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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뇌전증, 경련만 잘 조절하면 일상생활 문제 없어”

입력
2017.10.30 20:00
23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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치료 전문가 이향운 이대 교수

이향운 이대목동병원 신경과 교수는 “뇌전증은 경련 증상만 잘 조절하면 학업과 사회생활을 하는 데 지장이 없는데 아직도 불치병으로 여기는 사회적 편견이 사라지지 않아 안타깝다”고 했다. 이대목동병원 제공
이향운 이대목동병원 신경과 교수는 “뇌전증은 경련 증상만 잘 조절하면 학업과 사회생활을 하는 데 지장이 없는데 아직도 불치병으로 여기는 사회적 편견이 사라지지 않아 안타깝다”고 했다. 이대목동병원 제공

뇌전증(雷電症ㆍ간질)은 사회적 편견이 심한 대표적인 병이다. 특유의 경련과 발작 때문이다. ‘뗑깡부리다’라는 말도 간질을 뜻하는 일본어 ‘뗑깡(癲癎)’에서 나왔을 정도다. 영어명인 ‘에필렙시(epilepsy)’도 ‘악령에 의해 영혼이 사로잡힌다’는 무시무시한 어원을 지녔다. 하지만 의학 발달로 뇌전증은 치료 가능할 뿐만 아니라 관리만 잘하면 일상생활에도 문제 없다. 뇌전증 유병률은 전 세계 인구의 0.5~1% 정도다. 우리나라에서는 환자가 30만명으로 추정되지만 지난해 뇌전증으로 병원을 찾은 환자는 14만3,898명이었다(국민건강보험공단).

2003년부터 1,000여명의 환자에게 맞춤형 치료를 하고 있는 ‘뇌전증 치료 전문가’인 이향운(48) 이대목동병원 뇌전증클리닉 신경과 교수를 만났다. 이 교수는 “뇌전증 환자의 85% 정도는 약물 치료 등을 통해 치료되고 잘 관리하면 일상생활도 문제 없는데 주홍글씨처럼 아직도 사회적 편견이 심해 안타깝다”고 했다.

-뇌전증에 대한 사회적 편견이 여전한데.

“뇌전증은 결코 불치병이나 정신병이 아니다. 환자도 얼마든지 지적이고 생산적인 삶을 살 수 있다. 소크라테스, 알렉산데르, 단테, 나폴레옹, 고흐, 차이코프스키, 노벨 등도 이 병을 앓았지만 사회에 큰 족적을 남겼다. 2014년 병명이 간질에서 뇌전증으로 바뀌고, 언론의 도움으로 뇌전증 질환 인지도가 좋아졌다. 하지만 여전히 제도적 지원 부족과 낮은 사회 인식 때문에 적기에 치료를 받지 못한 환자가 적지 않다. 뇌전증은 경련 증상만 잘 조절하면 정상적으로 생활할 수 있는 병이다.”

-뇌전증 진단은 어떻게 이뤄지나.

“대뇌에는 수천억개의 신경세포가 서로 연결돼 미세한 전기적 선호로 정보를 주고 받는데, 일부 신경세포가 비정상적인 흥분이나 동시적 신경활동에 의해 전기신호가 잘못 방출되면 1~2분에서 5분 정도 경련이나 발작이 생긴다. 경련이나 발작이 두 번 이상 자발적으로 반복해 생기면 뇌전증이다.

진단은 가족이나 보호자에게서 환자 병력을 자세히 들은 뒤 뇌에서 생기는 전기적 변화를 알아내는 뇌파검사(EEG)로 한다. 자기공명영상(MRI)과 양전자방출촬영(PET), 뇌혈역학적 검사(SPECT) 등과 같은 뇌영상 검사로 정밀 검사한다.

뇌전증 진단ㆍ치료에 가장 중요한 첫 단계는 뇌전증과 유사한 증상을 보이는 다른 질환을 구별하는 것이다. 예컨대 뇌전증이 아닌 스트레스, 우울증, 불안장애에 의해 경련과 유사한 증상을 보이는 심인성 발작, 미주신경성 실신이나 부정맥, 심실빈맥, 심실세동, 심장마비 등과 같은 심장성 실신은 뇌전증과 전혀 다르다. 고혈이나 저혈당, 전해질 이상 같은 일시적인 이상과 동반되는 경력 발작도 뇌전증이 아니다.”

