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요리 올림픽’에 도전한 한국의 영 셰프들
6일 대만 타이페이에서 열린 ‘산펠레그리노 영 셰프’ 동북아 결선 참가자와 심사위원. 왼쪽 위부터 마카오 ‘샌즈 코타이 센트럴’의 잭 퐁, 한국 ‘도마’ 김봉수, 한국 ‘다이닝 노을’ 박종윤, 대만 ‘메리어트 타이페이’ 야오휘린, 홍콩 ‘디 오션’ 노엘 버라드, 홍콩 ‘더 어퍼 하우스’ 에릭 래티, 한국 ‘에스트레야’ 배종훈, 한국 ‘밍글스’ 강민성, 대만 ‘VG 더 시푸드 바’ 쯔양천 영 셰프. 아랫줄은 심사위원.

“세계의 벽은 높았다.” 이 무슨 ‘응답하라 1988’인지. 쌍팔년도 신문에서 흔히 볼 수 있었던 그 관용구가 장탄식으로 새어 나왔다.

한국인 요리사 4명이 ‘요리 올림픽’에 출전했다. 그리고 전 세계 결선 대회 진출 자격 획득에 실패했다. 겉으로 보자면 그렇다. 그러나 그것이 전부는 아니다.

지난 6일 대만 타이페이에서 ‘2018 산펠레그리노 영 셰프 경연 대회(산펠레그리노 영 셰프)’ 동북아 결승이 열렸다. 전 세계를 대상으로 하는 요리 올림픽이다. 대회의 요지는 간단하다. 만 30세 이하, 1년 이상 레스토랑 주방에서 ‘셰프 디 파르티’(Chef de Partieㆍ주방의 여러 섹션 중 하나를 책임지는 요리사) 직무에 종사한 경험이 있는 요리사는 누구라도 지원할 수 있다. 세계 지도를 21개 구획으로 나눠 지역별 10명의 지역 결승 진출자를 정한다. 서류 심사는 이탈리아 유력한 요리학교인 알마(ALMA)가 맡는다. 올 2월부터 석 달간 참가 접수를 받았고, 90여개국에서 수천 명의 지원자가 몰렸다. 올해로 세 번째 대회다.

지역 결승 진출자 10명이 발표된 것은 7월이었다. 한국은 대만, 홍콩, 마카오와 함께 동북아 지역으로 묶였다. 중국과 일본은 미식 시장이 크다 보니 각각 하나의 지역으로 분리됐다. 세계 미식시장에서 한식의 영향력이 커지는 것은 잘 알려진 사실이다. 이는 동북아 결승 진출자 10명 중 5명이 한국인이라는 데서 또 한번 증명됐다. 최진원씨(밍글스)는 개인 사정으로 대회 직전에 기권을 선언, 한국인 4명이 지역 결승대회에 참가했다.

심사위원 만장일치로 우승자로 선정된 대만 쯔양천 영 셰프의 요리. 오리 가슴부위를 주 재료로 고구마, 율무, 파 등 대만 음식에서 즐겨 쓰이는 재료를 사용했다. 심사위원들은 대만의 맛과 전통적인 재료를 혼합해 단순하면서도 숙련된 요리 기법을 선보였다고 평가했다.
실화판 ‘마스터 셰프’

‘마스터 셰프’라는 방송 프로그램이 있다. 영국에서 시작돼 세계 곳곳에서 라이선스로 제작된 인기 시리즈다. TV 속 인물들이 거액의 상금과 약속된 스타덤을 향해 꿈과 재능을 펼쳐 보이는 이 리얼리티 프로그램은 한국에서 ‘마스터 셰프 코리아’라는 이름으로 방송돼 인기를 끌었다. 서울 연희동에서 레스토랑 ‘알테르 에고’를 운영하며 방송 활동을 하는 박준우 셰프가 이 프로그램을 통해 대중에 발굴된 대표적 인물이다.

