네 번째 연출작 ‘메소드’ 개봉을 앞두고 만난 방은진 감독은 “영화로 많은 사람들을 행복하게 할 수 있으면 좋겠다”고 말했다. 최지이 인턴기자

나는 꿈 많은 아이였다. 아버지와 덕수궁에서 열린 국전에 다녀오면 화가가 되고 싶었고, 발레를 보고 나면 발레리나가 되고 싶었다. 네 살 때 대한극장에서 ‘사운드 오브 뮤직’을 보고 영화 속 또래 아이들이 노래하는 모습에 나를 투영하며 환상에 사로잡히기도 했다. 어머니 말씀으로는 어른 도움 없이 스스로 옷을 입을 수 있게 된 뒤로는 하루에도 세 번씩 옷을 갈아 입었다고 한다. 내 꿈도 그렇게 변덕스러웠다.

초등학교 4학년 때 KBS 어린이합창단에 들어갔다. 혼자서 오디션을 봤고, 혼자서 방송국에 다녔다. 무대에서 노래하고 박수 받는 순간들이 행복했다. 방송국 스태프들에게 예쁨 받는 것도 좋았다. 그러면서 한편으로는 엄마 손을 잡고 온 친구들 사이에서 주눅들지 않으려 무척이나 애썼다. 어쩌면 부모의 뒷바라지 없이도 제 몫을 다하는 똘똘한 아이인 척 ‘연기’를 하고 있던 것일지도 모른다. 방송국에 오가면서 몇 편의 드라마에도 출연했다.

중학교에 들어가며 합창단 생활은 그만뒀지만, 어렴풋하게 내 재능이 무엇인지 깨달았던 것 같다. 그 즈음 연극을 만난 건 운명이었다. ‘고도를 기다리며’ ‘느릅나무 그늘의 욕망’ ‘유리 동물원’ 등 명작 무대를 섭렵했다. 고등학교 때 연극반에 들어가면서 배우로 살겠다고 마음을 굳혔다.

연극을 하더라도 생계를 유지할 수단이 필요하다는 생각에 대학에선 의상학을 전공했다. 졸업 무렵 패션회사에서 잠시 일한 적도 있지만, 무대에 대한 열망이 나를 놔주지 않았다. 무작정 극단 문을 두드렸다. 화장실 청소부터 시작해 1989년 무대에 데뷔했다. 연극계에서 비교적 빨리 인정 받았다. 1992년 서울연극제 최우수연기상을 수상하고, 이듬해엔 백상예술대상 연극 부문 신인상도 받았다. 1994년에 ‘지하철 1호선’ 초연 멤버로 참여해 이름이 더 알려졌다. ‘제2의 윤석화’라는 과분한 칭찬도 들었다.

어느 날 특별한 기회가 찾아왔다. 임권택 감독님의 영화 ‘태백산맥’ 캐스팅 제의였다. 영화라는 새로운 세계가 나를 뜨겁게 품어줬다. 1995년 두 번째 영화 ‘301 302’에선 청룡영화상, 영평상, 춘사영화상을 휩쓸었다. 나를 원하는 시나리오가 쏟아졌다. 영화배우로서 전성기가 시작되고 있었다.

하지만 정해진 시간에 연습을 하고 막을 올리는 연극에 익숙해져 있던 나는 남모르게 영화 연기에 어려움을 겪었다. 감정 연기를 하다가 카메라 앵글 밖으로 벗어나기 일쑤였다. 영화가 만들어지는 과정을 배울 필요가 있겠다고 생각했다. ‘301 302’를 연출한 박철수 감독님을 따라다니며 편집과 믹싱 등 후반작업을 지켜봤다. 카메라 렌즈가 몇 ㎜인지에 따라 구도가 달라진다는 것도 박 감독님을 통해 알게 됐다. 어쩌면 그때의 경험이 나를 영화감독의 길로 이끈 원체험이 아니었을까 싶다.

방은진의 감독 데뷔작 ‘오로라 공주’는 한 여인의 잔혹한 복수극을 그린 스릴러 영화다.

연출에 뜻을 품게 된 결정적 계기는 1998년 즈음이었다. 친한 영화인의 단편영화에 조연출로 참여하게 됐는데, 현장 스태프 일이 너무나 재미있었다. 한마디로 체질에 맞았다. 나의 또 다른 가능성을 발견했다고 할까. 그러던 어느 날 명계남 당시 이스트필름 대표님이 나를 불렀다. 그 자리에서 마르시아스 심의 소설 ‘떨림’의 각색을 제안했다. 우연인지 운명인지도 모르게 나는 감독 지망생이 됐다.

