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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7 갈등리포트] 직업까지 잃으며 지킨 신념... “우리의 ‘양심’ 믿어주세요”

입력
2017.11.07 04:40
11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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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국민 인식 많이 변했지만…

‘양심적 병역거부 허용’ 찬성

매년 늘어나 작년 46% 기록해도

대법 무죄 판결은 아직까지 없어

#‘대체복무제’ 반대도 여전

“양심, 개인 가치관에 따라 달라져

단순 기피인지 따지는 일 불가능”

대체복무 땐 징병제 거부 우려도

#취업 등 사회장벽 높지만…

양심적 거부자 매년 500명 안팎

대부분 실형 선고 받고 차별받아

국방부 “대체복무 등 검토” 불구

정부 차원 논의 아직 없는 상황

양심적 병역거부로 지난 4월 1심에서 1년 6개월형을 선고 받은 시민활동가 홍정훈씨가 1일 서울 종로구 참여연대 본부에서 병역 기피자 정보 공개 관련 서류를 들여다보고 있다. 박미소 인턴기자
양심적 병역거부로 지난 4월 1심에서 1년 6개월형을 선고 받은 시민활동가 홍정훈씨가 1일 서울 종로구 참여연대 본부에서 병역 기피자 정보 공개 관련 서류를 들여다보고 있다. 박미소 인턴기자

종교나 신념 등의 이유로 병역을 거부하는 양심적 병역거부자들. 이들을 바라보는 시각에는 ‘양심’을 내세워, 힘든 군 생활을 피해가려는 것이 아닌가는 의심이 담겨 있는 것이 사실이다. 하지만 학교 정교사라는 공무원 직업까지 빼앗기며 ‘신념’을 지키는 사례를 보면, 누군가에게 양심적 병역거부는 인생을 건 무게인 것 또한 분명해 보인다.

경기 지역 초등학교 임용고시에 합격해 2002년부터 평택의 한 초교에서 교사로 일해왔던 김훈태(38)씨. 평소 비폭력ㆍ평화주의 사상을 공부하며 “전쟁이 결코 평화를 가져올 수는 없다”는 생각을 해 왔던 그는 2006년 통지된 입영일에 입소하지 않는 방식으로 병역을 거부했고, 재판부는 그 해 5월 1년 6개월의 실형을 선고했다. 김씨는 1년 3개월 간 복역한 후 2007년 7월 말 가석방 됐다. 초등학교 교사직을 잃었음은 물론이다.

이런 사례들이 해마다 쌓여가며, 10여 년 전 10명 중 1명만 양심적 병역거부 허용을 찬성했던 우리 국민은 지난해에는 10명 중 4명 이상이 찬성한 것으로 나타났다. 한쪽으로 기울었던 추가 이제 팽팽해진 것이다.

양심적 병역거부자들, 그들은 누구?

양심적 병역거부 사례는 매년 500명 안팎으로 꾸준히 나타나고 있다. 6일 박범계 더불어민주당 의원이 병무청에게 받은 자료에 따르면 2013년부터 올해 8월까지 입영ㆍ집총을 거부해 고발 당한 이들은 2,356명에 달한다. 병역 거부 이유로는 종교적 신념(2,341명)이 99.4%로 가장 큰 비중을 차지하고 있지만, 최근에는 반전ㆍ비폭력ㆍ평화주의 등의 개인 신념을 이유로 드는 이들도 적지 않다. 2013년 8명을 비롯해 2014년 1명, 2015년 3명, 2015년 2명, 올해 8월까지 1명 등 총 15명이 ‘기타 개인 신념’을 입영ㆍ집총 거부의 이유로 들었다. 현재 시민운동가로 활동 중인 홍정훈(27)씨도 이들 중 하나다. 음악을 전공하면서 예술가의 꿈을 키워온 그는 “군대가 다양성을 인정할 수 없는 사회”라는 점을 이유로 2015년 병역을 거부하기로 결정했다.

