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부석사 소수서원 무섬마을…초등 아이와 가을여행

입력
2017.11.08 14: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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문의 : 안녕하세요, 원근씨. 초등학교 3학년과 5학년 아이를 키우고 있는 엄마입니다. 좀 늦은 감이 있지만 아이들과 단풍여행을 가려고 합니다. 그냥 아름다운 곳도 좋지만 아이들에게도 좋은 경험이 될 수 있는 여행지를 택하고 싶습니다. 도움이 될 만한 여행 좀 추천해주세요. 단풍이 예쁘면 더욱 좋겠네요.

단풍이 곱게 물든 부석사
단풍이 곱게 물든 부석사

답변 : 글만 봐도 아이들을 무척이나 사랑하시는 마음이 느껴지네요. 아이들과 단풍도 즐기고 교육에도 도움이 될만한 여행지를 찾으신다니 경북 영주를 추천해드립니다. 영주는 소백산 자락에 있는 곳으로 역사와 자연이 살아 숨쉬는 고장입니다.

우선 많은 사람들이 알고 있는 부석사를 추천해드려요. 부석사는 일반 사찰과 다른 목적으로 지어졌습니다. 나라를 지키기 위해 만들어진 호국사찰이죠. 신라시대 때 당나라가 침공을 한다는 소식을 들은 왕이 의상대사에게 나라를 지킬 수 있는 사찰을 지으라는 명을 내려 지었답니다.

전해오는 설화를 요약하면 이렇습니다. 의상대사가 당나라에 유학할 때 신라를 공격한다는 소문을 들었답니다. 이 소식을 듣고 신라로 돌아오는 길에 양주성의 어느 신도 집에 머물렀답니다. 집주인의 딸인 선묘낭자가 의상을 사모했지만 그는 본체만체 가버렸답니다. 뒤늦게 이 사실을 안 선묘가 미리 준비한 옷과 여러 용품을 바다에 던지며 의상이 탄 배에 닿기를 기도하고, 용으로 변해서 의상을 모시고 불도를 이루게 해달라고 주문을 외웠다고 합니다.

신라에 당도해 왕의 명을 받은 의상은 지금의 부석사 터에 사찰을 지어야겠다고 생각했으나 산적이 너무 많았답니다. 산적들이 의상을 죽이려고 하는데, 이때 용이 나타나 바람을 일으켜 주변의 돌들이 전부 공중에 떴다고 합니다. 그 기운에 산적들이 물러나고 사찰을 지을 수 있게 됐답니다. 그래서 절 이름이 뜬 돌을 의미하는 부석사(浮石寺)가 됐다는 설화가 전합니다. 지금도 절에는 부석(浮石)이라고 적힌 돌이 있고, 무량수전 옆에는 선묘낭자를 모시고 있답니다. 선묘낭자를 지키는 용(선묘룡)은 석등 밑에 묻혀서 부석사의 수호신처럼 되었다고 합니다.

부석사 입구의 은행나무길.
부석사 입구의 은행나무길.
소백산 자락에 아늑한 부석사 전경.
소백산 자락에 아늑한 부석사 전경.

부석사로 들어가는 입구는 모두 은행나무입니다. 지금쯤이면 노랗게 물든 단풍이 장관을 이룰 듯합니다. 주차장에서 매표소, 매표소에서 회전문까지 가는 길의 은행나무길이 정말 아름답습니다. 안동 봉정사 극락전의 실체가 밝혀지기 전까지 부석사 무량수전은 국내에서 가장 오래된 목조건축물로 알려져 왔습니다. 무량수전(국보 제18호)은 조선 광해군 때 단청을 했는데, 소조여래좌상(국보 제45호)을 모신 곳이기도 합니다. 특이하게도 건물은 남향인데 불상은 동향입니다. 무량수전 배흘림 기둥에 기대 바라보는 풍광은 왠지 가슴을 쿵 치는 듯한 감동을 줍니다. 유홍준의 ‘나의 문화유산답사기’ 표지에도 등장한 이곳에서 아이들과 기념사진 찍는 거 있지 마시고요.

무량수전 맞은편 누각은 안양루입니다. 그 밑을 통과해야만 무량수전으로 들어서게 되는데, ‘안양’은 극락을 뜻하는 말로 극락의 문을 지나 무량수전으로 간다고 생각하시면 좋을 거 같습니다.

옛 향기가 묻어나는 소수서원 건축물.
옛 향기가 묻어나는 소수서원 건축물.
소수서원의 처음 이름은 백운동서원이었다.
소수서원의 처음 이름은 백운동서원이었다.
청다리 인근 물빛이 푸르다.
청다리 인근 물빛이 푸르다.

다음은 소수서원을 추천해드리고 싶습니다. 소수서원은 우리나라 최초의 서원인데, 지금의 대학과 같다고 생각하시면 될 거 같습니다.

예전 어머니에게 ‘나 어디서 나왔어?’라고 물어보면, ‘다리 밑에서 주워왔어’라고 하신 말들 기억하시죠? 그 유래가 바로 소수서원 인근에 있는 ‘청다리’입니다. 소수서원에 입학하기 위해 전국 각지의 유생들이 이 근처에서 하숙을 많이 했다고 합니다. 한번에 붙는 인재도 있었지만 매년 낙방하는 유생들도 많았겠지요. 예나 지금이나 마찬가지일 테니까요. 그 유생들 중 동네 아낙과 정분이 난 사람도 많았다고 합니다. 그 중 자식까지 낳는 한 유생이 고향으로 내려오라는 부모님의 명을 받고 어쩔 수 없이 아이도 데리고 갔다고 합니다. 당연히 자초지종을 묻는 부모님께 유생은 ‘공부를 하다가 달밤에 청다리를 지나는데 아이가 울고 있길래 다리 밑에서 주워왔다’라고 답했답니다. 믿거나 말거나 입니다. 하하.

풍기군수 주세붕이 백운동서원을 세운 것은 1543년입니다. 이후 명종 5년(1550)에 ‘소수’라는 사액을 받고 소수서원으로 이름을 변경합니다. 미국 하버드 대학(1636년 설립)보다 100년 정도 앞선 교육기관이니 자부심을 가져도 될 거 같습니다. 성리학의 정통성뿐만 아니라 가람도 한국 건축물의 아름다움을 그대로 간직하고 있습니다. 대원군이 서원을 철폐할 때도 살아남아 옛 향기가 고스란히 느껴집니다.

무섬마을 외나무다리.
무섬마을 외나무다리.
무섬마을에서는 민박도 할 수 있다.
무섬마을에서는 민박도 할 수 있다.

마지막으로 영주에서 요즘 뜨고 있는 무섬마을로 가보시면 좋을 거 같습니다. 마을이 섬처럼 물길로 둘러싸여 있습니다. 안동 하회마을, 예천의 회룡포마을과 함께 대표적인 ‘물돌이’ 마을입니다.

튼튼한 교량으로 연결하기 전에는 마을 앞의 외나무다리로 건너편을 오갔는데, 그 외나무다리가 지금은 여행객에게 인기를 누리고 있는 곳입니다. 마을 안에서 민박도 가능하고 한옥체험도 할 수 있습니다. 양반과 평민이 같이 공부를 했던 곳이라니, 선비의 고장 영주를 가장 잘 볼 수 있는 마을이 아닌가 싶습니다. 이 정도면 가족과 추억도 쌓고 아이들의 기억에 남는 여행이 되지 않을까 생각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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