읽는 재미의 발견

새로워진 한국일보로그인/회원가입

  • 관심과 취향에 맞게 내맘대로 메인 뉴스 설정
  • 구독한 콘텐츠는 마이페이지에서 한번에 모아보기
  • 속보, 단독은 물론 관심기사와 활동내역까지 알림
자세히보기 닫기

알림

[기억할 오늘] 베스트팔렌 조약(10월 24일)

입력
2017.10.24 04:40
30면
0 0
베스트팔렌 뮌스터 조약 조인식 장면. 네덜란드 화가 헤라르트 테르뷔르흐(Gerard Terburg) 작품.
베스트팔렌 뮌스터 조약 조인식 장면. 네덜란드 화가 헤라르트 테르뷔르흐(Gerard Terburg) 작품.

1648년 5월 15일과 10월 24일, 신성로마제국 베스트팔렌(독일 북서부)의 두 도시 뮌스터와 오스나뷔르크에서 각각 황제 페르디난트 3세와 프랑스, 스웨덴 대표가 ‘30년 전쟁(1618~1648)’ 종식을 위한 ‘베스트팔렌 조약’을 맺었다. 승전국이 패전국에게 일방적으로 서명을 강요한 형식이 아니라 전쟁에 관여한 거의 전 유럽의 왕국과 제후국, 공작령 대표들이 참여해, 5년에 걸친 협상 끝에 이룬 이 조약은, 최초의 국제조약이자 근대 국제법의 시초라 불리기도 한다.

베스트팔렌 조약으로 신성로마제국은 사실상 와해됐고, 합스부르크 왕가는 유럽 맹주의 지위를 잃고 본가 격인 오스트리아로 영향력이 위축됐다. 16세기 유럽 최강자로 통하던 가톨릭 동맹국의 맹주 스페인도 몰락했다. 긴 전쟁을 치른 유럽 전역이 살인과 강도 강간 전염병으로 피폐해졌다. 실질적 전장이던 독일 지역은 인구의 1/2~1/3을 잃고, 결속력 없는 수많은 분권 제후국들로 분열했다. 대신 큰 전쟁 피해 없이 알자스-로렌 지방을 획득한 중부유럽의 프랑스와 영토를 확장한 북유럽의 스웨덴이 강성해졌고, 스위스와 네덜란드가 독립했다.

베스트팔렌 조약은 루터파와 칼뱅파 개신교에 가톨릭과 동등한 국제법적 지위를 보장했다. 다시 말해 가톨릭 중심의 중세적 질서를 와해시킴으로써 종교개혁을 완결 지었고, 영토의 경계를 전면적으로 재편함으로써 유럽 근대 국가체제의 기틀을 다졌다.

‘30년 전쟁’은 신성로마제국 황제 페르디난트 2세의 개신교 탄압에서 비롯됐다. 보헤미아(체코)의 루터파 교회 2곳을 폐쇄한 데서 시작된 분란은 제국 내분을 거쳐 네덜란드 덴마크 스웨덴 스페인 프랑스 등 거의 전 유럽 국가가 직간접적으로 개입한 국제전쟁으로 비화했다. 그 전쟁은 북유럽 중심 신교 국가 및 제후국들의 프로테스탄트 연합과 신성로마제국 수백 개 영방(領邦)의 가톨릭 영주들, 스페인 등 남부 유럽의 가톨릭연맹 국가간 전쟁이었으나, 옛 십자군 전쟁이 그러했듯 금세 정치ㆍ이권 전쟁으로 비화했다. 조약의 최대 수혜국으로 프로테스탄트 연합을 이끈 프랑스는 가톨릭 국가였다.

최윤필 기자

기사 URL이 복사되었습니다.

세상을 보는 균형, 한국일보Copyright ⓒ Hankookilbo 신문 구독신청

LIVE ISSUE

댓글0

0 / 250
중복 선택 불가 안내

이미 공감 표현을 선택하신
기사입니다. 변경을 원하시면 취소
후 다시 선택해주세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