양심적 병역 거부로 1년 6개월 징역형을 선고받은 홍정훈(28)씨가 지난 1일 서울 종로구 참여연대 본부에서 관련 판결문을 들어보이고 있다. 박미소 인턴기자
양심적 병역 거부로 1년 6개월 징역형을 선고받은 홍정훈(28)씨가 지난 1일 서울 종로구 참여연대 본부에서 관련 판결문을 들어보이고 있다. 박미소 인턴기자

어떤 이유로든 양심적 병역거부자들은 대부분 병역법 위반으로 실형을 선고 받는다. ‘현역입영 또는 소집 통지서를 받은 사람이 정당한 사유 없이 입영하지 않거나 소집에 응하지 않으면 3년 이하의 징역에 처한다’는 병역법 제88조 1항에 따른 것이다. 5년 간 입영ㆍ집총 거부자 중 71.9%인 1,693명은 이미 징역형을 선고 받았는데, 재판부는 통상 병역 면제 사유의 최소 기준인 1년 6개월 형을 내린다. 홍씨 역시 올해 4월 1심에서 징역 1년 6개월을 선고 받고 항소해 2심 재판을 기다리고 있다. 홍씨는 “대체로 양심적 병역거부자들은 항소를 하지 않는 반면에 저는 항소하는 길을 택했다”면서 “양심적 병역거부에 대한 시선이 긍정적으로 변화하는 중이고 새 정부 들어 대안 논의가 활발해졌다는 점에 기대를 걸었기 때문”이라고 설명했다.

이들은 기본적으로 공무직 등에 제약을 받는다. 김훈태씨는 출소 직후 생계를 잇기 위해 일자리 찾기에 나섰지만, 그를 정식 교사로는 물론 기간제 교사나 방과 후 수업 강사로도 받아주는 학교는 없었다. 국가공무원법에 따르면 금고 이상의 실형이 확정된 후 5년이 지나지 않은 자는 공무원으로 임용될 수 없다. 하지만 병역 기피에 민감한 한국 사회에서 '5년 후' 교단으로 복귀하기란 쉬운 일이 아니다. 방황하던 김씨는 출소 6개월 만인 2008년 초 경기의 한 대안학교에 자리를 잡았고 현재는 교육연구소인 슈타이너사상연구소의 대표직을 맡고 있다. 김씨는 “감옥에서 나왔을 때 갈 곳이 없다는 생각과 아이들 곁으로 다신 돌아갈 수 없다는 생각에 절망적으로 시간을 보냈다”며 “하지만 굳게 지켜온 신념을 저버릴 수는 없었던 만큼 양심적 병역거부 사실을 후회하지는 않는다”고 말했다.

종교적 신념으로 병역을 거부하고 실형을 선고 받아 지난 5월 출소한 백종건(33·사법연수원 40기) 변호사는 대한변호사협회로부터 재등록이 거부됐다. 변호사법은 금고 이상의 형을 선고받고 그 집행이 끝난 지 5년이 지나지 않은 사람은 변호사가 될 수 없다고 규정하고 있다.

민간업체 취업도 어려워, 사회적 장벽에 좌절 반복

김훈태씨처럼 학교 등 공공기관에서는 물론 대기업에서도 병역 기피를 민감한 문제로 받아들여 이들을 걸러내는 곳이 많다. 이에 대부분은 군 복무 여부를 묻지 않는 작은 기업에서 일하거나 소규모 자영업을 택하고 있다고 한다. 양심적 병역거부자 수백명의 변호를 맡아 온 오두진 변호사는 “일단 병역을 끝내지 않은 이들은 채용 대상에 포함하지 않는 경우가 많고, 특히 병역을 기피했다는 내용이 있으면 입사 서류에서부터 거르는 기업들이 있다”며 “양심적 병역거부자들은 이러한 취업 차별로 사회에 첫 발부터 내딛기 힘든 상황”이라고 말했다.

이런 와중에 양심적 병역거부에 대한 국민 의식은 지속적으로 변화하고 있다. 국가인권위원회(인권위)의 ‘2016 국민인권의식 조사’에 따르면, 2005년 10.2%에 불과했던 ‘양심적 병역거부 허용 찬성’ 의견은 2011년 33.3%로, 지난해에는 46.1%로 올랐다. 또 2004년부터 올해 9월까지 양심적 병역거부자에 대한 하급심 무죄 판결은 총 52건으로, 이중 절반이 넘는 35건이 올해에 집중되는 등 재판부의 인식도 달라지는 추세다. 병역을 이행하지 않아도 되는 정당한 사유에 해당한다는 것이다. 하지만 아직까지 대법원에서 무죄를 판결하는 경우는 나오지 않았다.

