일제는 한국을 병합하자마자 한성부를 경성부로 개칭하고 경기도에 편입시켰다. 수도 서울의 권위와 상징을 박탈한 것이다. 게다가 서울의 마을 이름까지 일본식으로 바꿨다. 그 중에는 침략자나 지배자의 이름을 딴 것이 10여 개나 되었다. 이들에 얽힌 사연을 시대순으로 간단히 소개하면 다음과 같다.

다케조에초(竹添町)는 갑신정변(1884년) 때 한국 민중의 공격을 피해 황급히 일본으로 달아난 일본공사 다케조에 신이치로(竹添進一郎)의 성을 딴 이름이다. 그는 1885년 1월 서울에 다시 부임했는데, 일본공사관이 불타버려 서대문 밖 의주로 민가에 거주했다. 일제는 그의 거주지 일대에 다케조에초라는 이름을 붙였다.

오시마초(大島町)는 청일전쟁(1894-95년) 때 한국에서 청군을 격퇴한 일본군 혼성여단장 오시마 요시마사(大島義昌) 소장의 이름을 땄다. 그의 군대는 1894년 7월 한강변 만리창 일대에 진을 치고, 남대문에 진입하여 서울을 점령했다. 일제는 그의 공적을 기려 만리창 일대를 오시마초라 불렀다.

호라이초(蓬萊町)도 청일전쟁과 관련이 있다. 당시 서울 거주 일본인은 청군이 승리할까 봐 전전긍긍했다. 그런데 오시마 군대가 도성 안에 침입해 일본인을 구했다. 그들은 마치 전설상 신선이 산다는 봉래산에 든 것 같이 안도했다. 이에 일제는 일본군이 진입한 남대문 밖 일대에 호라이초라는 이름을 붙였다.

하세가와초(長谷川町)는 러일전쟁 때 서울을 점령한 한국주차군사령관 하세가와 요시미치(長谷川好道) 대장의 이름을 땄다. 하세가와는 공동(公洞)에 있는 대관정(大觀亭)에 주둔하고, 이토 히로부미(伊藤博文)를 호위하여 ‘을사늑약’을 체결했다(1905년). 나아가 고종 황제가 헤이그 만국평화회의에 특사를 파견하여 이 조약의 무효를 주장하자, 강제로 퇴위시키고 순종황제를 즉위시켰다(1907년). 하세가와는 한국강점 후 제2대 조선총독으로 재임했다(1916~19년). 하세가와쵸는 그의 공적을 기린 지명이다.

오카자키초(岡崎町)는 서울 주둔 일본군 제13사단장 오카자키 세이죠(岡崎生三) 중장의 이름을 땄다. 그의 군대는 서울역과 용산역 사이를 관통하는 한강로를 닦았다(1907년). 또 고종 황제의 강제 퇴위에 저항하는 한국인을 탄압했다. 이런 연유로 오카자키초라는 지명이 생겼다.

후루이치초(古市町)는 경부철도를 부설하고 통감부 초대 철도관리국장을 지낸 후루이치 고이(古市公威) 공학박사의 이름을 딴 지명이다. 경부철도는 일본의 한국침략을 선도한 동맥이었다. 일제는 그의 관저가 있던 서울역 맞은편 남산 기슭 마을에 후루이치초라는 이름을 붙였다.

일본 천황과 관련된 지명도 있다. 오나리초(御成町)는 다이쇼(大正) 천황이 황태자 시절인 1907년 10월 서울에 와서 5일 간 머문 것을 기념하여 붙인 지명이다. 일제는 그의 이동을 편하게 하기 위해 남대문 양쪽 성벽을 허물고 문밖 연못을 메웠다. 이로써 500년 이상 보전된 서울의 도성은 훼손되기 시작했다. 일제는 ‘황태자께서 황공하게도 다녀가셨다’라는 뜻을 담아 남대문 근처 마을에 오나리초라는 이름을 달았다.

메이지초(明治町)는 메이지 천황의 연호를 땄다. 이곳은 조선왕조 때 명례동 또는 명동이라 불렸다. 메이지 천황은 대한제국을 폐멸시킨(1910년) 장본인인데, 일제는 서울의 가장 번화한 거리에 그의 이름을 붙였다. 게다가 가까운 남산에 그를 신으로 떠받드는 조선신궁을 건립했다(1925년).

한국은 1945년 8월 15일 일제의 식민지지배에서 해방되었다. 서울시민은 날마다 마을 이름을 일본식으로 부르는 게 무척 민망하고 억울했다. 서울시민은 일본식 지명의 폐기에 나섰다. 먼저 1946년 9월 18일 경성부를 서울특별시로 고치고, 경기도에서 분리 승격시켰다. 이로써 서울은 독립국 수도의 위상을 되찾았다. 곧이어 10월 1일 가로 이름 ○○통을 ○○로로, ○○정목을 ○○가로, 마을 이름 ○○정을 ○○동으로 개정했다. 일본식 거리 이름과 마을 이름에는 한국의 역사와 문화를 대표하는 위인의 이름을 붙였다. 그리하여 서울에서 일본식 지명은 거의 사라졌다. 한국식 마을 이름의 부활은 한국의 역사와 문화 곧 한국인의 정체성 회복을 의미했다.

정재정 서울시립대 명예교수

인기 기사

web_cdn 저작권자 © 한국일보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

오피니언 최신기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