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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하!생태!] 자연이 준 최대 히트 상품 찍찍이, 원조는 도꼬마리 열매래요

입력
2017.10.28 04:00
12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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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냥 즐기던 스위스인 도메스트랄

개 털에 붙어 잘 안떨어지는 열매

가시 갈고리 모양에서 벨크로 착안

늪지서도 깨끗한 연잎·시원한 개미집…

공학·발명·건축 등에도 생물모방 활용

자연은 탐구하는 이에게만 선물 안겨

도꼬마리 열매를 촘촘히 뒤덮은 가시는 끝이 갈고리모양으로 돼 있어 섬유나 동물의 털에 잘 붙는다. 9월 6일 충남 서천 국립생태원에 전시된 도꼬마리. 국립생태원 제공
도꼬마리 열매를 촘촘히 뒤덮은 가시는 끝이 갈고리모양으로 돼 있어 섬유나 동물의 털에 잘 붙는다. 9월 6일 충남 서천 국립생태원에 전시된 도꼬마리. 국립생태원 제공

올해 4살인 꼬맹이 조카는 아직 손가락으로 꼼꼼하게 끈을 묶을 수 없어 찍찍이 신발을 신고 다닙니다. 벨크로 테이프라고도 부르는 찍찍이는 한번 붙으면 여간해서는 잘 떨어지지 않지만 또 손으로 한쪽을 들어올리면 쉽게 뗄 수 있기 때문에 발을 고정시키는 데 제격이죠. 어린이도 사용하기 쉬운 벨크로 테이프는 과연 어떻게 만들어졌을까요. 바로 길가를 걷다가 옷이나 털에 찰싹 달라붙으면 떨어지지 않는 도꼬마리라는 식물의 성질을 이용한 것입니다.

자연계의 많은 생물들의 특성을 연구하다 보면 이처럼 인류에게 도움이 되는 기술을 만들어낼 수 있는데요. 연구자들은 이런 연구를 ‘생물 모방’이라고 합니다.

도꼬마리에서 벨크로를 떠올린 비결은 ‘관찰력’

벨크로는 20세기 초 스위스의 조르주 도메스트랄이라는 사람이 처음 만들었다고 하는데요. 그는 사냥을 나갔다가 사냥개의 털에 도꼬마리가 잔뜩 붙어있는 것을 발견했죠. 털에 붙은 도꼬마리 열매는 아무리 털어도 떨어지지 않았지만 손으로 하나하나 떼 낼 수는 있었다고 하네요.

도꼬마리를 자세히 보면 가시의 끝이 갈고리처럼 굽어있는 것을 알 수 있습니다. 이 갈고리를 부드러운 천이나 털에 붙이면 잘 붙는데 억지로 뜯으려 하면 옷감이 상할 정도입니다. 도메스트랄은 이런 성질을 이용해 까끌까끌한 갈고리 모양이 촘촘히 박힌 천과 부드러운 천을 딱 붙여 벨크로를 만들 수 있었습니다.

도꼬마리는 사람들이 자신의 특징을 이런 식으로 사용할 줄 알고 가시 끝 부분을 갈고리처럼 굽히지는 않았을 겁니다. 열매를 여러 동물의 몸에 붙여 널리 번식하기 위한 것은 아니었을까요.

벨크로가 탄생할 수 있었던 것은 도메스트랄이 도꼬마리의 작은 특성 하나를 놓치지 않고 세심하게 관찰했기 때문일 것입니다. 둥근 도꼬마리 열매를 보고 지금 우리가 사용하는 벨크로를 바로 떠올리기란 쉽지 않으니까요. 확대경으로 한참을 들여다 보고서야 도꼬마리 가시 끝의 갈고리를 발견할 수 있지 않았을까 싶습니다.

연잎이 항상 깨끗한 이유는

10월 23일 국립생태원에 전시된 연잎에 떨어진 물방울이 잎에 스며들지 않은 채 그대로 모양을 유지하고 있다. 국립생태원 제공
10월 23일 국립생태원에 전시된 연잎에 떨어진 물방울이 잎에 스며들지 않은 채 그대로 모양을 유지하고 있다. 국립생태원 제공

탁한 연못에서도 연꽃(Nelumbo nucifera)은 예쁜 꽃을 피우고 깨끗하기까지 합니다. 비 오는 날 연잎을 쳐다보고 있으면 둥그런 물방울이 그대로 맺혀 있다가 바람이 불기라도 하면 맺혀 있던 물방울이 쪼르륵 움직이는 것을 발견할 수 있습니다.

물이 떨어져도 잎사귀가 젖지 않고 먼지를 머금은 바람이 불어와도 연잎이 항상 깨끗한 상태를 유지하는 이유는 표면을 자세히 살펴보면 알 수 있습니다. 연잎 표면을 전자현미경으로 살펴 보면 원통 형태의 작은 돌기들이 돋아 있는데요. 이 돌기 때문에 물방울이 연잎에 스며들지 않고 아래로 흘러내린다고 하네요. 물방울과 함께 잎 표면의 더러운 물질도 함께 씻겨 내려가는거죠.