여전히 더 높은 반대 목소리, 정부 논의는 없어

여전히 더 많은 이들은 양심적 병역거부를 인정하고 대체복무제를 도입하는 데 큰 우려를 표명하고 있다. 유동열 자유민주연구원 원장은 “양심이라는 것은 그야말로 개인적 가치관에 따라 다를 수밖에 없는데, 실제 양심에 따라 병역을 거부하는 것인지 단순 기피인지를 따지는 일은 불가능할 것”이라고 말했다. 한반도 정세가 불안을 거듭하고 인구 감소로 병역 자원까지 부족해지는 상황에서 안보에 큰 위협이 될 수 있다는 게 대체복무제 도입을 반대하는 가장 큰 이유다.

국방부는 올해 기준 35만명 수준인 20세 남성 인구가 2022년 이후에는 22만∼25만명 수준으로 급감할 것으로 분석하고 있다. 특히 현재에도 2만6,000~2만8,000명 정도를 의무경찰ㆍ해양경찰ㆍ산업기능요원ㆍ전문연구요원 등 전환ㆍ대체복무 인력으로 각 분야에 지원하고 있는데, 이러한 지원 인력까지 고려하면 상비병력 규모는 2024년 49만3,000명, 2025년 46만8,000명 등 50만명을 밑돌 것으로 추산된다.

실제 대체복무를 인정할 경우 입영 대상자들이 대거 병역을 피하고 대체복무를 택할 공산이 크다는 우려가 나온다. ‘한반도 인권과 통일을 위한 변호사모임’의 양윤숙 변호사는 “독일 프리드리히 에베르트 재단의 보고서를 보면, 1979년 군 복무 대 대체복무 비율이 31% 대 33%였던 반면 2010년도에는 14% 대 32%로 크게 역전한 것으로 나타났다”며 “한국 안보현실에서 대체복무제를 도입하는 것은 위험한 입법 실험이 될 것”이라고 말했다.

국방부는 2007년 ‘병역 이행 관련 소수자의 사회복무제 편입 추진 방안’ (당시 현역 2배 수준인 36개월 대체복무제 도입 등)을 발표했지만, 반발이 거세자 이듬해인 2008년 12월 국민적 합의 부족을 이유로 이를 전면 보류했다. 올해 7월에는 인권위가 국방부 장관에게 양심적 병역거부자에 대한 대체복무제를 도입하라고 권고했고, 국방부가 곧장 “필요한 조치를 검토할 것”이라고 밝힌 뒤 아직 정부 차원의 논의는 없는 상황이다.

다수 징병제 국가들 중 일부도 이미 대체복무제를 함께 도입해 운영 중이다. 2012년을 기준으로 징병제를 유지하는 세계 83개국 중 31개국이 양심적 병역 거부권을 인정하고 있고, 대만과 독일, 러시아, 오스트리아, 이스라엘, 폴란드 등은 이들의 대체복무를 허용하고 있다. 우리나라 법무부는 올해 8월 12개 정부 부처 및 기관과의 협의를 통해 작성한 유엔 인권이사회 제3차 국가별 정례인권검토(UPR) 국가보고서를 유엔에 제출하면서 “(대체복무제의) 즉시 도입은 어렵지만 검토와 연구 후 안보 현실과 사회적 인식의 변화에 따라 대응할 계획”이라고 설명해 가능성을 어느 정도 열어둔 상태다.

신지후 기자 hoo@hankookilbo.com

세계병역거부자의 날인 지난 5월 15일 서울 광화문북측광장에서 국제엠네스티 한국지부 회원들이 '옥중 기자회견'을 하고 있다. 이날 회원들은 기자회견에서 정부가 양심에 따른 병역거부자의 처벌 중단과 대체복무제 도입을 요구했다. 류효진기자
세계병역거부자의 날인 지난 5월 15일 서울 광화문북측광장에서 국제엠네스티 한국지부 회원들이 '옥중 기자회견'을 하고 있다. 이날 회원들은 기자회견에서 정부가 양심에 따른 병역거부자의 처벌 중단과 대체복무제 도입을 요구했다. 류효진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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