영화 '남한산성'의 한 장면. CJ엔터테인먼트 제공

추석 연휴기간 영화 ‘남한산성’(감독 황동혁)을 봤다. 본보 기자출신 소설가 김훈의 동명 원작소설을 영화화한 이 작품은 주화(主和)파 지천 최명길과 척화(斥和)파 청음 김상헌의 한치 양보 없는 팽팽한 설전이 120분 넘게 스크린을 뜨겁게 달군다. 냉엄한 국제 정세에 무지하고 ‘친명반청’(親明反淸) 도그마에 빠져 있던 조선의 지배엘리트들을 보면서 가슴이 먹먹해졌다. 씁쓸한 뒷맛을 남기고 영화관을 빠져나오면서 최근 동네북 신세로 전락한 한국축구가 오버랩 됐다.

영화의 배경은 1636년 병자년 12월14일부터 이듬해 1월30일까지 청나라 군대를 피해 남한산성으로 쫓겨 들어온 조선 제16대 임금 인조를 둘러싼 47일간의 기록물이다. 중원의 지배자로 급부상한 만주족 청나라에 굴복해서라도 나라의 안위를 도모하자는 지천의 주장에, 오랑캐에 결코 고개를 숙일 수 없다는 청음의 결사항전 목소리가 쩌렁쩌렁하다. 그러나 정작 나라의 근본인 백성들은 혹한의 추위와 굶주림에 내몰린 채 속수무책이다.

인조는 명나라와 청나라 사이 중립 외교를 펼치며 전쟁의 위험을 회피하던 광해군 체제를 뒤엎고 1623년 권좌에 올랐다. 이른바 인조반정이다. 인조의 정치적 기반 세력인 서인들은 임진왜란 때 구원병을 보내준 명을 배신하고 청을 섬길 수 없다는 ‘재조지은‘(再造之恩ㆍ나라를 다시 일으켜 세워준 은혜) 유일사상에 빠져 있었다. 더 이상의 퇴로가 없는 고립무원의 남한산성에서 뜻밖에 인조반정 일등공신 최명길이 만고역적의 불명예를 자처하면서 홀로 항복이란 말을 꺼냈다.

신태용 축구 국가대표팀 감독. 연합뉴스

2018 러시아월드컵이 8개월 앞으로 다가왔다. 한국의 9회 연속(아시아국가론 유일하고 전세계를 통틀어 여섯 번째) 월드컵 본선진출 쾌거라는 찬사는 유효슈팅 제로(0)의 부실한 경기력 앞에서 감히 입에 담을 수 없을 정도로 빛을 잃었다.

흔히들 축구 대표팀 경기를 두고 마치 ‘길가에서 집을 짓는 것과 같다’라고 비유한다. 지나가는 사람들마다 한마디씩 툭툭 던지고 보탠다는 의미다. 또 이런 말도 있다. ‘대한민국 국민 절반 이상은 축구평론가이자, 정치평론가다’. 그만큼 많은 관심을 받는다는 뜻일 텐데, 아무리 그렇더라도 최근 한국축구에 쏠린 눈길은 유독 뜨겁다. 2002 한ㆍ일 월드컵 때 대표팀을 4강으로 이끈 거스 히딩크 전 감독을 사령탑에 올려놓지 않으면 백약이 무효일 지경이다.

‘친명반청’ 외골수가 결국 조선을 남한산성에 갇히게 했다면 ‘친히딩크 반신태용’의 이분법이 작금의 한국 축구를 짓누르고 있다. 사태가 이 지경에 이르러서는 그 어떤 합리적이고 이성적인 사고와 해법이 나올 리 만무하다. 성난 여론은 축구협회를 겨냥해 온갖 비난과 조롱으로 분풀이를 하고 있지만 축구협회의 대응은 안일하기만 하다. 지난 19일 정몽규 축구협회장이 기자회견을 열어 ‘국면전환’을 노렸지만 성찰도 부족했고, 구체성도 없었다는 지적이다. ‘나라의 운명이 그곳에 갇혔다’는 영화 남한산성의 카피처럼 한국 축구의 명운이 네티즌들의 성난 팬심에 갇힌 꼴이다.

영화와 역사는 삼전도의 굴욕으로 마침표를 찍지만 한국 축구는 당장 월드컵을 준비해야 한다. 우리 스스로의 내분 탓에 ‘러시아의 굴욕’ 나락으로 자멸하는 건 누구도 원하지 않는 결과물이다. 여론의 지향점은 히딩크만을 쳐다보고 있는 것 같지만 그 역시 가능하지도 않고, 정답이 아니라는 것을 스스로 잘 알고 있다. 이제는 평가전에서 잇단 졸전과 대량실점으로 별명이 오대영(5-0)이었던 히딩크 감독이 정작 월드컵에서 4강 신화를 써냈듯이, 신태용호가 대반전 드라마를 완성 할 수 있도록 지혜를 모아야 할 때다. 그렇다면 ‘어제’와 같은 낡은 방식과 땜질 수습책으론 ‘내일’의 축구를 할 수 없다는 절박한 문제의식이 선행돼야 한다. 언필칭 ‘축구협회의 최명길’이 보고 싶다. 한국 축구가 안에서부터 먼저 망할까 두렵다.

최형철 스포츠부장 hcchoi@hankookilbo.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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