‘마스터 셰프 코리아’는 ‘3억원이 걸린 경연대회’, 즉 ‘자영업자로 인생 시즌2를 시작할 기회’라는 실화를 드라마틱하게 풀어냈다. 산펠레그리노 영 셰프는 맨살 그대로의 실화 그 자체다. 메이크업도, 카메라와 조명도 없고 상금조차 한 푼 없다. 결승에서 우승한 영 셰프는 3억원보다 훨씬 값어치 높은 상을 받는다. 일약 월드 스타가 되는 것. 쉽게 말하자면, 요리사 초년생이 책에서나 봤을 법한 스타 셰프들이 축하 악수를 먼저 건네는 존재가 되는 것. 산펠레그리노가 관계를 맺고 있는 수많은 스타 셰프들, 레스토랑이 그의 이름을 알게 되는 것. 우승자는 세계 각국을 방문하고, 스포트라이트를 받는다. 대개의 요리사들은 지난한 사다리를 기어오를 수밖에 없고, 썩은 사다리를 타다 떨어지기도 하며, 유리 천장을 만나 오도가도 못하게 되기도 한다. 대부분의 요리사가 무명으로 살아가는 것이 냉정한 현실이다. 산펠레그리노 영 셰프가 주는 것은 돈으로 환산할 수 없는 신분 상승이다. 그렇기에 한국에서도 미래의 스타 셰프가 되고자 하는 많은 젊은 요리사가 지원했다.

동북아 결승에서 영광은 한국에 임하지 않았다. 대만 출신의 젊은 요리사 쯔양천에게 돌아갔다. 쯔양천은 내년 5월 이탈리아 밀라노에서 열리는 결승에 진출해 세계 21개 지역 우승자들과 재능 그리고 실력을 겨루게 된다. 내년 5월 새로운 스타 셰프가 탄생한다.

그러나 우리가 잊지 않아야 할 4명의 이야기가 남았다. 동북아 결승에 출전한 한국 영 셰프들을 동행 취재했다.

타이페이 재래시장에서 현지 식재료를 구입하는 강민성 영 셰프(오른쪽에서 두번째).
타이페이 재래 시장에서 주재료인 게를 고르고 있는 배종훈 영 셰프.
대만에서 펼쳐진 젊은 요리사들의 경연

강민성(27) 영 셰프는 ‘미쉐린 가이드 서울편 2017ㆍ2018’ 1스타와 ‘아시아 50 베스트 레스토랑 2017’ 15위 타이틀을 가진 어마어마한 레스토랑 ‘밍글스’에서 셰프 디 파르티로 일하고 있다. 김봉수(29) 영 셰프는 지원 당시 ‘한국술집 21세기 서울’ 헤드 셰프를 거쳐 현재 우드 그릴 레스토랑 ‘도마’ 헤드 셰프로 자리를 옮겼다. 둘은 셰프 커뮤니티에서 어느 정도 알려져 있는데 반해, 나머지 둘은 무명의 도전자다. 박종윤(29) 영 셰프는 경기 파주 ‘다이닝 노을’에서 수셰프로 일하고 있다. 배종훈(26) 영 셰프는 광주 ‘에스트레야’라는 레스토랑에서 얼마 전까지 셰프 디 파르티로 일했다.

올림픽 스타일로 말하자면, 모두에게 실패의 이유는 충분히 있었다. 강민성은 준비한 재료 대부분을 못 쓰게 돼 새로 준비해야 했고, 김봉수는 주 재료인 소 심장을 타이페이에서 구하는 것부터가 ‘미션 임파서블’이었다. 박종윤은 대회 전날 가벼운 감기에 걸려 컨디션이 좋지 않았고, 배종훈은 비행기 탑승권에 문제가 생겨 어쩐지 시작부터 불길했다.

대회 일정은 매우 압축적이었다. 4일 오후 타이페이에 도착해 잠시 휴식한 영 셰프들은 다음 날 새벽 7시부터 폭풍 같은 일정에 올라탔다. 이 대회의 의미가 승자를 가리는 요리 대회 이상이라는 것을 일깨운 것은 첫 공식 일정인 타이페이 재래 시장 투어였다. 대만은 새로운 미식의 도시로 급부상하고 있는데, ‘아시아50베스트 레스토랑 2017’ 43위에 선정된 ‘무메’의 리치 린 셰프가 직접 나와 시장을 안내했다. 스마트폰 화면에서나 보던 인물이 눈 앞에 나타나 식재료 구매를 도와주는 실화 같지 않은 상황에 홍콩, 마카오, 대만, 한국에서 온 청년 9명은 꿈꾸는 듯 멍해졌다가 이내 눈을 부릅뜨고 시장을 돌며 필요한 식재료를 골라 내기 시작했다. 한국과 같은 듯 다른 재료가 많아 쉽지 않아 보였지만, 든든한 실력을 갖춘 요리사들은 “사람 사는 곳이라 다 구해진다”며 만족스럽게 준비를 마쳤다. 타이페이색을 진하게 느낄 수 있는 서민적 식당에서 점심 식사를 하고 넘어간 곳은 타이페이 교외의 씽우대학교. 요리 학교 시설이 갖춰져 있는 곳이다. 주방 설비를 점검하고 요리에 앞선 모든 준비를 마치는 것이 이날의 마지막 일정이었다.

