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34>칼 세이건의 '콘택트'

#1
과학대중화 이끈 천문학자의 SF
학계 보수성 깨고 연구범위 확대
인간중심주의 벗어난 시야 제공
외계 오염 등 우주윤리에도 영향
#2
인류 소개 음반 보이저호에 싣고
태양계 경계에서 지구 촬영 등
SF같은 아이디어, 연구에 적용
작가들에게 창작 영감 주기도
천문학자 칼 세이건의 소설을 원작으로 한 영화 ‘콘택트’. 이 우주에 지적 존재가 인간만은 아닐 것이라는 생각은 세이건 이후 비로소 진지한 과학의 연구분야로 편입됐다. 워너브러더스 코리아 제공

80년대의 ‘과학소년’들은 여자친구에게 보내는 편지에 너도 나도 이런 글을 쓰곤 했다. ‘광대한 우주, 그리고 무한한 시간. 이 속에서 같은 행성, 같은 시대를 ○○와 함께 살아가는 것을 기뻐하면서.’ 아쉽게도 나는 이런 편지를 나눌 여자친구가 없었고, 대신 함께 과학책을 읽고 토론하던 남자사람 친구에게 위 글이 적힌 편지를 받았던 기억만 있다. 이 멋진 글은 원래 칼 세이건이 아내인 앤 드류얀에게 바친 헌사로서 그의 대표 저작인 ‘코스모스’ 맨 앞에 실려 있다.

‘코스모스’는 내 인생의 책 중 하나다. 중학생 시절 구입한 뒤 수시로 탐독하면서 수 십 년이 지난 지금까지 간직하고 있다. 고교생 때는 이 책을 보느라 입시 공부를 소홀히 한다고 아버지에게 압수당한 적도 있었다. 이를테면 나는 ‘코스모스 키드’였던 것이다.

과학과 스토리텔링의 결합

책과 함께 TV 다큐멘터리 시리즈 ‘코스모스’도 애청했다. ‘아시모프의 천문학 입문’ 등 다른 교양천문학 책들도 즐겨 읽었는데 왜 유독 세이건에게 빠져들었나 돌이켜보면, 학문의 경계를 넘어 SF 스토리텔링으로 확장되는 상상력에 매혹되었던 것 같다. ‘코스모스’ 다큐멘터리에서 맨 처음 흥미를 끌었던 부분도 가상의 우주선이 등장하는 장면이었다.

이렇듯 스토리텔링과 과학적 사실을 결합시킨 것이야말로 대중과의 소통을 중요시한 세이건의 강점이다. 언젠가 그가 술회하기를 일부 과학자들은 자신을 싫어한다고 했는데, 그들이 어려운 과학을 대중에게 널리 알리는 것 자체에 반대했기 때문이었다. 그들은 과학을 상아탑 안에서 많은 시간과 노력을 들여 연구하는 학자의 전유물로 여긴 반면, 세이건은 대중에게 과학을 널리 알리기를 바랐다. 그리고 ‘코스모스’를 통해 그 원하는 바를 멋지게 이루었던 것이다.

세이건이 취한 다음 행보는 SF를 집필하는 것이었다. 소년 시절부터 SF 애독자였던 세이건은 이미 70년대 말부터 훗날 세 번째 아내가 되는 앤 드류얀과 함께 SF영화 시나리오를 쓰고 있었다. 영화화 작업이 순조롭지 않자 세이건은 이 초고를 바탕으로 본인이 소설을 쓰고자 마음먹었고, 1981년에 사이먼 앤드 슈스터 출판사는 책의 출판권을 선인세 200만달러를 주고 사들였다. 이 금액은 집필하지 않은 책에 대한 선금으로는 당시까지 최고였다고 한다. 그리고 이 소설은 마침내 1985년에 ‘콘택트’라는 이름으로 세상에 선을 보인다.

당시 대학 신입생이었던 나는 ‘콘택트’의 한국판이 나오기 전에 과학잡지 ‘디스커버리(Discovery)’에 일부 연재된 분량을 도서관에서 복사해서 친구들과 영어공부 겸 읽는 모임을 했었다. 외계에서 온 전파가 지구의 라디오 방송에서 널리 쓰이는 주파수변조(FM)나 진폭변조(AM)가 아닌 편광변조(PM)라는 방식이라고 설명했던 부분 등의 기억이 지금도 생생하다.

