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32>올라프 스태플든의 테라포밍

#1
행성 통째로 바꿔 인간 살 수 있게
1930년 작품서 20억년 미래 제시
칼 세이건 논문 발표 후 학회 결성
화성 현실적 대안으로 집중 연구
#2
별 둘러싼 구조물 ‘다이슨 구’ 등
장대한 우주공학 아이디어 창안
영웅 아닌 초인, 초지능의 개 등
파격 설정으로 철학적 고민 던져
화성이 테라포밍을 거쳐 점차 지구화하는 4단계 과정을 그린 상상도. 올라프 스태플든이 1930년 ‘최후이자 최초의 인간’에서 금성 테라포밍을 다룬 뒤 천문학자 칼 세이건은 1961년 네이처에 금성 테라포밍, 1973년 이카루스에 화성 테라포밍의 가능성을 검토한 연구논문을 발표했다. 논문의 결론은 화성 테라포밍이 가능하다는 것이었고 학회 결성에 이어 과학자들은 화성 개척을 활발히 연구 중이다. Daein Ballard 그림.

십여 년 전 SF 출판 일을 할 때였다. 이름만 대면 누구나 알 만한 한국의 대표적인 중견 소설가 한 분이 메일을 보내왔다. 자신이 어렸을 때 읽었던 SF소설의 완역판을 출판해주어 정말 고맙다는 내용이었다. 사실 나 역시 소년시절 처음 접하고는 기억에 강렬하게 남아서 어른이 된 뒤 완역판의 출간을 도모했던 책이었다. 어렸을 때 읽었던 건 청소년용으로 편집된 요약본이었지만 파격적인 설정이 깊은 인상을 주었는데, 성인용 무삭제판은 더 충격적인 내용들이 과감하게 펼쳐지고 있었다. 바로 이 작품이 오늘날 모든 초인, 초능력자 이야기의 원조로 일컬어지는 올라프 스태플든의 ‘이상한 존(Odd John)’이다.

인간 진화의 다음 단계는 초인?

장애를 지닌 것이 아닌가 싶을 정도로 지적 발달이 늦되어 보이던 아이가 어느 날 갑자기 천재처럼 변신한다. 알고 보니 아이는 태어난 뒤로 말없이 주변 세상과 사람들을 관찰해오다가 어느 순간 자신의 진면목을 드러낸 것이었다. 그렇게 자신을 둘러싼 모든 환경을 순식간에 학습한 아이는 10대가 되자 이미 보통 인간의 능력을 아득하게 뛰어넘는다. 인간의 심리와 사회 체제에도 통달하여 막대한 부를 축적하지만, 친한 어른을 대신 내세우고 자신은 세상에 나서지 않는다. 그러면서 텔레파시를 통해 전 세계에 흩어져 있는 자신의 동족들을 찾기 시작하는데, 놀랍게도 그 중에는 오래 전에 사망한 사람까지 포함되어 있다. 육체는 사라졌지만 의식은 여전히 남아서 시공간을 초월해 그들만의 교류를 갖는 것이다.

이들은 보통 인간의 세상을 벗어나 외딴 섬에 그들만의 세계를 건설하려 하지만 이미 강대국들이 그들의 존재를 알고 가만 놔두지 않는다. 과연 이들은 어떤 선택을 했을까?

대중문화에서 그려지는 초인들은 대부분 인류를 보호하는 데에 그들의 능력을 사용한다. 하지만 꼭 그러리라는 법이 있느냐는 질문을 스태플든은 ‘이상한 존’에서 던지고 있다. 사진은 ‘어벤져스’에 등장하는 슈퍼히어로들. 한국소니픽처스 제공

SF에서 초능력자나 초인 이야기는 언제나 인기가 높다. 요즘도 ‘엑스맨’이나 ‘어벤저스’같은 영화들이 세계적인 흥행을 누린다. 하지만 이들이 초능력을 사용하는 목적은 대부분 현재의 세상을 수호하고 그 질서와 가치를 지키기 위한 것이다. 어찌 보면 초인으로서의 정체성을 포기하고 보통 인간들과 융화되어 사는 삶을 추구하는 셈이다. 그런데 ‘이상한 존’의 주인공은 다르다. 이 소설은 영웅담이 아니라 성장소설이다. 초인으로서 자존 의식을 가진 ‘이상한 존’은 사실 육체적인 초능력자의 차원을 넘어 인간이 가진 우주 속 진리탐구심을 극한까지 추구하는 정신적 의지의 초인으로서 그 의미가 더 돋보이는 것이다. 주인공은 그 과정에서 인간을 먼저 이해하기 위해 여러 가지 파격적인 실험을 하는데, 심지어 심각한 범법 행위까지 포함되어 있다. 물론 사회의 제도와 윤리라는 것의 상대성을 말하려는 의도도 포함된 묘사지만, 아무튼 과거에 어린이ㆍ청소년 독자 대상으로는 작품의 상당 부분을 삭제한 축약판이 나올 수밖에 없었던 것이다.

