美 맨해튼 자전거길 소형 트럭 돌진

미국 뉴욕 맨해튼 웨스트가의 자전거 도로에서 트럭 돌진 테러가 발생해 8명이 숨진 지난달 31일, 핼러윈 데이를 맞아 가지각색 분장을 한 채 도심 행진을 하는 행렬 옆으로 무장 경찰이 경비를 서고 있다. AP 연합뉴스

“현장을 보자마자 알았죠. ‘아! 테러구나’”

지난달 31일 오후 3시5분(현지시간) 미국 뉴욕 맨해튼 남서쪽 강변을 따라 퇴근 중이던 직장인 유진 더피는 도로 위 아무렇게나 쓰러진 자전거와 시신, 그 뒤로 멈춰 선 소형 트럭을 보고 테러임을 직감했다. 소녀가 공포에 질려 비명을 지르며 달아났고 길에 쓰러진 두 남성 주변으로 타이어 자국이 즐비했다. 교통사고일 가능성도 있었지만 최근 세계 주요 도시에서 발생한 테러를 목격한 후 이 같은 공포가 익숙해졌다는 그는 “뭔가 잘못 됐다는 느낌이 들자마자 (경찰의) 총성이 들려왔다”고 말했다.

이날 뉴욕 맨해튼 웨스트가(街) 자전거 도로에서 한 소형트럭이 시민들을 향해 돌진, 8명이 숨지고 11명이 부상했다. 유럽 주요 대도시를 중심으로 이어진 소프트타깃 테러(불특정 민간인 대상 테러)가 뉴욕 맨해튼까지 덮친 것이다. 특히 2015년 11월 프랑스 파리를 시작으로 독일 베를린, 영국 런던, 스페인 바르셀로나, 스웨덴 스톡홀름, 그리고 뉴욕까지 전세계 관광객이 몰리는 ‘꿈의 도시’들이 일제히 테러 공격에 함락됨에 따라 사실상 세계인이 모두 잠재적 테러 대상이 아니냐는 우려가 확산되고 있다. 올해 들어서는 폭탄도 아닌 트럭 등 대형 차량을 이용한 ‘로테크(low-tech)’ 테러가 시민과 관광객을 무작위로 덮치면서 두려움이 극대화하는 모습이다. 콘서트장, 종교집회 등 특별한 장소에 가지 않더라도 세계 어느 관광지 어느 거리를 거닐다 불시의 공격을 받아 누구라도 테러 희생자가 될 수 있다는 ‘공포의 보편화’가 정점에 달한 것이다.

실제 이날 맨해튼 테러의 희생자는 아르헨티나인 5명과 벨기에인 1명 등 외국인이 대부분이었다. 부상자 중에도 3명의 벨기에 국적자가 포함됐다. 이들은 순전히 관광을 목적으로 뉴욕을 찾은 여행객이었다. 주유엔 아르헨티나 총영사관은 “숨진 5명은 단지 졸업 30주년을 기념해 함께 뉴욕에 여행 온 고교 동창들이었다“며 “살아남은 일행도 충격에 빠져 있어, 멀리 떨어져 있는 유족들에게 어떻게 소식을 전해야 할지 고심하고 있다”고 전했다.

아비규환에 휩싸인 현장 상황은 사회관계망서비스(SNS)를 통해 실시간으로 중계됐다. 테러범은 건축ㆍ인테리어 용품 판매업체인 홈디포에서 임대한 흰색 소형트럭에 올라 자전거 도로를 따라 20블록가량 질주하며 행인들을 친 후 한 고교 앞 통학용 버스를 들이받은 뒤에야 멈췄다. 그는 이후 트럭에서 내려 가짜 총기를 들고 길을 지나던 아이들을 위협하기까지 했다. 한 여성은 “중학생 딸이 범인의 바로 앞에 있었다”며 “아이가 울기만 한 채 아무 말도 못하고 있다”고 미 일간 뉴욕타임스(NYT)에 호소했다.

무참한 피해를 낳았지만 테러 동기는 오리무중이다. 뉴욕 당국에 따르면 범인은 현장에서 경찰의 총격을 맞고 병원으로 이송됐으며, 우즈베키스탄 국적 이민자인 29세 남성 세이풀로 사이포브로 신원이 확인됐다. 사이포브는 2010년 미국에 입국해 플로리다주 탬파에 주소를 둔 영주권자로, 최근에는 뉴욕과 맞닿은 뉴저지주 패터슨에 머물렀던 것으로 알려졌다. 트럭과 차량 공유 서비스인 우버의 운전기사로 일했는데, 트럭 기사 시절 동료였던 코빌존 마트카로브(37)는 “내가 알던 사이포브는 좋은 사람이었고 늘 미국 생활이 행복하다고 말했다”고 NYT에 밝혔다.

다만 사이포브는 범행에 사용한 트럭에 극단주의 무장조직 이슬람국가(IS)에 대한 충성맹세를 쓴 메모를 남겨 IS와의 연계 의심을 받고 있다. 그가 범행 당시 트럭에서 내리자마자 “알라후 아크바르”(알라신은 위대하다)라고 외쳤다는 증언도 이어지고 있다. 수사당국은 사이포브의 단독 범행인지 여부를 밝히기 위해 그가 미국 이주 후 고국을 방문한 적 있는지 등을 집중 조사 중이다. 그의 고국인 우즈베키스탄은 실제 IS 연계 조직인 ‘우즈베키스탄이슬람운동(IMU)’ 등 거대 극단주의 무장단체의 활동으로 골머리를 앓고 있다.

뉴욕 맨해튼 웨스트가 테러범 세이풀로 사이포브(왼쪽)와 공격에 사용된 트럭. AP 연합뉴스

9ㆍ11에 이어 다시 테러 위험을 껴안게 된 미국 정부는 비상 태세에 돌입했다. 테러 현장은 9ㆍ11 당시 무너져 내린 월드트레이드 센터 건물 터와 불과 1㎞밖에 떨어져 있지 않은 곳으로 미국인들은 2001년의 비극을 떠올릴 수밖에 없었다. 빌 더블라지오 뉴욕 시장은 공격 직후 “무고한 시민을 겨냥한 비겁한 테러 행위”라며 이번 사건을 테러로 규정했다. 도널드 트럼프 대통령도 트위터를 통해 “병들고 정신적으로 정상이 아닌 자가 공격한 것 같다”고 비난했다. 그는 이어 “IS가 중동 등지에서 물러난 뒤 우리나라로 들어오거나 다시 돌아오게 해서는 안 된다”며 IS에 책임을 묻고 “방금 국토안보부에 ‘극단적인 심사 프로그램’을 더 강화하라고 지시했다”고 밝혔다.

김정원 기자 gardenk@hankookilbo.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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