지름 305m의 규모를 자랑하는 푸에르토리코 아레시보 전파망원경. 이렇듯 거대한 장비와 세계 각국의 협력 네트워크를 갖추고 외계 지적생명체 탐사(SETI)가 진행되고 있다. 한국일보 자료사진
외계생명체 탐사, SF서 과학으로

‘콘택트’는 1985년 미국 베스트셀러 순위 7위에 올랐고 출간 뒤 2년 동안 170만 부가 판매되는 대성공을 거두었다. 이에 힘입어 영화화 작업도 재시동이 걸렸으나 감독이 여러 차례 갈리는 등 우여곡절 끝에 1997년에야 스크린에 걸렸다. 안타깝게도 세이건은 그 전 해에 폐렴으로 세상을 떠났다.

‘콘택트’의 주인공은 인간의 과학으로는 설명할 수 없는 원리로 장거리 우주여행을 경험하고 외계의 지적 존재와도 만난다. 그리고 그에게서 인류가 때로 위험해 보이기도 하지만 무척 흥미로운 존재라는 말을 듣는다.

세이건은 진작부터 연구 현장에서 SF와 같은 아이디어를 실제 계획에 반영시킨 것으로 유명했다. 1972년과 73년에 발사된 우주탐사선 파이어니어 10호와 11호에는 손을 들어 인사하는 인간의 모습을 담은 금속판이 실려 있는데, 혹시라도 지적인 외계 존재를 만날 경우를 위한 ‘지구로부터의 메시지’이다. 그리고 1977년에 발사된 보이저 1,2호 우주탐사선에는 세계 여러 나라의 언어로 녹음된 인사말과 다양한 사진 등이 담긴 ‘골든디스크’가 탑재되었다. 여기에는 ‘안녕하세요?‘라는 한국말 인사도 들어 있다. 태양계를 벗어나 현재 심우주 영역으로 접어든 이 우주탐사선들에 지구인의 메시지를 담은 사람이 바로 칼 세이건이다.

칼 세이건이 1980년 TV시리즈 '코스모스' 스튜디오에서 우주탐사선 보이저 1호가 1977년 지구를 떠날 때 싣고 간 것과 같은 골든디스크를 보여주고 있다. 이 음반에는 55개 언어의 인사말과 음악, 자연 소리, 사진 등 외계 생명체에 인류와 지구를 소개하는 정보가 담겼다. 사이언스북스 제공

그는 우주에 지적인 생명체가 존재할 가능성을 과학적으로 진지하게 연구하는 분위기를 조성하는데 프랭크 드레이크 등 동료 과학자들과 함께 결정적인 기여를 했다. 그전까지 이런 분야는 SF로 취급되어 과학자들 사이에서 정식 연구 주제로 삼기를 꺼리는 풍토였던 것이다.

결과적으로 이런 연구는 오히려 지구와 인류에 대한 이해의 깊이를 더하는 계기가 되었고 과학에서 인간중심주의나 지구중심주의를 벗어나는 시야를 제공했다. 예를 들어 외계 천체에 무인탐사선을 보내면서 지구에서 오염물질이 묻어가지 않도록 주의하는 우주과학의 윤리 문제에까지 사람들의 생각이 미치게 됐다. 스토리텔링을 통해 대중에게 과학을 알려 온 세이건의 노력은 과학자 집단의 폐쇄성이나 보수성을 깨는 데에도 일익을 담당했다.

1990년 태양계를 벗어나 우주로 나아가는 우주탐사선 보이저 1호가 찍은 지구. ‘창백한 푸른 점’으로 이름붙여진, 외계에서 본 지구의 모습은 우주 속 인간의 존재를 보는 다른 시야를 깨닫게 한다. 미 항공우주국(NASA) 제공
우주 저편에서 본 지구

1990년 2월, 우주탐사선 보이저 1호는 태양계 탐사 임무를 마치고 먼 바깥우주로 나가려는 참이었다. 그 때 세이건은 미 항공우주국(NASA)에 요청해 보이저의 카메라를 돌려 지구를 촬영하도록 했다. 이 때 찍힌 사진이 ‘창백한 푸른 점(Pale Blue Dot)’으로 불리는 유명한 지구의 모습이다. 세이건은 여기에 감동적인 해설을 붙였는데, ‘이 먼지 같은 티끌이 우리의 보금자리고, 고향이고, 바로 우리이다. 우리가 알고 들었던 모든 사람들, 존재했던 모든 인류가 여기서 삶을 살았다. 모든 즐거움과 고통, 모든 종교와 이념, 경제체제, 사냥꾼과 약탈자, 영웅과 겁쟁이, 모든 문명의 창시자와 파괴자, 왕과 농부, 사랑에 빠진 모든 연인들, 모든 어머니와 아버지, 희망에 찬 아이, 발명가와 탐험가, 윤리를 가르친 선생들, 부패한 정치가, 인기스타들, 위대한 지도자들, 모든 성인과 죄인들이 이 우주에 뜬 먼지 같은 곳에 살았던 것이다’라는 내용이다.