-뇌전증의 치료 성적은.

“브롬 가스 치료를 시작으로 1900년대 초 페노바비탈이 개발돼 뇌전증 치료의 전기를 맞았다. 딜란틴이 뇌전증 치료 목적으로 개발되는 등 뇌전증 연구가 많이 진행됐다. 최근 트리렙탈, 라믹탈, 토파맥스, 케프라 등 20여 가지의 약이 나와 치료가 성공적으로 이뤄지고 있다.

뇌전증은 ‘잘 낫지는 않지만 대개 낫는다’라고 표현할 수 있다. 일반적으로 전체 뇌전증 환자 10명 중 4명 정도는 2~3년간 적절한 약물 치료 후 재발하지 않고 완치된다. 또 10명 중 4명 정도는 수 차례 재발해 항경련제를 5~20년간 복용하면 완치된다. 나머지 2명은 난치성 뇌전증이라 평생 지속적으로 혹은 주기적으로 약을 먹어야 하지만 당뇨병이나 고혈압 환자랑 비교하면 훨씬 잘 낫는다고 할 수 있다.”

-약물로 치료 안 되는 환자는 어떻게 하나.

“환자의 20~30% 정도는 2년 이상 2가지 이상의 항경련제 치료에도 불구하고 경련 발작이 계속 반복되는 ‘약물 불응성 난치성 뇌전증’이다. 디행히 일부 환자는 고대에서도 시행한 식이요법을 더욱 체계화해 부작용을 줄이고 효과를 높인 케톤식이요법을 시행하거나, 비디오-뇌파 모니터링, MRIㆍPETㆍSPECT 등 진단기술과 수술법 발전으로 뇌전증 수술이 가능해져 약물로 치료되지 않는 환자의 희망이 되고 있다. 수술로도 해결하지 못한 환자에도 미주신경자극 등 뇌자극술을 보조적으로 시행해 경련 횟수와 강도를 크게 줄였다.

난치성 뇌전증 환자가 여러 항경련제를 복용하거나 수술하면 1,000만원이 훌쩍 넘는 치료비가 들어 환자에게 적지 않은 부담이었다. 다행히 최근 정부가 약물 불응성 난치성 뇌전증 환자에게 진료비의 10%만 부담하게 하는 ‘산정특례’를 적용했다. 하지만 산정특례를 적용 받는 환자가 그리 많지 않아 아쉽다.”

-뇌전증으로 결혼이나 임신을 꺼리는 여성이 있는데.

“뇌전증 환자가 결혼했을 때 병이 있다는 사실이 배우자나 배우자 가족들에게 알려져 파혼을 당하거나, 심지어 결혼한 뒤에도 이혼하는 경우가 간혹 있다. 배우자가 될 사람에게 무조건 비밀로 하기보다는 정확한 정보를 공유하고 적극적으로 함께 협조하면 치료에 더 도움이 될 수 있다. 또한 발작 조절, 복용하는 약물에 따라 임신과 태아에 미치는 영향이 다를 수 있지만 대다수 환자는 적절한 약물 치료와 함께 임신 전부터 철저히 준비하면 건강한 아이를 낳을 수 있다. 우리 병원 뇌전증클리닉은 결혼을 앞두거나 결혼한 여성 환자뿐만 아니라 학령기 소아청소년, 군입대를 앞둔 청년, 폐경기 여성과 뇌졸중이나 치매에 취약한 노년에 이르기까지 각 단계에서 가장 중요한 활동이나 동반 질환을 고려한 개개인 맞춤형 치료를 제공하기 위해 다양한 다학제적 전문 치료를 하고 있다.”

권대익 의학전문기자

이향운(왼쪽) 이대목동병원 신경과 교수가 뇌전증 여부를 확인하기 위해 뇌파 검사를 시행하고 있다. 이대목동병원 제공
이향운(왼쪽) 이대목동병원 신경과 교수가 뇌전증 여부를 확인하기 위해 뇌파 검사를 시행하고 있다. 이대목동병원 제공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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