행동하는 엄마들의 역사

2008년 광우병 사태 때 첫 등장
옥시ㆍ세월호 등 겪으며 결집력 더 세져
2014년 4월 세월호 희생자를 추모하기 위해 서울 강남역 일대에서 추모행진을 벌이고 있는 엄마들. 한국일보 자료사진

‘엄마’라는 정체성이 사회 문제에 목소리를 내는 주체로 뚜렷이 규정되기 시작한 것은 2008년 미국산 쇠고기 수입 반대 시위 때였다. 유모차를 끌고 광장에 나타난 젊은 엄마들은 시위현장에서 처음 보는 이례적 존재였다. 87년 6월 항쟁에 넥타이 부대가 있었다면 2008년엔 유모차 부대가 등장한 것이다. 이명박 정부의 미국산 쇠고기 수입 허용조치가 대규모 촛불시위로 번진 데에는 다양한 정치적 요소가 작용했지만, 젊은 엄마들의 시위대 합류는 그보다는 자녀 건강을 위협할 수 있는 먹을 거리 안전에 대한 문제의식 때문이었다.

엄마들이 행동에 나서기까지는 인터넷 카페들이 결정적 역할을 했다. ‘82쿡’ ‘쌍코’ ‘소울 드레서’ 등 젊은 여성들이 요리, 미용, 패션 등에 대한 정보를 주고 받던 카페의 자유게시판에 미국산 쇠고기 수입의 문제점에 대한 글들이 하나 둘씩 올라오고 자연스럽게 “두고 볼 수 없다”는 목소리가 모아졌다. 카페 회원들은 반대 운동에 도움을 주고자 십시일반 모금 운동을 벌이고, 급기야 아이들을 데리고 광장에 나섰다. 안진걸 참여연대 공동사무처장은 “그 전까지 대규모 집회는 대부분 이념지향적이었지만, 엄마들의 참여로 먹거리 안전이라는 이슈가 새로이 등장하게 됐다”며 “조직적인 유모차 부대의 참여가 일반 시민의 촛불시위 참여를 촉발하는 기폭제 역할을 했다”고 평가했다.

제2의 ‘유모차 부대’는 2012년 아동 성 범죄 사건으로 등장했다. 경기 여주의 4세 여아가 성폭행을 당한 사건이 알려진 후 네 살 딸을 둔 엄마 전수진(40)씨가 ‘아동 성 범죄자를 징역 20년 이상으로 강력하게 처벌해야 한다’는 글을 다음 아고라에 올렸고 엄마들이 자발적으로 호응한 것이 ‘아동성폭력추방을 위한 시민모임 발자국’(이하 발자국)이라는 단체의 시초였다. 같은 해 전남 나주에서 8세 여아를 납치, 성폭행한 고종석 사건까지 일어나면서 전국의 엄마들이 아동 성범죄 추방의 기치 아래 일어섰다. 전국에서 엄마들이 자발적으로 참여한 약 80회의 집회와 서명운동, 1인 시위가 이어졌다. 법원은 경기 여주 사건 피고에게 대법원 양형 기준 최고형인 징역 15년을 선고했다.

이후 엄마들의 정치적 자각을 일깨운 또 다른 중요한 사건은 2014년 세월호 참사와 지난해에야 법적 처벌이 이뤄진 가습기 살균제 사태였다. 둘 다 순진한 아이들이 어른들의 잘못으로 희생된 사건이었기에 엄마들의 공감과 슬픔이 적지 않았고, “내 아이들을 그냥 위험에 노출되도록 가만히 있을 수 없다”는 자각이 일었다. 이렇게 해서 교육제도와 화학물질의 위험성뿐만 아니라, 미세먼지 같은 환경문제와 원전 안전 등으로 엄마들의 관심사는 확대됐다.

발자국은 2014년 여성가족부에 비영리단체(NGO)로 등록했고, 5년이 지난 지금 회원 수 1만2,000명 선을 유지하고 있다. 첫 목표였던 아동 성범죄자 형량 강화 입법은 아직 실현되지 않았지만, 관련 정책 수립에 의견을 내고 인터넷 여성혐오 댓글에 소송을 제기하는 활동을 하고 있다. 전씨는 “발자국 엄마들이 고소한 네티즌들이 벌금형을 선고 받은 사실이 알려진 뒤 비슷한 피해를 입은 여성들이 도움을 청하는 일이 많다”며 “엄마들의 목소리가 모여서 작은 변화를 가져오고 있다”고 말했다.

박상준 기자 buttonpr@hankookilbo.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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