재료를 손질하는 박종윤(오른쪽) 영 셰프.

다음날 대회장에서 만난 영 셰프들은 각각이 하나의 레스토랑을 이뤘다. 무명과 유명의 셰프를 가르는 것은 재능이나 실력이 아닌 명성뿐이던가. 각자가 하나의 철학이고 가능성임을 스스로 증명하고 있었다. 심사위원의 면면도 대단했다. 인도네시아 발리 ‘로커보어’의 레이 아드리안시아 셰프, 필리핀 마닐라 ‘치보’의 마가리타 포레스 셰프, 싱가포르 소재 ‘레스토랑 앙드레’의 앙드레 치앙 셰프, 홍콩의 ‘8½ 오토 에 메조-봄바나’의 움베르토 봄바나 셰프, 그리고 싱가포르 ‘코너 하우스’의 제이슨 탄 셰프가 영 셰프들을 심사하기 위해 타이베이까지 날아왔다. 모두 ‘아시아 50 베스트 레스토랑’이나 ‘월드 50 베스트 레스토랑’에서 높은 순위를 차지한 엄청난 셰프들이다.

심사위원들은 전날 리치 셰프가 했던 것처럼 긴장 반, 조급함 반, 즐거움 약간으로 치열하게 요리를 해 나가는 영 셰프들의 주방을 돌며 요리 과정을 지켜보고, 다정한 조언을 아끼지 않았다. 9개의 주방이 동시에 돌아가는 대회 현장은 문자 그대로 후끈하게 달아올랐다. 가을 날씨에 접어든 대만에 다시 여름이 시작된 듯했다. 분주하고 열정적인, 그리고 절박한 시간은 빠르게 흘렀다.

심사위원들에게 조리 과정을 설명하는 김봉수(왼쪽) 영 셰프.

영 셰프들은 요리를 마치고 10여분간 요리를 설명하고, 심사위원들의 날카로운 질문을 받아 내는 프리젠테이션과 시식 심사를 받았다. 조리 중 심사위원들이 보인 다정함과 거의 극단적으로 다른, 압박 면접에 가까운 심사였다. 한국인 영 셰프들은 각각 해외 경험을 거쳐 영어를 술술 구사했지만 압박도가 높아 말이 꼬였다. 심사위원실을 나온 영 셰프들은 스스로 무슨 말을 하고 나왔는지 기억 못할 정도였다. 판단 기준은 서류 심사 때와 마찬가지로 재료, 기술, 창의성, 예술성, 메시지 다섯 항목. 심사위원 5명이 의견을 교환하며 각 항목에 소신껏 점수를 매기고, 총점이 가장 높은 참가자가 우승자로 선정됐다.

그가 바로 쯔양천이다. 동북아 최고의 스타가 된 그는 심사위원 중 그를 위한 멘토로 선정된 움베르토 봄바나 셰프와 함께 세계 결승 준비를 해 나간다. 준비된 완성도를 펼쳐 보인 그의 노력을 이해하기에, 나머지 여덟 영 셰프들은 우승자 발표 순간 진심 어린 축하를 건넸다. 사흘을 같이 보내는 동안 젊은 요리사들 사이 우정이 자라났다. 참가자들은 버스에서 이동하는 동안, 주방 준비를 하는 동안 각자 ‘꿀팁’과 아이디어를 주고받으며 서로를 도왔다. 특히 한국 영 셰프 4명은 재료를 나눠 쓰고 조리 방법에 대한 조언을 아끼지 않는 등 의젓한 우정을 과시했다.

한국 영 셰프들. 왼쪽부터 김봉수, 박종윤, 배종훈, 강민성.
그들의 이름, 강민성 김봉수 박종윤 배종훈

파인다이닝의 주방에서 도드라져 보이는 것은 어디까지나 단 한 명의 ‘셰프’다. 그 아래 수셰프, 셰프 드 파티, 코미 셰프는 어디까지나 셰프의 부속품이나 아바타로 잊혀지기 쉽다. 셰프가 된다고 해서 모두가 스타 셰프가 될 수 있는 것도 아니다. 강렬한 존재 증명을 끊임없이 하지 못한다면 금세 잊혀지는 요리사가 되어 사라진다. 그 누구도 처음부터 스타 셰프일 수 없고, 그들이 겪어 온 길 뒤에는 이 수많은 영 셰프들이 있다.

