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35> 작곡가 윤상의 '연주가 반젤리스'

윤상의 서울 강남구 역삼동의 작업실엔 신시사이저 등 전자악기와 전자음악 관련 장비들이 가득하다. 평소에도 가방에 휴대용 전자악기를 갖고 다니며 떠오르는 멜로디를 찍는다. 오드뮤직 제공
드라마 '청춘의 덫' 음악에 충격
알고 보니 반젤리스의 연주곡
전자악기 환상 품게 된 계기
대학에 가 중고 신시사이저 구매
낮엔 밴드 생활하고 밤엔 곡 써
전자악기 아니면 작곡가 못 됐을 것

희한하게 록 음악보단 팝송에 끌렸어. 초등학생 땐 스웨덴 혼성그룹 아바를 좋아했고. 라디오를 자주 들었어. 이탈리아 칸초네가 되게 많이 나왔지. ‘유로비전 송 콘테스트’도 녹화방송으로 텔레비전에 소개돼 영ㆍ미 뿐 아니라 유럽 음악을 접할 기회가 많았어. 음악은 좋아했는데, 아주 어려선 악기 배우는 걸 싫어했나 봐. 기억은 안 나는데 어머니께서 말씀하시길, 피아노학원을 보냈더니 이틀 만에 도망 나왔대. 선생님 무섭다고. 그때는 피아노학원에서 연습 안 해오고 잘 못 치면 자로 손 때리고 그랬다고 하잖아.

초등학교 4학년 때인가. 이효춘씨 나온 드라마 ‘청춘의 덫’(1978)을 보다 음악적으로 큰 충격을 받았어. 김수현 선생님(작가) 작품이었는데, 드라마 배경 음악으로 테너 노래 뒤 현악이 나오는 데 정말 멜로디가 아름답더라고. 오케스트라 연주는 아닌 것 같은데 현악 소리를 내는 게 신기했어. 처음엔 곡 이름을 몰랐다가 나중에 수소문으로 알게 됐지.

그리스 출신 신시사이저 연주자인 반젤리스의 ‘헤븐 앤드 헬’(1975)였어. ‘빽판(정식 레코드판의 불법 복사판)’으로 앨범 전체를 듣고는 완전히 기절하는 줄 알았어. ‘헤븐 앤드 헬 1, 2’란 주제로 꾸려진 50여 분짜리 연주곡이었거든. 어린 나이에도 ‘어떻게 하면 이런 소리가 나지?’ ‘이게 뭐지?’란 생각이 끊이지 않았던 것 같아. 아… 그 기분을 말로 표현하려니 참 어렵네.

반젤리스가 낸 소리의 출처를 알게 된 건 중학교 1학년 때였어. KBS 시사교양프로그램 ‘세계는 지금’에서 신시사이저를 소개해줬거든. 홀리듯 봤지. ‘저게 있으면 악기 잘 못 다뤄도 음악 할 수 있대’란 환상을 품었고. 물론 잘못된 환상이었지. 신시사이저는 전자피아노로 여러 악기 소리를 내는 거고, 컴퓨터로 소리를 만들려면 시퀀서(내장되거나 자신이 만든 음원을 이용해 리듬을 만드는 전자기기)가 필요하니까. 음악은 되게 하고 싶은데, 기타도 잘 못 칠 때였거든.

반젤리스를 계기로 전자악기에 관심이 생겼어. 대학교 입학해 중고로 신시사이저를 처음 샀지. 1987년이었어. 카시오 CZ5000 모델이었고, 50만원이었지. 낙원상가에서 샀어. 큰 돈이었고.

어떻게 샀냐고? 악기 살 돈 구하느라 별 아르바이트 다 했어. 결혼식에서 연주 아르바이트를 해 돈을 모았지. 다들 내가 꽃길만 걸으며 음악했을 거로 생각하는 데 착각이야. 내가 힙합을 안 해서 표현을 안 할 뿐이지, 굉장히 어렵게 음악을 했거든.

80년대 초반엔 신시사이저 한 대에 800만원 정도 했어. 집 한 채 값이었을 걸? 전자음악했던 사람들이 ‘금수저구나’라고 생각했지. 처음엔 사고 팔기를 반복해 악기를 업그레이드했어. 돈 모이면 기존 악기 내다 팔아 받은 돈을 보태 좀 더 좋은 모델 사고. 5~6번 반복하다 어느 순간부터 안 팔았어. 가진 악기 중 제일 오래된 게 11년 전 산 걸 거야. 내 꿈이 전자악기를 한 곳에 모아 두고 보는 거야.