예술철학적 과감성과 과학적 상상력

스태플든의 작품 중에서 ‘이상한 존’과 함께 대중적인 인기를 끈 작품으로 ‘시리우스’가 있다. 인간보다 더 뛰어난 지능과 지성을 지닌 개가 주인공이다. 이처럼 SF에는 예를 들어 ‘혹성탈출’ 시리즈의 유인원처럼 인간이 아닌 동물이 인간만큼 뛰어난 지성을 지녔다는 설정이 종종 등장하는데, ‘시리우스’는 인간과의 대결 같은 통속적인 구성을 전면에 내세우지 않는다. 이 작품은 ‘이상한 존’과 마찬가지로 인간을 초월한 지성의 눈으로 인간과 사회를 객관적으로 고찰하는 철학적 탐구 이야기이다. 그에 더해서 초지성을 지닌 개가 인간 여성과 사랑을 나눈다는 기묘한 러브스토리이기도 하다. ‘이상한 존’과 ‘시리우스’는 당대는 물론이고 지금 보아도 파격적이고 때론 금기시될 설정까지도 거침없이 묘사한 작품들로서 그 예술철학적 과감성은 SF를 넘어 문화사에 상당한 영향을 남겼다.

항성 주변에 구 모양의 구조물을 만들어 항성의 에너지를 100% 활용할 수 있도록 한 다이슨 구. 물리학자 프리먼 다이슨의 이름을 땄지만 정작 그는 '스태플든 구'라고 불러야 한다고 주장했다. 사진은 일본 선라이즈의 애니메이션 '혁명기 발브레이브'에 등장하는 다이슨 구. 선라이즈 제공

어쩌면 그 이상으로 스태플든은 과학사에도 선구자적인 업적을 남긴 인물이다. 그의 장편 ‘최후이자 최초의 인간’(1930) 및 ‘스타메이커’(1937)는 인류를 포함한 다양한 지적 존재들이 광대한 우주를 배경으로 펼치는 여러 모습들을 대서사시처럼 묘사한 작품인데, 여기에는 미래 우주공학의 몇몇 핵심적인 아이디어들이 등장한다. 가장 대표적인 예가 바로 ‘다이슨 구(Dyson sphere)’이다. 물리학자 프리먼 다이슨이 널리 알린 이 개념은 태양과 같은 항성 전체를 둘러싼 껍질 모양의 거대한 구조물을 뜻한다. 이런 구조물은 항성의 에너지를 사실상 100% 이용할 수 있기 때문에 문명이 초고도로 발달한 지적 존재라면 언젠가는 궁극의 에너지 이용시스템으로서 이러한 구조물을 건설할 것이라는 추정이 있다. 다이슨이 이 개념을 대중화시킨 덕분에 그의 이름이 붙었지만 정작 다이슨 자신은 스태플든의 소설 ‘스타메이커’에서 처음 알게 된 것이라며 ‘스태플든 구’라고 불러야 옳다고 말한 바 있다.

또한 외계 천체를 지구와 같은 환경으로 개조하는 기술인 ‘테라포밍(terraforming)’도 스태플든의 ‘최후이자 최초의 인간’에 등장한다. 미래의 인류는 금성인과 전쟁에서 승리한 뒤 금성의 환경을 지구처럼 바꾸는 테라포밍을 시행한다. 스태플든은 이 작품에서 금성에 바다가 있다고 묘사하는 등 당시의 부족했던 관측천문학의 한계를 드러내기도 했지만, 아무튼 달 같은 위성이 아닌 외계 행성을 테라포밍한다는 설정은 SF 역사상 이 작품에서 처음 등장한 것이다. 그 뒤에 금성이 매우 짙은 대기로 인한 온실효과로 기온과 기압이 무척 높아 테라포밍에 부적합하다는 사실이 알려지면서 태양계 안에서 유력한 테라포밍 후보지로 화성이 주목받게 되었다.

영화 ‘마션’의 주인공은 화성에서 산소와 비를 만들고 토양을 개척해 감자를 재배한다. 이십세기폭스 코리아 제공
우주적 철학의 시야를 문학에 접목

SF장르의 탄생에 결정적으로 공헌한 사람으로 흔히 프랑스의 쥘 베른과 영국의 H.G. 웰스를 꼽지만, 이들의 업적은 엄밀히 말하자면 SF의 ‘외형’을 형성하는데 기여한 부분이 크다. 즉 생물학적인 외모를 물려 준 부모와 같은 셈이다. 이에 비하면 올라프 스태플든은 SF의 철학과 가치관이라는 정신적 측면의 형성을 도와 준 스승이라고 비유할 만하다.