강민성 영 셰프가 선보인 우설 찜과 당근, 제철 뿌리채소.

강민성은 “부산물로 취급되는 부위인 우설을 사용해 한국의 맛을 선보이고자 했다. 현대적 프렌치 조리 기법을 사용해 소고기를 자주, 많이 접할 수 없었던 한국의 과거의 맛을 접시에 담아냈다”고 말했다. 심사 중 가장 혹독한 심사평으로 영 셰프들을 ‘멘붕’에 빠뜨린 치앙 셰프는 인터뷰에서 이렇게 말했다. “아주 맛있었다. 무척 완성도 높은 요리였다. 숙련된 기술을 갖고 있는 요리사라서 장래가 매우 기대된다.”

0김봉수 영 셰프의 소 염통 쌈.

김봉수는 “잘 쓰지 않는 재료인 소의 심장을 이용한 요리를 준비했다. 전 세계 곳곳에 무명으로 일하고 있는 영 셰프를 발굴하는 이 대회의 취지에 부합한다고 생각했기 때문이다”라고 말했다. 치앙 셰프는 그에 대해 이렇게 말했다. “요리 경연대회에서 돋보일 수 있는 연출, 그리고 한국적 요소도 잘 보여 줬다. 스스로 즐기면서 요리하면서 주목을 끌고 고객을 즐겁게 해 주는 방법을 잘 알고 있는 영특한 요리사다. 진중하게 해 나가다 보면 더욱 큰 존재가 될 것으로 본다.”

박종윤 영 셰프의 갈비찜.

박종윤은 이렇게 말했다. “지역 결승 진출자로 선정된 것만으로 이제까지 힘들게 해 왔던 요리사로서의 경험과 실력을 인정받은 것 같다.” 치앙 셰프는 박종윤 영 셰프에 대해 “한국과 대만의 재료가 달라 아쉬운 점이 있었을 것이다. 매우 잘 짜인 음식을 선보였다. 또한 조리 과정에서도 망설임 없이 해 나가고 있어 자신이 하는 일에 대해 완벽하게 이해하고 있다는 인상을 받았다. 가장 많은 가능성을 가졌다”고 말했다.

배종훈 영 셰프의 토란 미소 게살 샐러드, 그리고 사과 다시.

배종훈은 “앞으로 진로에 대해 고민이 많은 시기에 대회에 참가했다. 다른 영 셰프와 셰프들을 만나 이야기 나누는 동안 장래에 대한 결심을 자연스럽게 할 수 있었다”며 “광주를 떠나 서울의 파인다이닝이나 앙드레 치앙의 레스토랑에서 일하고 싶다”고 말했다. 치앙 셰프는 “단순하고 깔끔하지만 섬세하고 아름다운 요리였다. 특히 사과주스로 만든 ‘다시’는 아주 훌륭했다. 다음에도 참가한다면 더 치열하게 자신의 실력을 남김 없이 보여 주길 바란다”고 말했다.

아무도 아니었던 그들이 자신의 특별함을 스스로 인정하게 하는 기회. 그들의 우상일 훌쩍 큰 존재가 가장 작은 존재로 여겼던 자신을 빛내 주는 뭉클한 경험. 대회는 무명의 젊은 요리사들에게 값진 경험을 주었다. 귀중하게 대해진 경험은 그들에게 성장 촉진제가 될 것이다. 세계의 벽은 높지 않았다. 고작 한 뼘 차이에 불과했다. 그 얕은 벽 앞에 주저앉는 청춘이란 어디에도 없었다. 한 영 셰프는 “죄송해요. 우리가 우승을 못해서 기사 쓰실 게 없어서 어떡해요”라며 괜한 걱정을 하기도 했다. 어른은 청춘이 성장하는 순간을 목격한 것만으로 괜찮다. 인생이란 이렇듯 새로운 세상을 경험하는 동안 바뀌곤 한다. 이 젊은 요리사들의 하찮아 보일지 모르는 며칠이 만들어 낸 대단한 성공은 기억할 만하다. 아무도 아닌 그들이 무언가가 되어, 훌쩍 자라나 밤 깊은 인천공항에 착륙했다. 그리고 그들이 돌아간 이제부터의 일상은 달라진 미래의 시작이다.타이베이=이해림 객원기자

승을 거머쥔 쯔양천(오른쪽)과 산펠레그리노 아시아 매니저 밋치 웰레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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