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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짜오! 베트남] 베트남 취업? 쉽게 생각했다간…

입력
2017.11.01 19:00
17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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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국인으로 가득한 호찌민 인문사회과학대 베트남학과 전공 수업 강의실. 한 학생이 교수한테 질문을 하고 있다.
한국인으로 가득한 호찌민 인문사회과학대 베트남학과 전공 수업 강의실. 한 학생이 교수한테 질문을 하고 있다.

한국의 청년 실업률이 10%를 넘나드는 가운데 취업을 위해 베트남으로 고개를 돌리는 청년들이 늘고 있다. 오는 10일 ‘2017 한베 청년인력 채용박람회’를 앞둔 대한무역투자진흥공사(KOTRAㆍ코트라) 호찌민 무역관 관계자는 1일 “구직 희망자 사전 등록 건수가 1,000건을 넘어섰다”며 “구직을 위해 베트남에 들어와 있는 한국 청년들이 상당수 응시한 것으로 보인다”고 말했다.

베트남 정부가 발표한 지난 10월 실업률은 2.21%. 2014년 실업률 2.09%에 비하면 최근 몇 년 사이 소폭 상승한 것이지만, 이직이 잦은 현지 특성을 감안하면 사실상 완전고용으로 평가된다. 일자리 질 차이는 있겠지만, 베트남에서는 ‘대학 졸업=취업’ 공식이 아직은 먹히는 셈이다.

‘한국인 97%’ 베트남학과

이 같은 분위기를 일찌감치 간파하고 베트남으로 온 학생들도 적지 않다. 대표적인 곳이 베트남 남부 대표 대학으로 꼽히는 국립 호찌민 인문사회과학대(인사대)의 베트남학과. 대학에 따르면 현재 베트남학과(학부기준, 교환학생 제외) 재학생 187명 중 182명, 97%가 한국인이다. 판 타이 빈(38) 교수는 “우리 과를 졸업하면 취업 걱정은 하지 않아도 된다는 말이 있다”며 “졸업생들이 삼성, 금호, 코트라, CJ 등 한국 기업과 기관으로 취업을 하고 있다”고 전했다. 상당수가 한국에서 고등학교를 마치고 온 유학생이고, 현지 교민 자녀들이다.

이 학과 4학년 정연희(24)씨는 “베트남에서 지낼수록 삶의 만족도가 높아지고 있다. 취업도 한국에서 하는 것보다 훨씬 유리할 것”이라고 내다봤다. 그는 또 한국 친구들과의 대화 내용을 소개하며 “베트남에 지금 살고 있는 것 자체가 부럽다는 말을 주변에서 많이 듣고 있다”고 전했다. 같은 학년 박상엽(59)씨는 “사업(건설, 부동산) 확장을 위해선 심도 있는 베트남 공부가 필요했다”고 말했다.

인기비결은 높은 가성비

베트남 대학에 대한 한국 학생들의 만족도가 높은 이유는 취업률 외에 뭐니 뭐니 해도 저렴한 학비와 생활비 등 낮은 투자비용이 꼽힌다. 학교 인근 한국인 학생 밀집 하숙촌(응우옌 티 민 콰이 18A 일대)에서는 원룸을 월 500만동(약 25만원) 수준에 구할 수 있다. 교환학생 김정규(26)씨는 “물가가 낮아 아끼면 집세를 포함, 월 70만~80만원 정도에 생활이 가능하다”고 말했다. 김씨가 머무는 방은 13㎡(약 4평) 공간에 침대와 책상, 옷장, 욕실을 갖추고 주 2회 청소와 빨래 서비스가 제공된다고 했다.

인사대 베트남학과의 등록금은 1학기 기준 2,000만동(약 100만원). 연 200만원의 등록금에 생활비를 더해도 1,000만원으로 1년간 지낼 수 있다는 뜻이다. 졸업생들은 주로 한국계 기업 생산공장 중간 관리자 또는 시내 본사 근무자로 취직한다. 공장 관리자의 경우 월 2,500달러(약 280만원) 정도를 받고 숙식을 무료로 제공받는다. 시내 근무의 경우 경쟁이 치열해 초봉 2,000달러 내외의 월급에 숙식 제공이 안 되는 경우가 많다.