신시사이저 사고선 사용법을 독학했어. 처음엔 코미디가 따로 없었지. 생각해봐. 인터넷도 없을 때고 설명서도 영어로 돼 있었으니까. 전자악기 사용법을 알려주는 책도 거의 없을 때지. 신시사이저랑 드럼 소리랑 섞어 보려고 아는 연주자랑 머리 맞대고 고민했는데, 말도 마. 두 악기를 어떻게 (컴퓨터에) 연결해야 할지 몰라 ‘하나, 둘, 셋’ 하며 같이 연주 시작해서 녹음했다니까. 어이없지?

낙원상가에 신시사이저 좀 안 다는 사람 있으면 찾아가 사용법 물어보고 그랬어. 대부분이 원하는 대답을 안 해줬지. 정보가 워낙 귀하던 때잖아. 상대방이 아는 거 하나 풀면, 그때 서야 자기도 아는 거 털고 그랬던 시절이니까. 그게 한이 돼 내가 지금 (성신여대 실용음악과에서) 아이들 가르치고 있는 거라니까, 하하하.

신시사이저를 사고 처음 만든 곡이 ‘추억 속의 그대’(1988)야. 드라마 ‘호랑이 선생님’에서 아역으로 나왔던 고 황치훈씨가 불렀던 노래인데 기억 나?

전자 악기 다루는 데 워낙 고생을 많이 해 (신)해철이랑도 금세 친해졌던 추억도 있어. 해철이나 나나 음악을 만드는 가장 중요한 수단이 시퀀서였으니까. 그래서 ‘아예 전자악기로만 음악 해보자’해서 프로젝트팀 노땐스를 만들었지. 어디인지는 생각 안 나는데 펜션 빌려서 3주 동안 합숙해 앨범 만들었어. 1996년에 1집을 냈는데 상업적으로 결국 실패했지. 지금은 (노땐스의) 카세트 테이프가 몇만 원씩에 팔린다고 하지만 말이야.

전자악기가 없었다면 작곡가는 못 됐을 거야. 1집 ‘윤상’(1990) 들어 봐. 바이올린 빼고 다 전자 악기로 만든 소리야. 난 특출 나게 악기 연주를 잘한 게 아니야. 물론 1988년 김완선의 백밴드에서 베이스 연주했지만, 내게 밴드는 본업은 아니었어. 낮에 밴드 생활하고 밤엔 집에서 전자악기로 곡을 썼지. 베이시스트로 주목 받은 것도 연주 실력이 좋아서라기보다는 (주법) 스타일이 좋아서였어.

물론 기타도 치고 건반으로 곡도 만들어. 그래도 내게 음악적인 심장은 전자악기야. 기타리스트 손무현 알지? 손무현도 내가 전자음악 하는 거 보고 작곡에 뛰어들었어. ‘피아노도 잘 못 치는 애(윤상)도 작곡하는 데 나도 해볼까’해서 시작했다고 하더라고. 내가 강수지의 ‘보라빛 향기’(1990) 내자 마자 같은 해 손무현이 전자악기로 ‘삐에로는 우릴 보고 웃지’를 만들어 띄웠지. 김완선이 불러 히트했잖아.

요즘 전자음악이 유행이야. 그런데 적지 않은 사람들이 전자 악기 다루는 걸 두려워하더라. 사실 알고 보면 TV 전원 켜는 것만큼 다루기 쉬워. 그래서 내가 운영하는 스튜디오(디지털리안)에서 동영상을 만들어 전자악기 사용법을 알려줄까 해. 10~15분 분량으로 컴퓨터 없이 전자음악 만드는 법을 소개해주는 거지.

전자악기 20~30만원이면 사거든. 중고는 더 싸. 걸그룹 러블리즈 노래 ‘아츄’ 등 아이돌에 줄 노래 만들 때도 차로 이동하면서 전자악기로 생각나는 멜로디 찍어서 기본 작업하고 그랬거든. EDM(전자댄스음악)외 감상용 전자음악(엠비언트 ㆍAmbient)도 직접 만들고 일상에서 자유롭게 즐기면서 말이야…

<가수 겸 작곡가 윤상의 말을 1인칭 시점으로 재구성했습니다.>

정리=양승준 기자 comeon@hankookilbo.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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