tvN 드라마 ‘아르곤’에서 앵커 겸 기자로 열연한 배우 김주혁. CJ E&M 제공

“그나저나 애들(직원)한테 빨리 옷 줘야 하는데…”

지난달 28일 오후 생전 마지막 인터뷰를 끝낸 ‘그’가 일어서며 한 말이다. 그는 “(집에)와서 가져가”라며 옆 테이블에 앉아 있던 소속사 나무엑터스 홍보팀 여자 직원들에게 한 번 더 말했다. “와!” 여직원들이 웃으며 “언제 갈까요?” 했다. 그가 “여자들이 내 옷을 많이 탐낸다”고 덧붙인 걸 보면, 여직원들이 옷 달라고 꽤나 졸랐나 보다. 소속사 창립멤버로 10년 넘게 회사를 지켜온 터줏대감이지만 어린 직원들과도 격 없이 지내는 소탈한 아저씨. 배우 김주혁의 일상이었다.

지난 30일 너무도 갑작스럽게 비보를 전한 그는, 최근 한창 물 오른 연기를 보여주고 있었다. 스스로도 “이제야 연기가 재미있다”며 언론이나 주변 동료들에게 입버릇처럼 말해왔다. 영화 ‘싱글즈’를 비롯해 ‘광식이 동생 광태’ ‘아내가 결혼했다’ 등에서 10여년 동안 보여준 순진하고 밝은 청년의 이미지에 싫증을 느꼈을지도 모르겠다. 어찌됐든 tvN 드라마 ‘아르곤’과 영화 ‘공조’, ‘비밀은 없다’에서 김주혁의 연기는 확실히 달랐다.

김주혁은 영화 ‘공조’에서 북한 비밀 조직의 리더 차기성을 연기해 다시 주목 받았다. CJ엔터테인먼트 제공

‘공조’에 함께 출연했던 유해진도 “(연기할 때)눈이 되게 좋아지는 것 같다”고 김주혁에게 말할 정도였다. “(김)주혁이가 멋있게 나올 것이라 예상했죠. 노력한 만큼 나오니까요.” 가수 겸 배우 옥택연도 영화 ‘시간 위의 집’으로 인터뷰를 하면서 “악역에 욕심이 생겼다”며 “’공조’에서 김주혁 선배님이 악역을 그렇게 잘 소화하실 줄 몰랐다. 내게 자극이 됐다”고 말하기도 했다. ‘공조’는 김주혁에게 터닝포인트였음이 분명하다. 아직 할 일이 많은 그가 우리 곁에 없다는 사실에 가슴이 먹먹하다.

그의 부재가 크게 느껴지는 건 TV스타로 친근하게 다가왔던 첫 인상 때문이다. 그는 1998년 SBS 공채 탤런트로 데뷔해 SBS ‘카이스트’ ‘프라하의 연인’ ‘떼루아’ 등 현대극은 물론 MBC ‘무신’ ‘구암 허준’ 등 50부~130부작에 달하는 사극으로도 시청자의 사랑을 받았다. 장편 드라마는 힘에 부치기도 했었다. 그는 “8부작 ‘아르곤’을 함께 한 후배 천우희는 운이 좋았다. 50부작짜리 사극을 해봐야 극한을 경험해 더 성장할 수 있는데”라며 눙치다가도, “시간에 쫓기지만 않으면 훨씬 좋은 드라마가 나올 수 있는 데 아쉽다”고 했다. 드라마 촬영의 열악한 현실에 대한 고민과 지적이었다.

2013년 KBS2 예능 프로그램 ‘해피선데이- 1박2일’로 시청자와 끈끈한 정을 나눴다. 2년 여간 ‘구탱이형’이었던 그는 “서로 경쟁하고 튀려는 예능이었으면 아마 한 달만 하고 나왔을 거다. 똘똘 뭉치고 서로를 위하는 게 너무 좋았다”고 말하곤 했다. ‘1박2일’ 얘기만 하면 입꼬리가 쓱 올라갔다. “구탱이형 별명이 마음에 들어요. 별명 지어준 데프콘에게 고맙죠.”

‘구탱이형’처럼 연예계 맏형 노릇을 톡톡히 했던 그였다. 동료들에겐 “상처받을 게 뻔한 데 인터넷 댓글을 왜 보느냐”고 말하고, “배우들이 왜 우울증에 시달리는지 모르겠다. 즐길 수 있는 일이 얼마나 많은데”라며 안쓰러워하기도 했다. 후배들에겐 “촬영 현장에 미리 와서 귀를 열어라”는 아낌없는 조언도 남겼다. 하지만 이제 다시 볼 수 없는 그에게 작별을 고해야 한다. 김주혁은 ‘아르곤’ 촬영을 마친 뒤 “수고하셨습니다”가 아닌 “즐거웠습니다”라고 끝 인사를 나눠 좋았다고 했다. 그가 바랄지도 모를 인사를 전한다. “당신이 있어 그 동안 즐거웠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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