靑 자초 김이수 사태, 헌재 파행 예고

전효숙 사태에서 헌법적 지혜 찾아야

헌재 독립성 지키는 새로운 관행 필요

김이수 헌법재판소장 권한대행이 13일 서울 재동 헌법재판소에서 열린 국회 법사위 국정감사에서 여야가 권행대행 체제를 놓고 대립하자 곤혹스런 표정을 짓고 있다. 고영권기자

‘미스터 쓴소리’로 불린 조순형 전 의원은 지독한 원칙주의자였다. 형식논리로 헌법을 해석한 게 대표적이다. 헌법 제111조 제4항은 “헌법재판소의 장은 국회의 동의를 얻어 재판관 중에서 대통령이 임명한다”고 적고 있다. 조순형은 이를 근거로 2006년 8월 전효숙을 헌법재판소장에 지명한 것이 헌법절차 위배라고 했다. 당시 노무현 대통령은 3년 차 전효숙 재판관을 사임시켜, 민간인 신분으로 만든 뒤 헌재소장에 지명했다. 그때는 조규광 김용준 윤영철까지 재판관과 헌재소장을 동시에 임명하는 게 관례였다. 하지만 현직 재판관 중 소장을 임명하라는 조순형의 ‘법 대로’를 야권이 받아 밀어붙였다. 정치공방 속에 헌재소장 공백사태가 장기화하자 전효숙은 지명철회를 자진했고, 이듬해 1월 이강국 변호사가 4대 소장에 취임했다. 법 대로가 아닌 관행 임명이었다.

잊혀가던 조순형의 형식논리는 2013년 박한철 재판관이 소장에 임명되며 부활한다. 박한철은 법규정 대로 재판관 중에서 임명된 첫 소장이었다. 2년 차이던 그가 남은 잔여임기 4년만 채우겠단 말로 임기논란은 피했지만, 더 큰 문제가 기다리고 있었다. 법 대로라면 4년 뒤에도 대통령이 계속해 단기로 소장을 임명할 수 있어, 헌재가 정권에 순치될 것이란 비판이었다. 인사 청문회에서 당시 야당인 민주당 의원들의 이런 지적에 박한철도 고개를 끄덕였다. “4년 뒤에 박근혜 대통령이 헌재 소장을 임명하게 된다. 그러면 지금 계시는 재판관들은 전부 다 잠재적 헌재 소장들이 된다. 대통령의 선택을 받기 위해 어떤 노선과, 입장, 정책을 내거는 것을 의식하지 않을 수 없다. 이 때 헌재의 독립성은 위협 받고, 재판관은 순치된다. 대통령이 이를 악용한다면 헌법 해석 자체도 위험해질 수 있다”(최재천 의원). “헌법이 개정되기 전에는 재판관이 먼저 사임을 하고, 소장의 임기(6년)를 새로 시작하는 것이 올바른 결론이다. 새 소장의 독립성을 인정하려면 그런 관행을 정착시킬 필요가 있다”(박한철).

하지만 4년 뒤 그때의 우려는 정권이 바뀌었어도 반복되고 만다. 국회에서 김이수 헌재소장 임명동의안이 부결되지 않았더라면 불필요한 논란까지 더해졌을 것이다. 대통령, 국회, 대법원장이 재판관을 3명씩 임명하는 헌재 판 3권 분립(3-3-3 균배원칙)이 흔들리는 때문이다. 현 재판관 8명 중 김이수 안창호 강일원은 국회 몫, 이진성 김창종 이선애는 대법원장 몫, 서기석 조용호는 대통령 몫이다. 아직 임명되지 않은 1명은 대통령 몫이다. 헌재가 마련한 헌법재판소법 개정안은 김이수가 소장이 되면 국회 몫이 아닌 대통령 몫이 된다고 해석한다. 3-3-3 원칙이 깨져 4-2-3이 된다는 얘기다. 노무현은 이런 논란을 의식해 대법원장 몫인 전효숙에 대해 ‘사퇴 후 지명’하는 방식을 택했다. 대법원장이 재판관을 추가 임명토록 한 배려였지만, 지금 청와대에서는 노무현 식 고민이 보이지 않는다.

청와대는 김이수 소장 권한대행 체제를 인정한다고 밝혀, 김이수 체제의 장기화를 예고한 상태다. 하지만 김 권한대행이 내년 9월 임기까지 유지되면 헌재에 대한 무시이자 편의주의적 발상이란 비난은 계속될 수밖에 없다. 그 전에 재판관들 중 소장을 지명하면 임기를 감안할 때 1,2년도 안 되어 다시 소장을 뽑아야 한다. 잠재적 소장인 재판관들이 대통령의 선택을 받기 위해 코드를 맞출 우려도 반복된다. 진퇴양난에 처한 청와대로선 인선 중인 대통령 몫의 재판관을 소장에 앉히는 게 논란을 피하는 출구일 것이다.

5개월로 접어든 김이수 사태를 보면, 우리 정치가 전효숙 낙마 사태에서 배운 헌법적 지혜란 없는 것 같다. 언제나처럼 정치공방만 재연되고 있을 뿐이다. 하지만 현실에서 벗어난 원칙주의는 시간에 묻혀 적폐가 되기 마련이다. 조순형 전 의원이 결자해지 차원에서 쓴 소리를 하는 것은 어떨까. 2006년의 전효숙과 2017년의 김이수, 그때는 맞고 지금은 틀리다.

이태규 뉴스1부문장 tglee@hankookilbo.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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