한국계 신발제조 업체 공장에서 총무 업무를 맡고 있는 졸업생 조승우(33)씨는 “절대임금은 낮을지 몰라도 출퇴근 시간이 명확해 비교적 여유로운 생활이 가능하다”며 “한국 친구들로부터 ‘지금 가도 늦지 않느냐’는 질문을 많이 받는다”고 말했다.

호찌민 인사대 인근 하숙촌 응우옌 티먼 카이 18A 구역의 한 골목길을 한국 유학생들이 지나고 있다.
호찌민 인사대 인근 하숙촌 응우옌 티먼 카이 18A 구역의 한 골목길을 한국 유학생들이 지나고 있다.

치열해지는 취업 시장

이런 성공 사례들이 알려지면서 갈수록 많은 한국 청년이 베트남으로 넘어오고 있지만 어느 통계에서도 그 정확한 규모는 잡히지 않는다. 이곳 취업 시장에서는 인사대 베트남 어학원의 한국인 등록수를 통해 그 규모를 가늠할 수 있을 뿐이다. 인사대에 따르면 9월 말 현재 한국인 수강생은 1,049명. 작년 한 해 등록자 수(1,238명)의 85% 수준으로, 전년 동기 대비 10%가량 늘어난 규모다. 인사대 관계자는 “수강생 절대 다수가 구직을 목적으로 한다”라며 “일자리를 찾아 베트남으로 온 한국인들이 늘고 있는 것으로 보인다”고 말했다. 어학원에 등록할 경우 최장 12개월짜리 비자(DH)를 받을 수 있다.

하지만 한국ㆍ베트남어 구사에서 비롯되던 이들의 경쟁력도 시간이 지나면서 예전 같지 않다는 게 요즘 베트남 분위기다. 베트남 내 한국인 증가와 함께 한국어를 구사하는 베트남 청년들도 늘고 있기 때문이다. 한국계 기업의 인사 담당자는 “한국인은 보다 책임감이 중시되는 곳에, 현지인은 실무 자리에 배치한다”면서도 “한국인 인건비 3분의 1이하 수준인 한국어 구사 현지인에게 눈길이 더 가는 건 사실”이라고 말했다. 한국인뿐만 아니라, 베트남 청년들과도 경쟁해야 한다는 이야기다. 공급(구직자)이 늘자 일부 기업들은 복지를 줄이고 탈세 목적으로 급여를 한국의 은행 계좌로 입금하는 등 횡포도 이어지고 있다.

자기 관리 철저해야 성공 기대

베트남 유학과 현지 취업을 위해서는 자신과도 싸워야 한다는 게 취업에 성공한 사람들의 한결같은 이야기다. 자기 관리가 철저하지 않은 경우 성공하기 어렵다는 뜻이다. 부동산 컨설팅 업무를 하고 있는 한성주(30)씨는 “마리화나 같은 마약의 유혹이 많고, 오토바이 음주운전이 통제가 안 돼 대형 사고로 이어지는 경우가 더러 있다”며 “베트남에 오더라도 명확한 목표와 함께 배수의 진을 쳐놓고 움직여야 성공 가능성을 높일 수 있다”고 말했다. 입학ㆍ졸업생 수를 근거로 한 한국 유학생들의 완주(졸업)율은 70~80% 수준이다. 조승우씨는 “서울에서 아르바이트하는 것보다 베트남에서 훨씬 많은 기회를 잡을 수 있다고 생각한다”면서도 “서울에서 안 되니 ‘한번 가볼까’ 하는 안일한 생각이라면 오지 않는 것이 낫다”고 조언했다.

호찌민=글ㆍ사진 정민승 특파원 msj@hankookilbo.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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