이런 현상을 연잎 효과(Lotus effect)라고 하는데요. 이 작은 돌기들과 물방울과의 관계를 발전시켜 새로운 기술을 만들어 낼 수도 있습니다.

빗물만으로도 더러워진 유리를 깨끗하게 하는 자가 세정 유리나 코팅을 해 놓은 뒤 물을 뿌리기만 해도 자연스레 오염물질을 씻어내 주는 자가 세정 도료 등의 아이디어를 생각해볼 수 있는데요. 이 유리와 도료를 활용한다면 사람들이 고층 건물에 매달려 힘들게 외벽과 유리를 청소하는 모습을 더 이상 보지 않아도 되지 않을까요.

물총새를 본 따 만든 고속열차

자동차나 비행기 같은 운송수단을 만들 때는 저항을 적게 받을 수 있도록 겉을 각지지 않고 둥근 곡선형태로 만들죠. 우리나라에서 운행되는 고속열차인 KTX 중에는 토종 물고기인 산천어를 모티브로 만든 KTX-산천이라는 열차가 있습니다.

일본의 고속열차인 신칸센 중에는 물총새를 모방해 속도를 빠르게 하면서도 소음 문제까지 해결한 열차가 있습니다.

물총새는 물가 근처 나뭇가지에 앉아 있다가 먹이가 되는 물고기나 곤충을 보면 눈 깜짝할 사이에 물 속에 들어가 먹이를 낚아챕니다. 저항이 약한 공기에서 저항이 강한 물 속으로 순식간에 들어가는데 물이 거의 튀지도 않는다고 하네요.

물총새가 수시로 물 속으로 들어가는 것은 먹고 살기 위해 하는 일상적인 행동이지만 사실 여기에는 굉장한 과학 원리가 있습니다. 물이 튀지 않는 이유가 바로 부리와 머리의 형태에 있거든요. 길고 뾰족한 부리와 날렵한 머리가 저항을 최소화 해 물 속에서도 빠르게 먹이를 잡을 수 있게 해 주죠.

이를 모방한 것이 일본의 신칸센 중에서도 간사이 지방에 다니는 ‘신칸센 500계’입니다. 이 열차를 잘 살펴 보면 다른 고속열차보다도 앞부분이 긴 것을 알 수 있는데요. 열차를 디자인 하면서 앞부분을 길게 하기 전에는 소음 문제가 매우 심했지만 물총새의 부리처럼 길고 뾰족하게 디자인하자 소음이 획기적으로 줄고 속도도 빨라지게 되었다고 하네요.

큰 턱으로 나뭇가지 자르는 도토리거위벌레

8월초 숲 속으로 가면 참나무 가지가 많이 떨어져 있는 것이 보입니다. 누가 이런 짓을! 도토리를 좋아하는 멧돼지가 그랬는지, 다람쥐가 그랬는지는 알 수가 없습니다. 또 다시 툭 하고 가지 하나가 떨어집니다. 알고 보니 범인은 몸 길이가 9㎜에 불과한 도토리거미벌레였습니다. 딱정벌레목 주둥이거위벌레과 곤충인 도토리거위벌레는 기다란 주둥이 끝에 있는 ‘큰턱’으로 나무도 자르고 도토리에 구멍도 뚫습니다.

충남 서천 국립생태원에서 열린 생물모방 특별전에 전시된 도토리거위벌레 모형. 생태원은 도토리에 구멍을 뚫고 나뭇가지를 자르는 도토리거위벌레의 생태모방연구를 진행하고 있다. 국립생태원 제공
충남 서천 국립생태원에서 열린 생물모방 특별전에 전시된 도토리거위벌레 모형. 생태원은 도토리에 구멍을 뚫고 나뭇가지를 자르는 도토리거위벌레의 생태모방연구를 진행하고 있다. 국립생태원 제공

도토리거위벌레의 산란기는 7월 말부터 8월 말 사이인데요. 이 벌레는 나무에 매달린 도토리에 구멍을 뚫은 뒤 거기다 알을 낳고, 그 도토리가 붙어있는 가지를 통째로 잘라 바닥에 떨어뜨립니다. 긴 주둥이를 가지에 박고 큰턱을 좌우로 움직이면서 톱질을 시작하는데요. 직경 4㎜정도 되는 나뭇가지를 자르는데 2~3시간 정도 걸린다고 합니다.

가지를 자르는 이유는 도토리 속 알에서 깨어날 애벌레 때문인데요. 애벌레가 도토리를 다 파먹은 후에는 밖으로 나와 땅속으로 들어가 겨울을 보내기 때문이죠.

주둥이에 달린 그 작은 큰턱으로 도토리에 구멍도 뚫고 가지도 자르는 것이 여간 신기한 것이 아닙니다. 어쩌면 뚫고 자르는 방식과 큰턱의 형태를 관찰하면 우리들 삶에 도움이 되는 뭔가가 나올 것도 같습니다. 그래서 국립생태원은 생물모방연구 첫 프로젝트로 도토리거위벌레 큰턱 모방연구를 시작했습니다.

