웨인 로터 Wayne Lotter

PAMS 설립해 주민감시단ㆍ단속기동팀 꾸려
최근 3년새 거물 포함 밀렵꾼 1398명 체포
모든 공을 주민ㆍ동료 활동가들에 돌려
괴한들에 피살… 제인 구달 “나의 영웅” 애도
남아프리카공화국 출신 코끼리 보호활동가 웨인 로터는 아프리카 동부 밀렵 전쟁의 전략가 겸 야전지휘관이었다. 그의 상대는 밀렵꾼과 밀수업자, 또 그들을 부리고 비호하는 여러 나라의 부패ㆍ비리 권력자들이었다. 그는 늘 싸움의 선봉이었지만, 공을 평가 받는 자리에는 한사코 나서길 마다하던 “조용한 영웅”이었다. PAMS Foundation.

사냥 나선 사자나 표범이 그러듯, 코끼리 밀렵꾼들도 무리에서 가장 어린 새끼를 맨 먼저 쏜다고 한다. 하지만, 사자와 달리 밀렵꾼에게 새끼는 인질이자 미끼일 뿐이다. 쓰러진 새끼와 식솔을 보호하기 위해 무리가 밀집대형을 이루게 하려는 것이다. 그들이 노리는 것은 물론 상아(엄니)다. 머리뼈 속으로 1/3가량 박혀 자라는 상아를 채취하기 위해서는 무참히 칼질을 하거나 머리를 통째로 잘라야 한다. 그래서 밀렵꾼들은, 상아가 있든 없든, 대개 무리 전체를 도륙한다. 아프리카 자연공원 파크 레인저(Park Ranger, 공원 감시원) 출신 코끼리 보호운동가 웨인 로터는 “그 참경은 말로는 표현할 길이 없다. 매번 위장을 쥐어 짜듯(stomach knots) 고통스럽다. 그걸 지난 3년 사이에만 100번도 넘게 보아왔다”고, 2014년 인터뷰에서 말했다.

코끼리의 지능 혹은 기억력을 두고 오가는 이야기들을 일일이 과학과 속설로 나누는 건 불가능하다. 믿기지 않는 이야기도 물론 많다. 이를테면 “코끼리가 인간을 보면 엄니를 숨기려 한다”는, 다큐멘터리 ‘The Ivory Game’에 출연한 한 파크레인저의 말이 그렇다. 아이의 몸짓에서 천재성을 찾는 부모의 심정 같은 것일지 모르지만, 그의 확신 혹은 경험적 추론을 허풍이라고 치부하기도 힘들다. 지난 해 미국 콜로라도주립대 연구팀은 중앙아프리카공화국 드장가 정글에서 20년간 축적한 데이터를 근거로 아프리카 숲 코끼리(forest elephant)가 초원 코끼리(savannah elephant)에 비해 초산시기가 훨씬 늦고(12살→23살), 둘째 터울도 길어졌다는 (3~4년→4~5년) 사실을 발표했다. 연구팀은 “인간이 끼친 스트레스가 원인일 것”이라고 밝혔다.(Journal of Applied Ecology, 2016.9) 2002~2011년 사이 이 종은 62%나 격감했고, 주된 원인이 밀렵이었다. 새끼가 무리 전체에 끼치는 엄청난 생존 부담 때문이라는 추론도 가능할지 모른다.

영국의 글로벌 환경조사 NGO인 ‘Environmental Investigation Agency’의 2014년 보고서는, 1970년대 약 130만 마리에 달하던 아프리카 코끼리가 2014년 41만9,000마리로 줄었다고 밝혔다. 그 이유도 서식지 감소 등 환경적 요인을 제외하면 단연 내전과 밀렵이다. 1960년대 독립과 거의 동시에 시작된 아프리카 내전 사태는 서부 라이베리아, 나이지리아를 거쳐 중부 콩고민주공화국(옛 자이레), 중앙아프리카공화국, 우가다, 르완다, 부룬디, 앙골라, 잠비아 등지로 확산됐다. 이제 아프리카 코끼리는 대부분 남아공 등 남부와 케냐 탄자니아, 우간다 등 동부 사바나지대에 몰려 있다. 밀렵의 온상도 당연히 그곳이다. 그 중 탄자니아는 ‘밀렵의 진원지(epicenter)’라 불린다. 북부 세렝게티 초원과 세계 최대면적의 야생 낙원이라는 남부 셀로스(Selous) 자연보호구역이 있고, 61년 독립 이후 95년까지 지속된 일당지배체제 하의 상대적 정치 안정과 절대적 부패가 있었다. 최적의 밀렵 조건이었다.

