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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뒤끝뉴스] “60세 되면 떠나라”는 삼성의 오래된 관행

입력
2017.11.11 14: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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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울 서초동 삼성전자 서초사옥. 신상순 선임기자
서울 서초동 삼성전자 서초사옥. 신상순 선임기자

“대졸 신입사원 한 명을 뽑을 때도 그 사람의 능력을 꼼꼼히 살펴보려고 GSAT(삼성직무적성검사) 치르고 면접도 세 번씩 보는데, 30~40년 근무한 사람들을 평가하는 데 있어서는 나이만 보겠다니…”

최근 삼성전자 사장단 인사 발표 이후 만난 한 직원은 이런 말을 했습니다. 실적이 아닌 60세라는 나이를 기준으로 퇴사 여부를 결정한 이번 인사를 한마디로 “이해하기 어렵다”는 거였습니다.

삼성전자는 지난 3일 총 10명의 회장ㆍ부회장ㆍ사장 승진을 발표하면서 ‘세대교체 인사로 경영 쇄신’이라는 의미를 부여했습니다. 이번 인사에 따라 반도체 등 부품(DS), 소비자가전(CE), ITㆍ모바일(IM) 세 사업 부분을 이끄는 부문장 평균 나이는 57세로, 전임자들의 평균 63.3세보다 6.3세 젊어졌는데요. 삼성전자 측은 이에 대해 이런 설명도 내놨습니다. “급변하는 IT(정보기술) 산업 환경과 4차 산업혁명이라는 엄중한 상황에서 젊은 피들로 하여금 한 차원 높은 도전과 혁신을 추진하게 됐다.”

이를 두고 안팎에서 잡음이 들립니다. ‘60세가 넘는 사람은 도전이나 혁신을 제대로 할 수 없다’는 뜻도 되기 때문입니다. 나이가 들수록 체력 저하 등 문제가 나타나는 건 현실입니다. 하지만 이를 그 사람의 능력과 등치 시킬 수는 없을 것입니다. 나이가 들면서 쌓인 다양한 경험으로 육체적인 쇠퇴를 상쇄할 수 있고, 젊을 때보다 신체기능은 마이너스이지만 판단력이나 지혜는 플러스라는 분석도 있습니다.

이번 인사 원칙이, 1993년 이건희 회장의 발언으로 굳어진 ‘암묵적 가이드라인’에 따른 것이라면 그 또한 문제입니다. 이 회장은 당시 독일 프랑크푸르트에서 삼성 사장단에게 ”60세가 넘으면 젊은 사람에게 사장 자리를 내줘야 한다”며 “70, 80이 되어서도 실무를 쥐고 있다가는 조직에 큰일이 난다”고 말했습니다. 그게 벌써 24년 전입니다. 1990년 29.5세였던 우리나라 평균 연령은 올해 41세로 10세 넘게 뛰었습니다. ‘100세 시대’라고들 하는데, 퇴사 기준은 여전히 24년 전의 그것이란 얘깁니다.

올해 유례없는 호실적을 낸 반도체 부문은 김기남 사장이 부문장에 올랐습니다. 김 사장의 나이는 59세입니다. 증권가에서는 반도체 사업의 내년 실적이 올해보다 좋을 것이란 전망이 나옵니다. 내년에 김 사장이 안정적인 실적을 낸다면, 그때도 성과와는 상관없이 “경영 일선에서 물러나 후진 양성에만 힘써달라”고 할 수 있을까요. 아마 ‘60세’라는 인사 기준을 그대로 적용하는 것도, 불과 1년 만에 없던 원칙으로 만드는 것도 모두를 납득시키긴 어려울 것입니다.

삼성전자는 억울할 수도 있습니다. 민간 기업의 인사야 자체적으로 결정할 문제고, 공무원의 퇴직 연한도 60세라는 것을 감안하면 60세를 기준 삼은 게 결코 엄격한 잣대는 아니라고 항변할지 모릅니다. “개개인의 고과를 바탕으로 평가하는 것보다는 60세라는 정량적 기준이 더 공정한 게 아니냐”는 의견도 있습니다.

하지만 우리나라에서 삼성전자라는 기업이 갖는 영향력을 생각하면 “60세가 넘으면 떠나야 한다”는 식의 사고는 신중할 필요가 있습니다. 벌써 삼성전자 발(發) 세대교체 바람이 다른 그룹으로도 확산할 것이란 전망이 나옵니다. 인사에서 개개인의 능력이나 실적보다 회사의 명분이 앞서서는 안 될 것입니다. 취업준비생을 비롯한 많은 이들이 ‘그래도 삼성은 공정하다’고 믿고 있으니까요.

이서희 기자 shlee@hankookilbo.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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