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957년 영화 'OK목장의 결투' 포스터.

미국 개척시대 ‘총잡이’들의 영웅 서사는 대부분 과장ㆍ미화됐다. 그들은 영화에서처럼 정의롭지도 로맨틱하지도 않았고, 총 솜씨도 그리 뛰어나지 않았을지 모른다. 법보다 총이 앞서고, 법의학보다 전설 같은 목격담이 영향력을 발휘하던 시대였다. 살아남은 자가 강한 자이고 생존이 곧 정의라는 천박해지기 쉬운 미국 실용주의 신화가 어쩌면 저 개척시대의 로망과 이어져 있을지 모른다.

‘OK 목장의 결투’ 배경인 아리주나주 툼스톤(Tombstone)은 1879년 은광이 개발되면서 급부상한 전형적인 ‘붐 타운(boom town)이었다. 100명에 불과하던 마을 주민은 2년 새 7,000명으로 불어나 있었다. 술집, 매춘ㆍ숙박업소, 도박장이 우후죽순처럼 생겨났고, 치안도 불안해졌다. ‘정의의 보안관’ 와이어트 어프(Wyatt Earp) 형제가 툼스톤에 들어온 건 79년 12월이었다. 어프 삼형제(Virgil, Morgan, Wyatt)는 붐타운을 옮겨다니며 매춘업과 술집, 보안관업을 겸하던, 결속력 강한 형제였다. 물론 당시의 매춘ㆍ도박업에 대한 인식이 지금 같지 않았겠지만, 형제는 무법의 신흥 마을에서 이권과 사법권을 패키지로 운영하며 세력을 키워갔다. 맏형인 버질이 경찰이 된 것은 1877년. 그는 남북전쟁 당시 북군(Union Army)으로 복무했다. 그의 영향으로 두 동생도 보안관 일을 겸업했다.

그들의 상대는 ‘소도둑’ 빌리 클레어본과 목축업자 클랜턴 형제(Ike, Bill Clanton), 맥로리 형제(Tom, Frank) 등 토박이 남부 카우보이들이었다. 그들은 북군 출신 도시인들과 불화했고, 특히 보안관 배지까지 단 어프 일가와 사이가 나빴다. 클랜턴 등 일가가 소 도둑질을 했는지, 얼마나 했는지는 알려진 바 없다.

어프 일가에 떠돌이 술꾼 건맨 존 할리데이(전직 치과의사라 ‘닥’ 할리데이라 불렸다)가 가세해 양측이 맞붙은 게 81년 10월 26일 오후 3시. 실제 결투 장소는 OK목장이 아니라 서쪽 인근 한 사진 스튜디오였다. 2m 안팎의 거리를 두고 마주선 무리는 약 30초 간 30여 발을 발사했다. 빌리와 맥로리 형제가 죽었고, 버질과 모건 닥 할리데이는 부상을 입었고, 아이크와 빌리 클레어본은 도망쳤다. 그들은 뒷날 무장도 하지 않았다고 주장했다.

배우 테리 클랜턴 등 클랜턴 일가는 2000년대 초 클랜턴 가문의 명예 회복운동을 벌였다. 한 마디로 경찰권 남용의 무고한 희생자라는 거였다.

최윤필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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