밀렵이 기승을 부린 건 크게 두 차례였다. 77~87년 사이 탄자니아 코끼리는 11만 마리에서 5만5,000마리로 딱 절반이 줄었다. 느슨한 밀렵 감시와 경미한 처벌, 권력자들의 비호와 뒷돈 거래, 미국과 영국 홍콩 일본 등 소위 선진국 부유층의 게걸스러운 상아 수요. 지금이나 그때나 탄자니아 경제의 기둥이 관광업이었다. 대표상품인 코끼리의 격감과 국제사회의 비난에 위기감을 느낀 탄자니아 정부가 발의해 국제자연보호연맹(IUCN)이 내린 결정이 89년 ‘멸종위기 야생동식물 국제거래 협약(CITES)’에 근거한 상아 국제무역 금지조치였다. 2006년 탄자니아 코끼리는 정부 집계 14만2,788마리로 회복됐다.

수난시대가 다시 시작된 게 그 무렵이었다. 2차 위기의 주요 수요국은 단연 중국이었다. 국제범죄조직이 가담하면서 밀렵ㆍ밀수도 마약 제조ㆍ유통을 방불케 할 만큼 조직화했다. 마이크로소프트사 공동창업자이자 환경운동가인 폴 앨런(Paul Allen)의 공익재단 ‘Vulcan’이 700만 파운드를 들여 2013년 말부터 1년 반 동안 15개국에 걸쳐 벌인 ‘2016 아프리카 코끼리 센서스’ 결과 2007~2014년 아프리카 초원 코끼리는 약 30%(14만4,000마리)가 밀렵으로 희생됐다. 공급량보다 수요가 더 빠르게 커져갔다. 베트남, 캄보디아, 태국 등지를 거쳐 중국 암시장에서 거래되는 상아 가격은 2002년 킬로그램당 120달러에서 2014년 2,100달러로 폭등했다. 아프리카 밀렵꾼이 받는 돈은 kg당 5~7달러 선. 중국은 89년 이전 채취된 상아 거래는 지금도 합법이어서, 수십 만 달러의 가격표가 달린 장식용 상아가 대형 쇼핑몰에 버젓이 진열돼 있다. 당연히 밀렵ㆍ밀수 상아에도 합법 보증서류가 첨부돼 있고, 그 과정에서도 뒷돈이 오간다. 조사팀은 2014년 말 현재 아프리카 초원코끼리는 35만2,271마리가 있다고 밝혔다. 탄자니아의 코끼리는 2009년 10만 9,051마리에서 2014년 4만3,330마리로 약 60%가 줄었다.

코끼리 보호운동은 그린피스의 포경금지 캠페인만큼이나 연륜도 많고 저변도 넓다. 내로라하는 야생동물 보호단체들이 직ㆍ간접적으로 개입했고, 벌컨 외에도 레오나르도 디카프리오 등 명사들의 재단도 거들어왔다. 현지 NGO도 많고, 국립공원 등을 지닌 각국 정부도 법과 공권력을 동원해 밀렵 단속을 벌인다. 하지만 밀렵 전쟁에서 그들은, 저 수치가 보여주듯, 내도록 패배해왔다. 부패와의 전쟁에서 패배했다고 할 수도 있을 것이다. 국제투명성기구 국가별 부패지수에서 탄자니아는 2013년 111위(177개국 중)를 기록했다.

웨인 로터(오른쪽)와 크리시 클라크(왼쪽)는 2009년 탄자니아에서 PAMS재단을 설립해 코끼리 밀렵 단속의 패러다임을 바꿨고, 그럼으로써 밀렵 전쟁 승리의 교두보를 확보했다. 친구 제인 구달(가운데)은 자신의 홈페이지에 "로터는 나의 영웅이자 우리 모두의 영웅"이라 썼다. PAMS Foundation