도토리거위벌레의 알을 품은 도토리 단면. 도토리거위벌레는 도토리의 속을 둥글게 파낸 뒤 쌀알 모양의 알을 낳는다. 국립생태원 제공
도토리거위벌레의 알을 품은 도토리 단면. 도토리거위벌레는 도토리의 속을 둥글게 파낸 뒤 쌀알 모양의 알을 낳는다. 국립생태원 제공

연구를 하면서 구멍이 뚫린 도토리를 반으로 갈라봤더니 신기한 점을 발견할 수 있었습니다. 뚫린 구멍은 도토리거위벌레의 주둥이만큼 작은 점으로만 보이지만 단면을 살펴보면 알이 들어있는 공간은 꽤 넓습니다. 도토리에 생긴 구멍은 꼭지 부분은 작지만 밑으로 갈수록 점점 커지는 서양배 모양을 연상케 합니다. 잘려나간 가지의 단면을 살펴보면 전문가가 톱질을 한 것처럼 매끄럽게 수직으로 잘 잘려 있습니다.

도토리거위벌레를 자세히 살펴보면 주둥이 끝부분에 달려 좌우로 갈라진 큰턱이 스크루 같은 형태로 돼 있습니다. 도토리에 주둥이를 박은 뒤 큰턱을 양쪽으로 펼치면서 도토리 내부가 더 많이 파여지지 않을까 합니다. 항상 왼쪽 턱이 오른쪽 턱 위로 올라가고 좌우로도 180도까지 펴졌다 오무려지기도 합니다. 생태원에서는 큰턱의 형태와 자르는 기작, 잘린 형태로 무언가를 만들고 있는데요. 아직은 완성되지 않았지만 조만간 그 결과물을 볼 수 있을 것 같습니다.

도토리에 구멍을 둟고 있는 도토리거위벌레. 국립생태원 제공
도토리에 구멍을 둟고 있는 도토리거위벌레. 국립생태원 제공

사실 이제까지 도토리거위벌레는 해충으로만 여겨졌습니다. 도토리가 채 익기도 전에 나뭇가지를 잘라버리면 다람쥐가 겨울을 날 도토리가 줄어들기 때문이죠. 하지만 이번 연구를 통해서 도토리거위벌레에 대한 시선도 바뀔 수 있지 않을까요.

고대부터 인류에게 아이디어 준 생물들

생태모방특별전이 열린 9월 5일 충남 서천 국립생태원을 찾은 어린이들이 벨크로 체험을 하고 있다. 도꼬마리 가시를 본뜬 벨크로는 어린이가 벽에 매달릴 수 있을 정도로 강력한 접착력을 자랑한다. 국립생태원 제공
생태모방특별전이 열린 9월 5일 충남 서천 국립생태원을 찾은 어린이들이 벨크로 체험을 하고 있다. 도꼬마리 가시를 본뜬 벨크로는 어린이가 벽에 매달릴 수 있을 정도로 강력한 접착력을 자랑한다. 국립생태원 제공

벨크로 테이프는 정말 인류 최대의 ‘히트 상품’이 아닐까 합니다. 운동화가 벗겨지지 않게 하거나 장갑에서 손이 빠지지 않게 꼭 잡아주는 역할을 하기도 하고 테이프나 끈을 대신해 물건을 고정시키기도 하는 등 여러 곳에서 전 인류가 유용하게 사용하고 있으니까요.

벨크로의 원리나 연잎 효과를 발견하기 이전에도 이 같은 생물 모방은 사람들의 생활에 영향을 미쳤습니다. 아주 먼 옛날의 고대인들이 사용하던 돌도끼나 화살촉은 맹수의 날카로운 이빨을 모방해 만들었습니다. 르네상스 시대의 레오나르도 다 빈치는 하늘을 나는 새를 본떠 비행물체를 설계하기도 했죠.

최근의 생물모방 연구는 공학과 만나 유용한 발명품을 만드는 것뿐 아니라 디자인, 건축 등에도 활용되고 있습니다. 아프리카 짐바브웨의 이스트게이트 센터라는 건물은 초원의 흰개미집을 본 따서 만들었는데 한여름에 냉방을 하지 않아도 시원함이 유지된다고 합니다. 건축가들은 이를 위해 흰개미집의 통풍 구조를 세밀하게 분석하기도 했죠.

이렇듯 생물모방연구는 여러 분야가 한데 모이는 융합 학문으로 발전하고 있습니다. 서로 조화를 이뤄야 결과를 낼 수 있는 분야죠. 생태를 잘 관찰하고 잘 이해하면 사람들에게 이로운 새로운 아이디어를 만들어 낼 수 있습니다. 어쩌면 생물모방은 자연을 깊게 탐구하는 사람들에게만 주어지는 뜻밖의 선물일지도 모릅니다.

이은옥 국립생태원 생태기반연구실 선임연구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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