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867년 오늘 도쿠가와 막부가 메이지 천황에게 대권을 반납했다. 그로써 메이지 유신이 가능해졌다. wikimedia

‘대정봉환(大政奉還)’은 일본의 도쿠가와 막부가 천황에게서 위임받은 통치권한(대정)을 되돌려 준다(봉환)는 의미다. 막부가 1867년 11월 9일 정권 반납을 상주했고, 갓 즉위한 메이지 천황이 그 안을 수용했다. 1603년 3월 도쿠가와 이에야스의 전국(戰國)) 제패로 수립돼 260여 년간 일본을 실질적으로 통치한 에도 막부가 그렇게 추락, 천황 중심 왕정체제가 복원됐다.

미국 영국 러시아 등 제국 열강이 터진 봇물의 기세로 동아시아로 몰려들던 때였다. 강성한 지방 번주들의 등쌀에 근근이 견디던 노쇠한 막부는 그 외풍을 감당할 힘이 없었다. 1854년 미일화친조약과 4년 뒤의 5개국(미, 영, 러, 화, 프) 통상조약은 막부의 패가 보잘것없다는 걸 드러낸 결정적 사건이었다. 굴욕적 조건의 개항에 지방 번주들이 더 드세게 반발했고, 항구를 끼고 있어 개항의 타격을 직접적으로 입게 된 남서쪽 번들(사쓰마, 조슈, 도사)의 저항이 특히 강했다. 그들은 ‘공무합체(公武合體)’, 즉 조정(公家)과 막부(武家)의 이원체제를 일원화해 외교적 잡음을 최소화하고 외세에 대응하자는 기치를 들었다. 한마디로 막부 타도ㆍ존황론이었다.

궁지에 몰린 막부로서도 딱히 마다할 일이 아니었다. 책임을 전가할 수 있고, 차제에 막부의 위신을 회복해 내치의 질서를 다잡을 수 있는 기회라고 여겼다. 형식상 대권을 넘겨 주더라도 실질적 권한을 막부가 쥐면 된다는 계산이었던 셈이다. 막부는 행정부 격인 공부(公府)의 수장을 도쿠가와 당주(마지막 쇼군 요시노부)가 쥐고 쇼군(將軍)의 지위도 유지하려 했다. 하지만 존황파의 반발에 에도 막부의 마지막 쇼군 요시노부는 보름여 뒤 쇼군 지위를 반납해야 했다. 두 진영은 68년 내전으로 맞붙었고, 이듬해 막부는 패퇴했다.

대정봉환은 사실상 막부체제의 종막과 메이지 유신의 시작을 알리는 신호탄이었다. 삿초(사쓰마ㆍ조슈) 동맹이 주도한 유신은 정부 직제와 행정구역 개편을 시작으로 학제와 징병제, 토지세, 신분제 개혁에서부터 우편, 철도, 전신망 정비를 넘어 엔화 도입(1871), 중앙은행인 일본은행 설립(1882), 제국헌법 공포(1889)까지 거침없이 나아갔다. 일본은 대정봉환 이후 불과 20여년 만에 중세 막부체제에서 입헌군주국가로 변신했다.

최윤필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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