남아공 크루거국립공원 파크레인저 출신 탄자니아의 코끼리 보호활동가 웨인 로터(Wayne Lotter)는 저 추세를 반전시킨 주역이었다. 밀렵꾼들의 칼리시니코프보다 교육이 더 강하다고 믿었던 그는 동료 활동가 크리시 클라크(Krissie Clark), 앨리 나망가(Ally Namanga) 등과 함께 2009년 ‘PAMS(Protected Area Management Solutions) 재단’이라는 작은 단체를 설립, 사바나 초원지대 인근 주민들을 교육하며 일종의 첩보 네트워크인 수천 명의 ‘주민 환경감시단’을 조직했다. 그리고, 사후 수습에 치중하던 정기 순찰ㆍ단속 방식에서 탈피해 첩보-긴급출동의 사전적 대응으로 활동 패턴을 바꿔나갔다. ‘정보 순찰(ILPㆍIntelligence-Led Policing)이라 불리는 그 방식으로 그들은 2011년 8월부터 2014년 2월까지 563명의 밀렵꾼을 체포, 당국에 넘겼다. 탄자니아 정부를 설득해 2014년 밀렵단속 특별기동팀인 ‘국내ㆍ외 중범죄 조사국(NTSCIU)’을 꾸리고, 교육시킨 것도 그들이었다. 단속ㆍ수사기법 개선과 드론, 약간투시경 등을 포함한 장비 현대화로 NTSCIU와 PAMS는 최근 3년여 사이 1,398명을 체포, 약 78%의 유죄 선고를 받아냈다. 수천 마리의 밀렵을 주도하고도 얼굴조차 알려지지 않았던 ‘쉐타니(Shetani, 스와힐리어로 악마라는 뜻)’라는 별명의 메튜 말리앙고(Matthew Maliango), 통역사 출신 중국 기업인으로, 중국-아프리카 비즈니스위원회 사무총장겸 부회장이란 공식 직함을 달고 암시장에선 ‘상아의 여왕(Queen of Ivory)’이라 불리던 거물 밀수업자 양 펭 글랜(Yang Feng Glan) 등도 그들이 체포했다. 대표적 코끼리 보호 단체 중 하나인 ‘Elephant Crisis Fund’의 평가처럼 “탄자니아가 코끼리 밀렵과의 전쟁에서 거둔 의미 있는 첫 승리”(LATimes)였다.

웨인 로터는 1965년 12월 4일 남아공 요하네스버그에서 태어나 90년 환경학(conservation)으로 석사 학위를 받았다. 졸업 후 정부 개발국 야생보존팀에서 1년 남짓 일한 뒤 파크레인저로 변신, 약 25년간 활동했다. 그가 어쩌다 환경학을 전공하게 됐는지, 왜 사무실에서 초원으로 나왔고, 왜 코끼리에게 꽂혀 결혼한 아내와 두 딸을 고국에 두고 밀렵의 가장 뜨거운 전선이던 탄자니아로 건너와 살다시피 했는지, 직접 말한 적이 없다. 몇 안 되는 인터뷰에서도 그는 좀체 자신을 주어로 앞세우지 않았다. 2015년 10월 ‘뉴스위크’ 기자와 만난 그는 우리(PAMS)와 그들(NTSCIU, 파크레인저, 지역 주민)의 이야기를 주로 전하며, “그들이 희망”이라고 말했다. 그는 밀렵 감시를 축구에 비유했다. “레인저들은 이를테면 골키퍼입니다. 마지막 방어선이죠. 수비수는 코끼리 서식지를 둘러싼 마을 주민들입니다. 그들이 일종의 완충지대를 형성해 밀렵 정보를 제공하죠. NTSCIU같은 기관은 공격수입니다. 밀렵꾼을 체포하고 배후의 범죄조직을 소탕하는 거죠.” 그는 감독이자 코치였다. 지난 3월 남아공 넬스프루이트의 로벨드(Lowveld) 고교 동창회지 인터뷰에서도 그는 온통 밀렵 단속 얘기만 했다. 처벌이 여전히 미약하다는 이야기, 범죄집단은 뱀이 아니라 문어 같아서 머리를 잘라도 다리는 움직인다는 이야기, 범죄자들에게 매수 당하지 않고 제대로 밀렵 단속을 하려면 여러 기관이 서로를 견제하며 함께 움직여야 한다는 이야기…. NTSCIU 창설 준비로 한창 바쁘던 2014년 2월, 그는 ITV에 기고한 짤막한 글- ‘상아밀렵전쟁, 발상의 전환이 필요하다’’에서 정보 순찰ㆍ단속과 주민 교육 및 협력 필요성을 역설하며, 현장밀렵 근절에 앞서 병든 뿌리를 치유해야 한다고, 밀렵은 사회적ㆍ정치적 문제라고 썼다. 그는 오직 저런 말과 활동으로 자신이 내린 중요한 선택들의 배경을 드러내 보였다.

