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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해외석학칼럼] 영국은 어떻게 멋을 잃었나

입력
2017.10.29 14:56
29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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앙겔라 메르켈 독일 총리와 테레사 메이 영국 총리의 에스토니아 수도 탈린에서의 최근 만남은 대조적인 장면이었다. 메르켈은 개방과 국제주의를 추구하고 세계 최고의 산업기반과 강력한 무역 동맹을 통해 나라를 이끌고 있다. 반면 메이는 미래보다 과거에 대해 더 많은 이야기를 했고, 영국의 혼란스러운 국가 정체성을 옹호하기 위한 주장을 펼치면서 세계시민주의를 폄하했다.

무엇보다 메르켈과 메이의 관계는 역사가 얼마나 주기적으로 뒤바뀌는지를 보여준다. 20년 전 독일은 ‘유럽의 병자’였으며, 미래로 나아가기 위한 길을 찾기 위해 자신 속의 악마를 쫓아내려고 고군분투했다. 반면 영국은 ‘멋진 영국(Cool Britannia)’이었다. 1990년대 영국 문화의 융성을 표현하는 말이다. 1997년 세계 많은 지역이 ‘Brit-pop (영국의 대중음악)’을 열심히 들었고, 영국의 최고 예술가와 패션디자이너, 건축가들의 이름은 그들 영역에서 가장 인기가 있었다.

나는 영국이 국가적 재기를 하던 당시에 작은 역할을 맡은 적이 있다. ‘Britain TM : 우리의 정체성을 새롭게 하자’라는 보고서를 통해 나는 영국 브랜드를 새롭게 하자는 전략을 제안했고, 이를 토니 블레어 총리의 새로운 노동당 정부가 채택했다. 이 아이디어는 ‘영국성 (Britishness)’을 새로이 생각하자는 것이었다.

명백히 필요한 일이었다. 1990년대 중반까지 불만족의 기류가 영국정치를 지배했다. 존 메이저 전 총리는 보수당에 대한 장악력을 잃었고, 영국식 제도에 대한 대중의 신뢰 상실은 유권자의 불안에 기름을 끼얹었다. 한때 ‘세계의 공장’이던 영국은 서비스 경제체제로 전락했다. 버킹검 궁전을 배경으로 왕족에 대한 과찬을 일삼던 연속극은 이제 관음증에 집착하고 있다. 여론조사에 따르면 이 나라 인구의 거의 절반이 이민을 원하고, 거의 절반이 영국인의 정체성을 느끼지 못한다. 스코틀랜드와 웨일스, 소수민족, 런던시민, 젊은 층에서 특히 그렇다.

마거릿 대처 전 총리가 80년대에 집착했던 인종기반적이고 배타적인 정체성에 대해 통탄하기보다는, 영국인들이 새로운 시민 정체성을 받아 들여야 한다고 나는 주장했다. 영국은 글로벌 허브였으나, 독창성 기이함 혁신의 오랜 역사를 가진 하나의 섬이기도 했다. 영국은 다양성을 자랑하는 하이브리드 국가였다. 영국은 혁명적 팡파르가 아닌 건전한 국가경영을 통해 사회 및 기술적 변화를 개척했다. 그리고 영국은 국민건강서비스(National Health Service) 제도에서 구체화한 가치인 ‘공정한 시합 (fair play)’을 중시한 나라였다.

영국은 개방 쪽으로 옮겨 갔고, 그 변화는 노동당과 보수당 모두에게 심대한 영향을 미쳤다. 오죽하면 데이비드 캐머런 전 총리와 보리스 존슨 전 런던시장과 같은 보수당 리더들이 현대적이고, 다인종적이고, 다민족적인 영국을 대표한다고 나섰을까. 이것이 2012년 런던 올림픽 개막식에서 영화 감독 대니 보일이 묘사한 영국이다.

그런데 영국이 왜 세계시민주의에서 민족주의와 토착주의로 되돌아 갔을까. 짧게 답하자면 영국의 새로운 브랜드 추구라는 성공이 스스로 발목을 잡았기 때문이다. 이전에 배제됐던 시민들을 수용함으로써, 과거 중심에 있던 사람들을 위협받는 소수로 느끼게 했던 것이다. 그래서 브렉시트에 대한 국민투표가 파행이었고, 그들은 다시 싸우기 시작했다.

캐머런을 승계한 메이의 주요 목표는 대처시대의 영국의 정체성 중심에 있던 옛날 ‘부족적’ 감정에 호소하는 것이었다. 이들은 ‘멋진 영국’에서 권리를 박탈당했다고 생각하는 사람들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인구통계학은 새롭고 개방된 영국은 필연적으로 오래된 영국을 대체하도록 할 것이다. 대부분의 여론조사 결과에 따르면 이 나라는 매년 더욱 자유롭고 관대해지고 있다. 그러나 브렉시트 투표에서 하나 확인된 것은 고령자, 백인, 덜 교육받은 유권자들의 공포다. 따라서 앞으로 관찰해야 할 것은 토착주의자들의 변신이 어느 정도이고, 그 지도자들이 얼마나 도를 넘는 것이냐일 것이다. 그리고 다수 유권자들이 영국 경제에서 브렉시트의 경제적 영향을 일단 느끼기 시작하면 포퓰리스트 움직임이 서서히 사라질 것인가다.

지난달 독일 연방 선거 이후 메르켈 총리의 마음에도 유사한 질문이 제기됐을 것이다. 메르켈이 속한 당이 지지를 잃는 동안 극우 성향의 ‘독일을 위한 대안’ 당이 유례없는 이익을 얻은 것은 난민위기 동안 메르켈의 대담한 개방 정책 때문이었다. 그는 지금 그가 장려했던 ‘환대하는 문화(Willkommenskultur)’가 토니 블레어의 ‘멋진 영국’과 같은 운명이 될 것인지 걱정할지 모른다. 불행히도 토착주의 물결을 극복하지 못한 채 오히려 그것에 휩쓸려버린 메이는 메르켈에게 가르칠 것이 없다. 어쨌거나 메이는 자신의 기회주의의 희생자로 전락할 수 있다. 역사가 진정 주기적으로 움직인다면, 영국은 조만간 개방으로 되돌아 가야 한다.

마크 레너드 유럽외교관계협의회 집행이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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