‘떨림’은 상업성이 부족해 무산됐지만, 그 다음 시나리오인 ‘첼로’는 조금 더 진척돼 캐스팅과 투자 단계까지 이르렀다. 그러나 이 영화도 남자주인공 캐스팅 문제로 끝내 좌초하고 말았다. 그러는 사이 4년이 훌쩍 흘렀다. 시나리오에 매달리느라 생활은 곤궁해졌고 나는 점점 피폐해져 갔다. 감독의 꿈도 멀어져만 갔다.

그때 강우석 감독님이 ‘입질’이라는 시나리오를 내밀었다. ‘첼로’ 투자자이기도 했던 강 감독님의 의중을 읽을 수가 없었다. 나를 시험하시려는 건가 싶어 원망스러웠다. 좀 더 솔직하게 말하면, 내 연기보다 못한 작품을 만들까 봐 두려웠다. 그런 나를 다잡아준 분이 이창동 감독님이다. 직접 시나리오 작법을 가르쳐주셨고, 혹독한 조언과 따뜻한 격려를 아끼지 않으셨다. “내가 영화감독 하겠다는 사람이 있으면 도시락 싸 들고 따라다니며 말리는데 말야, 방은진 당신은 할 수 있을 거 같아.” 이 한 마디가 날 일으켜 세웠다. 그 말씀을 가슴에 품고 힘겨운 시간을 건넜다.

‘입질’은 내 손을 거쳐 2005년 ‘오로라 공주’라는 제목의 영화로 마침내 세상에 나왔다. 감독 준비 5년 만이다. 명계남, 강우석, 이창동. 나의 연출 재능을 먼저 발견해 주고 지원을 아끼지 않았던 세 분이 아니었다면 ‘감독 방은진’은 존재하지 않았을지도 모른다.

‘용의자X’는 히가시노 게이고의 소설 ‘용의자X의 헌신’을 토대로 만들어졌다.
‘집으로 가는 길’은 2004년 프랑스 오를리 공항에서 마약 운반범으로 오인되어 감옥에 수감된 평범한 한국인 주부의 실화를 그린 작품이다.

어느새 영화감독으로 살아온 시간이 10년을 넘겼다. 2012년 ‘용의자 X’와 2013년 ‘집으로 가는 길’을 개봉하며 쓴맛과 단맛을 두루 맛봤다. 그 사이 나에게 왔다가 다시 떠나간 영화도 있었다. 나는 왜 영화를 만드는 걸까. 요즘 나 자신을 새삼 되돌아본다. 우리는 모두 행복을 추구하며 살지만 그 행복을 어떻게 나누느냐가 더 중요하다고 생각한다. 그런 바람을 실현시켜준 것이 나에겐 영화였다. 영화를 만들면서 ‘행복은 나눌수록 커진다’는 말이 거짓이 아니란 걸 깨닫고 있다.

다음달 2일엔 네 번째 영화 ‘메소드’가 개봉한다. 이 영화는 3억원짜리 저예산 영화다. 박성웅이 ‘노개런티’와 ‘첫 회식 비용’까지 자청하며 선뜻 출연해줬다. 오승훈은 크랭크인 3일 전에 캐스팅됐다. 고작 한 달 만에 촬영을 마쳤다. “매 순간 착취했다”고 농담 아닌 농담을 하면서 말이다. 상업영화 감독이라 스스로 정의하며 20억원 이하로는 영화를 못 찍는다고 생각해 왔는데, 이렇게도 영화를 만들 수 있다니. 또 하나 배웠다. 인생 참 재미있구나 싶다.

‘메소드’는 배우들의 이야기를 그린 영화다. 내 경험도 많이 녹아 있다. 감정은 변덕스럽지만 연기하는 순간만큼은 ‘진짜’여야 한다고, 나는 늘 말해 왔다. 그러기 위해선 삶을 잘 살아내는 것이 중요하다. 어떤 인생을 살았느냐가 연기에 담기고, 배우의 품격을 만든다. ‘배우가 되기 전에 사람이 되라’는 말을 깨닫기까지 나도 10년 걸렸다. 무슨 일이든 10년은 해봐야 한다고 생각하는 내가 배우 생활 10년과 영화감독 생활 10년을 이 영화에 버무려냈다. 최소한 가짜를 담진 않았다고 자신한다. 관객이 어떻게 봐주실지 궁금하다.

<방은진 감독의 구술을 1인칭 시점으로 재구성했습니다.>

정리=김표향 기자 suzak@hankookilbo.com

신작 ‘메소드’는 베테랑 연극배우와 아이돌 출신 신인배우가 2인극을 하며 감정의 혼란을 겪는 이야기를 그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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