범죄나 사고로 인한 갑작스런 죽음은 희생자(와 가족)의 미래뿐 아니라 공동체의 유산이어야 할 개인의 과거까지 약탈한다. 그는 2017년 8월 16일 밤 11시 50분 탄자니아 다르살람 시내 마사키(Masaki) 거리의 택시 안에서 괴한의 습격으로 숨졌다. 외신은 괴한 두 명이 그가 탄 택시를 차로 가로막은 뒤 총을 쏘았다고 전했다. 경찰은 범인들이 로터의 노트북 세 대와 휴대폰, 문서 등을 훔쳐 도주했다고 밝혔다.

웨인 로터가 부회장을 맡은 적이 있는 국제레인저연맹에 따르면 최근 10년 사이 전 세계에서 약 1,000여 명의 레인저가 살해 당했다. 대부분 아프리카에서, 밀렵 현장 안팎에서 희생됐다. 그가 숨지기 직전 약 보름 사이에만도 6명의 파크레인저가 살해됐다. PAMS는 로터 가 상시적인 살해 협박을 받아왔다고 전했다.

수많은 국제 환경단체와 활동가 및 생태학자, 야생동물 보호에 힘써온 영국 윌리엄 왕세자 등이 각각 성명 등을 통해 그의 죽음을 애도하며 밀렵조직의 야만적 범죄를 성토했다. 탄자니아 서부 곰베에서 침팬지를 연구한 동물학자이자 환경운동가 제인 구달(Jane Goodall, 1934~)은 자신의 홈페이지에 “그는 나의 영웅이었고, 많은 이들의 영웅이었다”고 썼고, 누구보다 그와 가깝게 지냈을 친구이자 셀로스 멘즈(Manze)보호단체 ‘Essential Destinations’의 수석 생태학자 맬컴 리엔(Malcolm Ryen)은 “세계가 가장 어두운 날을 맞이했다”며 비통해 했고, 상아 등 야생동물 밀수 탐사 네트워크인 ‘Traffic’의 책임자 톰 밀리켄(Tom Milliken)은 “누가 그의 역할을 대신할 수 있을지 모르겠다”고 말했다. 그들 모두, 그리고 그를 알던 WWF 등 국제 환경단체 관계자 대다수는 그의 겸양을 특히 기렸다. “그는 각광받는 자리를 피해 늘 뒷자리에 머물고자 했고”(‘Save the Elephants’ 설립자 아이언 더글러스 해밀턴), “조용한 영웅”(탄자니아 자연관광부 밀렵감시 국장 로버트 만데)이었으며, “PAMS 성공의 공조차 주민들과 활동가들에게 돌렸다.”(Guardian) 세계야생동물보호기금(IFAW) CEO인 애즈딘 도운스(Azzedine Downes)는 가디언 인터뷰에서 “그는 탄자니아 코끼리의 야만적 밀렵을 끝장낸 가장 중요한 동력이었다”고 말했다.

다큐멘터리 'The Ivory Game'에 웨인 로터는 출연을 사양하며 동료 파크 레인저들을 추천했다. 다큐멘터리는 "지금도 코끼리는 매 15분마다 한 마리씩 밀렵당하고 있다"고, "전쟁은 끝나지 않았다"고 밝혔다.

벌컨 등이 돈을 대고 디카프리오가 제작자로 참여한 2016년 다큐멘터리 ‘The Ivory Game’은 NTSCIU의 쉐타니 체포 작전을 중심으로 탄자니아 등 동부 코끼리 밀렵 및 상아 유통 실태를 고발한 작품이다. 거기에는 NISCIU 책임자서부터 여러 명의 파크레인저와 NGO 활동가, 중국인 비밀조사요원, 잠비아 국립공원 정보조사국 최초 여성국장으로 의욕적인 활약을 벌이는 조지나 카망가(Georgina Kamanga) 등이 직접 출연했다. 출연 의뢰를 받은 웨인 로터는 자기 대신 파크 레인저들을 출연시켜 달라며 사양한 뒤, 틈 날 때마다 촬영팀을 찾아와 자문하며 스텝과 출연진들을 챙겨주곤 했다고 한다.

8월 23일 다르살람 바오밥 마을에서 열린 추도식 참석자들은 스와힐리어와 영어, 중국어로 ‘true hero’란 문구를 새긴 검은 T셔츠를 입고, ‘조용한 영웅 silent hero’과 작별했다. 참석자들은 5만 달러를 목표로 기금을 모았다. 우선 장례식과 유해 운구 비용을 마련하기 위해서였고, 얼마라도 남으면 남아공의 유족에게 전해주기 위해서였다. 최윤필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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