾아갔고, 메스머조차 알지 못했던 메스머리즘의 메커니즘 일부를 간파해냈다. 시선을 붙드는 깊은 응시와 눈의 피로, 암시와 자기암시. 그는 촛불과 램프 등을 이용해 가족과 친구 하인 환자 등을 대상으로 실험을 거듭하며 반응과 효과를 연구했고, 그 효과에 ‘최면(hypnotism)’이라는 명칭을 부여했다.

심리학과 정신의학, 신경학, 뇌과학이 발달하면서 최면과학도 비약적으로 발전, 최면요법은 범죄 수사에서부터 각종 공포증 등의 치료에까지 폭넓게 활용되고 있다.

최윤필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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