세이건은 ‘콘택트’ 외에 SF를 쓰지는 않았지만, 다른 SF 작가들에게 많은 영향을 끼쳤다. 예를 들어 파이어니어나 보이저 우주선에 실린 지구의 메시지는 여러 작품에 영감을 주었는데, 대표적으로 1984년에 나온 영화 ‘스타맨’을 들 수 있다. 보이저의 메시지를 보고 지구로 찾아 온 외계인이 사람들에게 쫓기면서도 평화와 치유의 행적만을 남기다 고향별로 돌아간다는 내용이다. 이 작품은 나중에 TV 연속극으로 만들어져 국내에도 방영됐다.

20세기에 칼 세이건이라는 인물이 없었다면 인류의 우주과학 및 교양과학의 지형도는 지금과 상당히 달랐을 것이다. 그게 지금보다 더 좋았을지 생각해보는 건 부질없지만, 적어도 그가 있어서 다행이었던 것은 사실이다. ‘코스모스’에서 가장 인상적으로 기억하는 한 문장이 있다. ‘여행을 하면 시야가 넓어진다.’ 우리는 지구에 발을 딛고 사는 존재이지만, 눈은 우주를 향해야 한다.

박상준ㆍ서울SF아카이브 대표

칼 세이건

1934년 11월 9일~1996년 12월 20일. 미국 뉴욕시 브루클린의 개혁파 유태계 집안에서 태어났다. 1939년에 뉴욕세계박람회에 갔다가 제너럴모터스(GM)사의 전시관 퓨처라마(Futurama)에서 미래 도시의 모형을 보고 예닐곱 살 때 미국자연사박물관에서 플라네타륨과 운석 등 각종 우주과학 전시물을 접했다. 다섯 살 때 처음 도서관에 가서 ‘스타(star)’에 대한 책을 달라고 하자 사서가 연예인들에 대한 책을 내주었다는 일화는 유명하다. 이 때 밤하늘에 숱하게 반짝이는 별들이 모두 다 태양과 같은 거대한 천체라는 사실을 알게 되고는 우주의 어마어마한 규모에 전율했다고 한다. 이런 유소년기의 경험들과 우주에 대한 경이감이 훗날 우주과학자로 성장하는데 결정적인 동기가 되었다.

SF 독서를 즐기던 소년 시절 영재학교 전학 제안을 받았으나 학비 문제 등으로 포기했다. 고교 졸업 즈음, 인류보다 월등한 문명의 외계인이 지구에 오면 아메리카 원주민들이 겪었던 것 같은 비극이 될 것이라는 내용으로 에세이 콘테스트에서 1등을 차지했다. 이 글은 당시 상당한 논쟁을 불러일으켰다. 시카고대에 진학한 뒤 생물학, 화학, 물리학 등 다양한 분야를 공부했고 외계행성에 대한 연구로 박사학위를 받았다. 이 시기인 1950년대 말 미 공군에서는 달에 핵폭탄을 터트리는 '프로젝트 A119' 계획을 비밀리에 추진했는데, 세이건이 1급 기밀 인가자 자격으로 참여했던 사실이 사후에 밝혀졌다.

SF 작가 아이작 아시모프는 만났던 사람들 중 단 두 명만이 자신보다 지적으로 월등하다고 생각했는데 하나는 컴퓨터과학자 마빈 민스키였고 나머지가 칼 세이건이었다고 한다. 생전에 마리화나를 즐겼고 합법화를 주장하는 글을 익명으로 쓰기도 했다. 세 번의 결혼을 통해 다섯 자녀를 두었는데 그 중에 ‘스타 트렉’ TV시리즈의 각본 등을 쓴 SF작가 닉 세이건이 있다.

<소개된 책>
콘택트

칼 세이건 지음

이상원 옮김

사이언스북스 발행

코스모스

칼 세이건 지음

홍승수 옮김

사이언스북스 발행

창백한 푸른 점

칼 세이건 지음

현정준 옮김

사이언스북스 발행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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