물론 베른이나 웰스가 현대 SF의 철학에 끼친 영향은 막대하다. 특히 웰스의 경우 다양한 스케일로 전망한 인류문명의 미래에 대한 통찰은 가히 교과서적인 위상을 지니고 있다. 그러나 현대 SF에 깃든 가장 심원한 시각, 즉 우주와 지적 존재의 장대한 서사라는 기본 틀거지를 누가 완성시켰냐고 한다면 자연스럽게 스태플든을 떠올리지 않을 수 없다. 그가 20억년에 걸친 인간 진화를 그린 ‘최후이자 최초의 인간’이나, 다양한 유형의 우주 속 지적 존재를 상상한 ‘스타메이커’ 등에서 펼쳐 보인 우주적 시야는 어린 시절의 아서 클라크에게 깊은 영향을 주어 훗날 클라크로 하여금 ‘2001 스페이스 오디세이’나 ‘유년기의 끝’같은 걸작 SF를 낳게 하였다. 뿐만 아니라 버지니아 울프나 버트런드 러셀, 아놀드 베넷 같은 주류문학의 작가와 철학자들도 상당한 영향을 받았다. 버지니아 울프는 스태플든의 ‘스타메이커’를 읽고 “내가 오랫동안 소설로 담아내고자 고민하며 만지작거리던 것을 당신이 손아귀에 넣고 먼저 써버렸군요. 부럽습니다”라고 말했고 이에 스태플든은 “나도 최근에 당신의 ‘세월(The Years)’을 기쁘게 읽었습니다. 그리고 당신의 예술과 대조되는 나의 단조로운 글에 절망감을 느꼈답니다”라고 화답하며 서신을 나눈 바 있다.

흥미롭게도 스태플든은 동시대의 SF문학계와는 교류가 거의 없었다. 현대 SF문학의 형성에 크나큰 기여를 했지만 정작 자신의 작품을 SF 잡지에 발표하거나 SF 작가들의 커뮤니티에 속해서 활동하지는 않았다. 당시의 SF문학은 아직 통속적인 대중성이 주로 강조되던 시기라서 심도 깊은 철학적 탐색을 주로 펼친 스태플든의 작품들과는 성향이 맞지 않았을 가능성이 있는데, 돌이켜 보면 정체된 상태에 새로운 계기와 활력을 불어넣는 것은 늘 바깥에서 오는 자극이라는 속설을 떠올리게 한다.

박상준ㆍ서울SF아카이브 대표

올라프 스태플든. 오멜라스 제공
올라프 스태플든

1886년 5월 10일~1950년 9월 6일. 영국 체셔주 시컴에서 태어났다. 해운회사를 경영하던 아버지를 따라 유소년기에 이집트에서 한동안 생활하며 다문화적 환경과 정서에 익숙해졌다. 옥스퍼드대 발리올칼리지에서 현대사를 전공하여 학사와 석사학위를 받은 뒤 교사, 해운회사 사무원, 노동자 교육 강사 일을 하다가 1차 대전이 발발하자 퀘이커교도들이 설립한 긴급구호단체에 들어가 구급차 운전병으로 종군했다. 전쟁이 끝난 뒤 리버풀대에서 철학박사 학위를 받고 노동자교육협회 및 리버풀대 공개강좌에서 산업사, 문학, 철학, 심리학 등을 강의했다. 자신의 철학을 더 많은 사람들에게 널리 알리기 위해 소설을 집필하기 시작, 44세 때인 1930년에 발표한 첫 장편 ‘최후와 최초의 인간(Last and First Men)’이 성공을 거두면서 전업 작가가 되었다. 2차 대전이 끝난 뒤엔 집필과 더불어 유럽 각지를 다니며 세계 평화를 호소하는 활발한 강연 활동을 펼쳤다. 1950년에 파리에서 강연을 마치고 예정된 유고슬라비아 일정을 취소한 뒤 귀국했다가 심장마비로 갑작스럽게 작고했다. 보르헤스, 버트런드 러셀, 윈스턴 처칠, 아서 클라크, 스타니스와프 렘 등 다양한 분야의 인물들이 그의 작품을 호평하거나 직접적인 영향을 받았다고 고백했다.

<소개된 책>
이상한 존

올라프 스태플든 지음

김창규 옮김

오멜라스 발행

시리우스

올라프 스태플든 지음

이영기 옮김

오멜라스 발행

스타메이커

올라프 스태플든 지음

유윤한 옮김

오멜라스 발행

최후이자 최초의 인간

올라프 스태플든 지음

엄진 옮김

페가나 발행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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